'저는 군대에 아들을 보낸 죄인입니다'

입력 2017. 5. 2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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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 막이 오른 연극 <이등병의 엄마>. 군에서 아들을 잃었지만 죽음의 원인조차 알지 못하는 군 의문사 유가족 9명이 직접 배우로 출연했다. 떠올리면 온통 고통뿐인 순간들이 매일 찾아오는 연습, 그럼에도 엄마들이 무대 위에 오른 이유는 뭘까.

“엄마 걱정 말아요. 건강히 잘 다녀올게!”

엄마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군에 입대하는 아들을 배웅하는 엄마, 그리고 씩씩한 척 태연한 척 인사하고 부대로 향하는 아들. 그렇게 슬픈 장면은 아닌데,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상복 입은 엄마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흐려지고 곧 눈물을 쏟는다. 그렇게 무대는 엄마들을 5년 전, 7년 전, 10여년 전 입대하는 아들을 배웅하던 그때, 그날로 되돌려 놓는다.

“군대 보낼 때는 조국의 아들이라 하더니, 영문도 알 수 없이 죽은 후에는 미안하단 말은 고사하고 못난 내 자식이라고 외면합니다. 높은 누군가의 눈에는 수십만 명의 군인 중 보잘 것 없는 한 명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또 하나의 하늘이었고 유일한 땅이었습니다.” 현실의 엄마 이야기는 그대로 무대 위 대사로 옮겨졌다.

‘비전투 손실’. 군에서 전투행위 이외에 발생한 물적·인적 손실을 말한다. 1948년 국군 창설 이후 군에서 목숨을 잃은 비전투 손실 인력은 모두 3만9000여명. 군복을 입은 채 군대에서 사망했지만 국가로부터 어떤 예우도 받지 못한 죽음들이다. 한 해 평균 거의 600명에 달한다. “군에서는 세월호 참사가 매년 두 번씩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연극은 그렇게 ‘물자’처럼 취급되며 군에서 목숨을 잃은 아들들, 그리고 그들이 곧 “하늘이었고 땅”이었던 엄마들의 이야기다. 5월 19일 막이 오른 연극 <이등병의 엄마>(박장렬 연출)에는 군에서 아들을 잃었지만 죽음의 원인조차 알지 못하는 군 의문사 유가족 9명이 직접 배우로 출연했다.

연극 「이등병의 엄마」의 한 장면. 스토리펀딩으로 제작된 이 연극은 대학로 '예술공간 오르다'에서 5월 28일까지 공연한다. / 선명수 기자

인권운동가 고상만씨 직접 대본 써

한 해 평균 27만여명의 청년이 군에 입대하고, 그 중 평균 100여명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군에서 사망한다. 이들 중 3분의 2가 자살로 처리된다. “부대관리 훈령에 자살로 사망한 군인에 대해선 지휘관의 책임을 묻지 않게 규정돼 있습니다. 병사가 죽으면 자살로 처리하는 게 군에게는 ‘안전한’ 죽음인 거죠. 설사 스스로 목을 매고 방아쇠를 당겼다 해도,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간 부대에서 상급자의 폭행 등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군의 책임은 지워버리고 죽은 병사 본인 책임만 남는 거죠.” 연극을 기획하고 직접 대본을 쓴 인권운동가 고상만씨를 18일 <이등병의 엄마> 언론 시사회 직후 만났다.

고 작가는 “사형수보다 못한 대접을 우리 군인들이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교도소에서도 아프면 형 집행정지로 내보내 줍니다. 하다못해 사형수도 사형 집행 전에 아프면 치료해주고, 그 전에 죽으면 누군가 책임을 져요. 그런데 군에선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자살 사유 역시 ‘붙이기 나름’입니다. 부모가 이혼해서,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서, 여자친구와 헤어져서 등…. 그럼 반대로 물어볼 수 있는 거죠. 아무런 문제가 없던 청년이 입대 뒤 갑자기 죽었는데 부모의 이혼 때문이라면, 이혼 가정 아들은 징집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아직도 국군병원 냉동고에는 장례를 치르지 못한 군인들의 주검이 있다. 군의 조사 결과를 부모가 납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군사정권 시절 발생한 군 의문사인 허원근 일병 사건의 경우, 최근 국방부가 33년에 걸친 논란 끝에 순직을 인정했지만 자살·타살 여부조차 결론내지 못했다. 앞서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두 차례 조사 끝에 ‘타살’ 결론을 내렸지만, 대한민국 군대는 이를 수용하지 않은 것이다. 국가가 불러 자식을 군에 보냈지만 원인조차 알 수 없는 죽음. 그래서 연극의 부제는 이렇다. ‘저는 군대에 아들을 보낸 죄인입니다.’

극본도, 제작도 처음이었던 고 작가가 연극을 무대에 올리게 된 배경에는 ‘부채감’이 있었다. 2014년, 그가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광진 의원실에서 보좌관으로 일할 때였다. 유족들의 오랜 요구 끝에 군 인사법 개정에 청신호가 켜졌던 시기였다. 개정안 내용은 의무복무 중 사망한 군인에 대해 사망의 원인 구분 없이 순직 처리하고, 유해를 국립묘지에 안장하라는 것. 법안심사가 열린 날 날벼락 같은 소식이 들렸다. 국방부가 법 개정 이전 사망자에겐 소급 적용을 할 수 없다고 못 박은 것이다. “솔직히 유족들이 거부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2년 넘게 싸웠는데, 당신 자식에게는 일절 해당되지 않는 법이잖아요. 그런데 유족끼리 회의를 하겠다고 하시더니, 빨개진 눈으로 수용의사를 밝혔습니다. 비록 우리는 안 되지만, 앞으로 우리처럼 자식 잃은 부모들에겐 우리가 겪은 고통이 없었으면 한다면서요.” 결국 유족들의 양보로 개정안은 본회의를 통과했고, 순직 처리요건도 크게 완화될 수 있었다. 고 작가는 “그날 다른 누군가의 아이들을 위해 법안 처리에 동의해준 그분들에 대한 마음의 빚이 <이등병의 엄마>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동시에 연극은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예산 낭비’를 이유로 해체시킨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를 다시 만들어 달라는 절박한 호소이기도 하다.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설치된 진상규명위는 600여건의 진정을 접수했지만, 조사 완료된 332건을 제외하고는 절반 가까이 손도 대지 못한 채 해체됐다. “연극의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의무복무제로 징집했으면, 국가가 끝까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겁니다. 군복 입은 죽음을 책임지지 못할 바에야 징병하지 말라는 겁니다.”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필요성 호소

고 작가의 제안에 유족들은 흔쾌히 출연 의사를 밝혔지만, 평생 연극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들이 절반이었다. 연극 관람부터 시작해 전문 배우들과 함께 한 수개월의 연습까지. 매일 똑같은 장면을 연습하면서도 눈물이 터졌다. 고 김정운 대위의 어머니 박영순씨는 “죽은 아들이 따뜻한 밥을 먹고 싶다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가슴을 치면서 혼자 울었다”고 말했다. 그 장면은 “된장찌개를 좋아했던 아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 못해주고 보낸” 그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들의 영정을 목에 걸고, 엄마들은 현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극중 부대 앞, 국방부 앞에서 “내 아들 살려내라”고 외치고 또 울부짖는다. ‘군은 할 만큼 했다’는 수사관의 대사에 격분하고, 주인공인 극중 엄마(김담희 분)가 아들 정호(김천 분)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에서는 각자의 아들 이름을 함께 부른다. 무대 위 연기지만, 동시에 연기가 아니다.

유가족을 위한 ‘치유 연극’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무대는 끊임없이 엄마들을 아들이 입대하던 때, 날벼락 같은 사망 소식을 듣고 시신을 확인하던 때, ‘아들이 준 숙제’를 풀기 위해 거리에서 외로운 싸움을 할 때로 시간을 돌려 놓는다. 떠올리면 온통 고통뿐인 순간들이 매일 찾아오는 연습, 그럼에도 엄마들이 무대 위에 오른 이유는 뭘까. “집에서도 우리 아들 이름을 못 불러요. 너무 아프니까, 가족끼리 있어도 차마 부르지 못해요. 무대 위에선 목 놓아 부를 수 있잖아요. 우리 아들 이름을 마음껏 부를 수 있어서, 그래서 힘들어도 좋아요.” 연극이 끝난 후, 고 윤영준 이병의 어머니 박윤자씨가 귀띔했다. 박씨는 아들의 7주기 기일인 19일, <이등병의 엄마> 첫 공연에서 아들의 영정을 안고 무대 위에 올랐다.

고상만 작가는 “연극의 제목을 이렇게 붙인 건 아들을 둔 대다수의 엄마가 ‘이등병의 엄마’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극중 엄마의 대사처럼,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대통령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연극을 꼭 관람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저는 벌써 연극이 끝난 뒤가 걱정입니다. 이제 연극이 끝나면, 이 엄마들은 어디로 돌아가야 할까요. 이제 연극이 아니라 정부가, 세상이 이 엄마들의 손을 잡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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