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천만 원짜리 헤드폰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박영민 기자 2017. 5. 24.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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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엔드 헤드폰 '오르페우스'의 귀환..젠하이저 'HE1' 청음해보니

(지디넷코리아=박영민 기자)"헤드폰 가격이 7천만 원이라고요? 아니 내가 잘못 들었나?"

23일 청음샵에서 만난 한 고객이 젠하이저의 플래그십 헤드폰 ‘HE1’의 가격을 듣자마자 보인 반응이다. 독일의 오디오 명가 젠하이저가 지난해 하반기에 출시한 플래그십 헤드폰 'HE1'의 가격은 7천만 원(5만5천 유로)이다.

최고 사양의 부품과 장시간 착용 시 안정감을 주는 이어패드, 그리고 고급스러운 디자인까지. 오디오 업계서 최고 사양을 뜻하는 '하이엔드(High-end)' 열풍이 헤드폰으로 넘어가고 있다. 홈오디오의 전유물이던 '고품질'을 이젠 개인용 헤드폰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하이엔드 오디오의 표준을 새롭게 정의했다고 평가받는 이 7천만 원짜리 헤드폰엔 어떤 특별한 점이 숨어있을까. 23일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청음샵 '셰에라자드(소리샵)'에서 젠하이저의 프리미엄 헤드폰 HE1을 직접 청음해봤다.

독일의 오디오 명가 젠하이저가 지난해 하반기에 출시한 플래그십 헤드폰 'HE1'의 가격은 7천만 원(5만5천 유로)이다. (사진=지디넷코리아)


■ 헤드폰을 낀 순간 펼쳐진 고요함…스피커 틀어 놓은 듯 착각도

이날 셰에라자드에는 HE1을 여유롭게 청음할 수 있도록 단독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HE1의 왼쪽엔 고객들이 원하는 장르의 음악으로 청음할 수 있도록 컴퓨터가 비치돼 있었다.

음악을 듣기 위해 전원 버튼을 누르자 기기 조작을 위한 컨트롤러와 함께 진공관 앰프가 본체로부터 드러났다. 왼쪽 상단에 탑재된 케이스가 열리면서 헤드폰을 본체 밖으로 꺼낼 수 있었다.

젠하이저 HE1을 청음한 후의 첫 느낌은 어땠을까. 보통 헤드폰이 아니라는 것이다. 청음 전에 제품의 가격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헤드폰을 꼈는데 마치 스피커 음원을 듣고 있다는 착각이 든 건 분명했다.

먼저 음색이 다양해 청음 시 자주 쓰이는 클래식을 선곡했다.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3악장'이다. 하늘을 가르는 천둥소리가 들리고 번갯불이 치며 폭우가 쏟아지는 원곡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는 등 공간감이 상당했다. 고음을 내는 바이올린의 선율과 저음의 첼로 선율 모두 잘 잡아준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번엔 좀 더 대중적인 EDM 음악으로 넘어갔다. 요즘 클럽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Don Diablo'의 'Cutting Shapes'를 들어봤다. 앰프를 통해 강하게 울리는 힘이 느껴졌다. 특히 진공관 앰프 특유의 아날로그 음질이 헤드폰을 풍부하게 울리면서 눈을 감으면 마치 클럽 속에 있는 듯 착각마저 들었다.

EDM 음악을 듣는 도중 볼륨을 크게 올리자 미세한 잡음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화이트 노이즈가 음악 주변에 깔린 듯한 느낌이었다. 의문이 생겨 이전 음원을 재생한 후 볼륨을 높여보니 EDM 음악 감상 시 들렸던 잡음은 없었다.

EDM 음악서 들렸던 미세한 잡음은 제품이 아닌 음원 자체서 발생한 것이었다. 미세한 음질까지 잡아주기 때문에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 애써 고음질 음원을 선택해야하는 수고스러움이 생길 듯 하다.

젠하이저 HE1에는 최상의 음질을 출력하기 위해 8개의 진공관 앰프가 탑재됐다. (사진=지디넷코리아)

■ '전설' 오르페우스의 귀환…젠하이저 기술력의 결집체

업계에서 젠하이저 HE1를 부르는 애칭은 '오르페우스2'다. 이 업체는 지난 1991년 세계 최초로 진공관 앰프와 헤드폰을 결합한 '오르페우스'를 출시하며 업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오르페우스는 당시 2천만 원이 넘는 고가에 판매됐다. 오르페우스 열풍 이후 젠하이저는 수년간의 연구 끝에 또 다시 앰프결합형 헤드폰을 내놓았다. 오르페우스로부터 얻은 노하우가 결집됐다는 업체 측 설명이다.

HE1은 진공관 앰프와 트랜지스터 앰프를 품은 '하이브리드(Hybrid)' 헤드폰이다. 진공관 앰프의 저역 대와 트랜지스터 앰프의 고역 대 음질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앞서 클래식을 청취했을 때 저음과 고음을 모두 잡아낸다는 인상을 받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지난해 11월 국내 출시 당시 젠하이저의 최고경영자(CEO) 다니엘 젠하이저는 "오랜 시간동안 제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기술적인 어려움이 존재했다"며 "하이브리드 앰프를 구현하기 위해 케이블을 줄이고, 트랜지스터 앰프의 고전압을 변화했다"고 설명했다.

광범위한 주파수 대역도 눈길을 끈다. 무려 4Hz(헤르츠)~100kHz로, 인간의 가청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다. 업체 측은 이를 코끼리의 초저주파음과 박쥐의 초고주파음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는 응답범위라고 설명한다.

2.4 마이크로미터(㎛)의 백금 기화 진동판을 채택한 점도 제품의 큰 특징이다. 보다 정밀한 음질 출력을 위해서다. 케이블엔 99.9%로 순은이 도금됐고, 진공관에는 '쿼츠 벌브'를 적용해 미세한 공기 소음을 차단했다.

진공관 앰프는 전작인 오르페우스가 헤드폰 시스템으로의 기능만 수행했던 것과는 달리 프리앰프 기능도 갖췄다. 즉, 별도의 스피커 연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추가적으로 헤드폰을 연결 할 수도 있다.

이어패드 내부는 벨벳과 비슷한 효과를 주는 재질인 벨로아로 제작됐다. 장시간 착용 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헤드폰을 사용할 때 신경쓰이는 요소 중 하나인 '착용감' 걱정을 없앴다는 평가다.

제품을 처음 본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앰프를 둘러싼 대리석 블록이었다. 대리석으로 처리된 마감을 만져 봤을 때 남다른 느낌마저 들었다. 업체 측에 따르면 앰프 부분에는 미켈란젤로 조각상에서 사용된 이탈리아 카라라 지역의 대리석이 쓰였다.

젠하이저 HE1의 앰프 부분에는 미켈란젤로 조각상에서 사용된 이탈리아 카라라 지역의 대리석이 쓰였다. (사진=지디넷코리아)

■ 오픈형 헤드폰의 한계 아쉬워…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엔 '한숨'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첫째는 일반 소비자들이 다가가기엔 터무니없이 너무 비싼 가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우스갯소리로 "그렇게 비싼 가격에 헤드폰을 살 바에야 고급 '사운드바'를 세 대 사겠다"라며 HE1의 높은 가격에 쓴 소리를 내기도 했다. 다만 HE1은 제작 당시부터 정해진 수요층을 공략한 제품이라는 게 업체 측의 설명이다.

하이엔드 오디오의 지향점은 '장인정신'이다. 공장식 제조공정을 탈피해 한 땀 한 땀 정성을 기울인 수제 제작방식, 그리고 한정된 생산량. 이는 하이엔드 오디오 제품의 가격이 대체적으로 높은 이유로 통한다. HE1 역시 연간 250대 한정으로 독일 현지서 주말을 제외하고 하루에 한 대 씩 생산된다.

오픈형 헤드폰의 한계도 느꼈다. 젠하이저는 HE1에 탑재된 고품질 쿼츠 벌브가 외부로부터의 모든 소음을 차단해준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청음도중 볼륨을 조금 높이자 음원 소음이 외부에 그대로 전해졌다.

이는 이 제품이 스피커의 외부면을 개방한 형태인 오픈형 헤드폰이기 때문이다. 밀폐형 헤드폰과 비교하면 저음이나 차음감(외부 소음 차단)이 다소 떨어지지만, 답답함이 덜하고 소리가 뭉쳐 생기는 혼탁함은 없는 등 장단점이 혼재했다.

워크맨, CD플레이어 시대를 지나 스마트폰이 주요 음악 감상 기기로 사용되고 있는 가운데, '앰프 결합형' 헤드폰의 이질감은 HE1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헤드폰을 진공관 앰프와 결합해야 최상의 음질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주로 외부에서 음악을 듣는 요즘 세대와는 걸맞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바꿔 말하면, 스마트폰 음질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궁극의 음질을 제공하는 이 제품이 제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소비자로부터 "가격이 부담스러워 집 안에서만 사용하지 않을까"라며 "밖에선 감히 들고 다닐 엄두가 안 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흘러나온다.

젠하이저 HE1의 이어패드 부분.벨벳과 비슷한 효과를 주는 재질인 벨로아로 제작돼 장시간 착용 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지만 음악이 외부로 흘러나오는 등 오픈형 헤드폰의 한계도 느껴진다. (사진=지디넷코리아)

박영민 기자(pym@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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