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으로 북한 움직일 수 있을까

이민우 기자 2017. 5. 2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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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과 채찍 모두 北 도발 막지 못해 文 대통령 '달빛정책' 대화와 제재 병행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북한은 5월14일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인 ‘화성-12형’을 발사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 나흘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식을 듣고 곧바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무모한 도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며 동시에 엄중히 경고한다”고 말했다. 사흘 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하는 중대한 도발 행위”라며 “한반도는 물론이고 국제 평화와 안정에 대한 심각한 도전 행위”라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던 남북관계는 더 악화될 위기에 처했다. 이를 두고 주요 언론들은 ‘달빛정책이 도전에 직면했다’고 표현했다. 달빛정책이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Sunshine policy)에 문 대통령의 영자 성(姓)인 ‘Moon’을 합성한 용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가리켜 처음 사용했다. 문재인 정부 내에서는 이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진 않았지만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달빛정책이라는 표현은 그 자체로 복잡다단한 대북관계를 그대로 함축하고 있다.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 취임 나흘 만인 5월14일 중장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조선중앙통신 연합

 

文 대통령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 기조는 대화와 제재를 병행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면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대화 시도는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북한 또한 대화에 나서면서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을 이어가는 화전양면전술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역대 정부에서는 강도 높은 대북제재를 통한 채찍도, 대화와 지원을 통한 당근도 먹혀들지 않았다. 달빛정책으로 불리는 문 대통령의 ‘전략적 모호성’이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에게 안보 문제는 아킬레스건과도 같았다. 지난 대선 기간 문 대통령에게는 “북한을 왜 주적(主敵)이라고 말하지 못하느냐” “2007년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결정과 관련해 왜 북한의 의견을 물어봤느냐” “사드 배치에 왜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느냐” 등 색깔이 덧씌워졌다. 물론 문 대통령을 향한 색깔론은 과거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국민들은 쉽게 동요하지 않았고, 문 대통령은 단 한 차례도 선두를 내주지 않고 손쉽게 청와대에 입성했다.

대통령이 된 그에게는 이중적 과제가 주어졌다. 반대 세력 혹은 반대 세력의 논리에 설득당한 국민의 불신을 해결하는 문제다. “안보관이 불안하다”는 반대 세력에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북한의 도발 이후 대북 강경 메시지를 내놓거나 국방부 등을 방문해 대북 대비 태세를 점검하는 안보 행보에 나선 것도 반대 측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문 대통령을 청와대까지 안내해 준 지지층의 기대 심리도 충족시켜야 한다.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 세력이다. 이들 대부분은 문 대통령이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하길 바라고 있다. 문 대통령 또한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조만간 판문점 연락사무소 정상화를 추진하는 등 새로운 대북정책이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도 문 대통령을 향한 기대감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안보 불안감과 햇볕정책 기대감 사이에서 탄생한 것이 달빛정책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북한의 핵 폐기에 따라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우발적 군사충돌 방지와 군사적 긴장완화를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밝혔다. 남북의 단일 시장을 만들어 정치적 통일의 기반을 구축한다는 구상은 2012년 18대 대선에서 공약한 ‘남북경제연합’ 공약과 같다. 하지만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남북관계 원칙에는 5년 전에는 없던 ‘도발 불용’이 포함됐다. 또 ‘국민과의 소통을 통한 대북정책 추진’을 강조한 것은 안보 위기 등에 대한 국민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4월 전쟁위기설까지 나올 정도로 악화된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단기적으로 중요하다”며 “미국·중국뿐 아니라 위기의 원인을 제공한 북한에 대해서도 어떠한 형태로든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대북정책에 대한 구상과 현재 국제 정세, 북한에 대한 정보 등을 적용해 구체적인 액션 플랜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햇볕정책과 강경제재 모두 ‘실패’

북한의 위협은 한국에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됐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 게 더 이상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을 정도다. 지난 2005년 이후 북한은 거의 매년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지난해의 경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에 성공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10월을 시작으로 지난해 9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감행했다.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 반열에 오른 데 이어 운반체를 만들어 무기체계를 완성시키는 단계에 이르렀다.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태도로 인해 모두 좌절을 겪었다. 그동안 대북정책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일관된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였다. 1994년 1차 핵 위기 당시 제네바 합의를 통해 북한이 핵 발전 중수로를 동결하면 국제사회에서 100만kW 경수로 2기를 제공하는 등 경제 제재를 완화하기로 했다. 이어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햇볕정책이 추진됐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6·15남북공동성명을 채택했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2002년 미국 정부가 중유 제공을 중단하고, 북한은 이에 반발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추방하고,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이 같은 정세 속에서 등장한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 균형자론’을 내세우며 개성공단 개발, 남북 철도 연결 등 적극적인 경제 교류에 나섰지만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반기를 들며 등장한 보수 정권 또한 북핵 사태의 해결책을 찾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연이은 군사 도발로 남북관계는 더 악화됐다. 5·24 조치로 인해 대북제재는 강화됐고 남북 간 대화통로는 좁아졌다. 급기야 인도적 지원조차 끊기고, 남북 교류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개성공단마저 가동이 중단됐다. 북한의 도발이 거듭될수록 더 강력한 대북제재에 나선다고 했지만 추가적인 제재 수단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미국 내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더 쓸 카드가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른바 진보 진영에서 주장하는 ‘대화와 협력’도, 보수 진영에서 주장하는 ‘강경한 대북제재’도 북한의 핵개발을 막을 수는 없었던 셈이다.

군사 전문가인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하나의 정책을 일관되게 할 수 있는 기회조차 별로 갖지 못했다”며 “미사일 발사 등 한 차례의 도발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비전과 행동계획, 그것을 수행할 전략적 주체들을 정비해 장기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14일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내놨다. © 뉴시스

 

北·美 태도 따라 정책 달라진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인 달빛정책의 모호성은 동시에 전략적 선택의 폭이 넓다는 점을 의미한다. 북한의 태도에 따라, 초기 남북관계가 어떻게 설정되느냐에 따라, 국제적인 대응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도발이 지속되고 대북 압박에 대한 국제사회의 요구가 커질 경우, 달빛정책의 무게중심은 강경한 대북 압박 쪽으로 기울어질 공산이 크다. 군 관계자는 “북한은 핵실험이나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남북관계와는 별개로 보고 진행하지만 우리나라는 북핵 미사일 위협과 남북대화를 구분해서 바라볼 수 없다”며 “북한이 전략적 도발을 하면 남북대화 분위기는 냉각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국제사회와의 공조가 필수라는 점을 지적한다. 북한에 대한 지원이나 압박 모두 국제사회와의 공조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제2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완성시키면 사실상 북핵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2~3년이기 때문에 좌고우면하지 말고 국제사회와 발을 맞춰 뭔가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내면서 상황을 안정적이면서 주도적으로 이끌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과 미국은 본격적인 협상을 위한 힘겨루기를 계속 이어오고 있다”며 “정부는 한·미 동맹과 남북관계를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공조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행히도 ‘트럼프 리스크’는 대북정책에 있어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일련의 메시지 속에서 북한의 변화에 따라 대화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어서다. 문 대통령의 달빛정책의 목표와 방식 면에서 상당 부분 조율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리언 시걸 미국 사회과학연구위원회 동북아안보협력 프로젝트 국장은 “(미국이) 문재인 대통령과 대북정책에서 불협화음을 낼 것이라고 예상한 전문가들은 놀라고 있을 것”이라며 “한·미는 지금으로서는 같은 성가(聖歌)를 부르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다만 외교정책의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노무현 정부에서 평화군축센터 소장을 맡았던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는 “북한 핵 문제가 상당히 심각한 단계에 있고 국제적인 제재 국면에 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표방했던 새로운 남북관계의 발전을 어떤 방식으로 또 주변 국가들과 어떻게 협력하면서 열어나갈 것이냐가 관심을 끌고 있다”며 “한쪽으로 쏠려 있는 외교정책을 다변화함으로써 우리 국익을 극대화할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안정에도 기여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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