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컴퓨터를 사용하면 비싼 상품을 사게 된다?

고평석 2017. 5. 24.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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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휴먼-77]
- 공간의 마력으로 인간은 불필요한 것을 구매하곤 했다.
- 오프라인 매장에서 온라인 쇼핑몰로 힘이 이동 중이다.
- 많은 소비자들이 이미 온라인상 구매 추천 서비스를 좋아한다.
- 앞으로 구매와 관련된 개인 정보 보호 문제가 중요해진다.

인간은 무척 이성적일 듯싶지만 그렇지 못하다. 다른 사람, 다른 사물, 분위기 등의 영향을 쉽게 받곤 한다. 대표적인 것이 공간이다. 어느 공간에 있느냐에 따라 사람의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기업들은 일부러 '욕망의 장소'를 꾸며놓는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애초 계획과 달리 쉽게 욕망에 불을 붙인다. 화려하고 웅장한 쇼핑몰이나 백화점 등에서 그것은 극대화된다. 필요한 물건을 사는 행위는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하지만 쾌락의 쇼핑, 즉 필요한 것을 구매한다기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가처분소득을 소비하는 것은 그리 오래된 개념은 아니다. 물물교환 방식의 농경 사회를 벗어나 대규모 생산이 가능해진 18세기 이후의 일이다. 의식주와 같은 기본적인 소비를 넘어서는 즐거움을 위한 쇼핑은 공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사진=이충우 기자
우선 백화점이 그렇다. 소유하고 싶게 만드는 온갖 물건을 진열하며 소비자를 유혹한다. "런던 옥스퍼드 거리에 위치한 해리 고든 셀프리지의 셀프리지백화점은 세계 최초의 백화점은 아니지만 고객의 쾌락을 중시하며 설계한 최초의 백화점이다. 이곳은 쇼핑객과 물건의 긴밀한 관계, 세심한 고객서비스와 더불어 안락한 가구와 물건이 잘 보이는 넓은 유리장과 흥미로운 전시품 같은 물리적 설계 요소를 고집했다. 현재의 카지노 설계를 연상시키는 이런 요소는 모두 쇼핑객을 백화점에 최대한 오래 붙잡아두기 위한 시도였다." (책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 콜린 엘러드 저) 대형 쇼핑몰도 마찬가지다. 양끝, 혹은 사방에 백화점 할인점 등이 자리를 잡고 그것을 연결해주는 통로에 작은 가게들을 배치해 놓는다. 콜린 엘러드는 '각본에 정해진 방향감각 상실'이라고 설명한다. 쇼핑몰 속에 일단 들어가면 소비자들은 구매 리스트를 주머니 깊은 곳으로 구겨 넣게 된다. 목적 없이 둘러보고 또 둘러보다가 하나둘 필요 없는 물건을 사 모으게 된다. 특히 매장에 오래 있을수록, 긍정적 정서를 느끼고 각성 수준이 높을수록 그렇게 된다. 확실히 백화점, 쇼핑몰은 우리를 구매하게 만드는 공간적 마력이 있다.

더구나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는 다른 사람의 소비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눈에 잘 띄게 디자인된 큼지막한 유명 브랜드 종이 봉투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여럿 보인다. 한 가게에서도 누군가가 물건을 사가는 모습이 계속해서 눈에 들어온다. 이 역시 필요 없는 소비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그 공간 속 모든 사람이 물건을 사가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으며 나 혼자만 동떨어진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2009년 실시한 '돈의 상징적인 힘(The Symbolic Power of Money)' 실험에 의하면 사회적으로 배척당했을 때 이를 보완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책 'EBS다큐프라임 자본주의', EBS 자본주의 제작팀, 정지은·고희정 저) 백화점과 쇼핑몰에서 나만 물건을 못 산다는 느낌을 받고, 점원으로부터 다소간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리면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카드를 꺼내 들고 필요 없거나 소득 수준에 맞지 않는 물건을 구매하게 된다.

그런데 인간의 쇼핑 욕구를 무한히 자극하던 백화점 등 대형 오프라인 매장의 힘이 빠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 유명 백화점 메이시스의 부진이다. 거의 매년 초 실적 부진 소식이 전해진다. 2017년 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크리스마스를 포함한 2016년 11~12월 판매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2.1% 하락했다. 미국 유통 매출이 같은 기간 전년 동기 대비 3.6%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하락세가 명백해 보인다. 그로 인해 1만명 이상의 인력을 감축할 예정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2017년 1~2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롯데백화점은 1.2%, 현대백화점은 0.7%, 그리고 롯데마트는 5.4% 하락했다. 이제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없어지니 쓸데없는 것을 쇼핑할 확률은 낮아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온라인 쇼핑몰이 우리 삶 깊숙이 진격한다. 모든 정보를 공유하며 투명한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인터넷 쇼핑에서는 앞서 말한 공간적 마력으로 인한 불필요한 소비는 발생하지 않는 것 아닐까? 컴퓨터 과학자이자 철학자, 예술가인 재런 러니어는 특별한 지적을 한다. 온라인 쇼핑몰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돈을 더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책 '미래는 누구의 것인가'에서 재런 러니어는 이렇게 말한다.

"21세기 들머리에 아마존은 '차별적 가격 책정(differential pricing)' 논란에 휩싸였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온라인 사이트가 어떤 제품에 대해 여러분에게 남과, 이를테면 여러분의 이웃 사람과 다른 가격을 매길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당시에 아마존은 그들이 실제로 고객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실험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발표했다. 사람마다 다른 가격을 제시하여 어떤 가격에 책을 살 것인지 알아보려 했다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아마존에 특별한 것은 전혀 없다. 또 다른 예로는 여행 사이트 오비츠(Orbitz)가 있다. 이곳은 더 비싼 컴퓨터를 가진 이용자에게 더 비싼 여행 옵션을 제시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 이런 관행이 드러났을 때 고객들의 심기가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이 관행들은 대체로 합법적이다."

오프라인 상점에서는 환상적인 분위기에 푹 빠져 물건을 샀다. 일단 그 공간에 발을 내딛는 순간 구매를 유도하는 기업에 당해낼 재간은 없다. 다른 사람들의 구매 모습을 보고 더욱 그런 충동이 들었다. 그런데 앞으로 대부분의 구매가 일어날 인터넷 쇼핑몰은 고객들이 더욱 상대하기 버거운 상대다. 너무 많은 고객의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몇 시에 구매를 하는지, 어떤 상품을 주로 들여다보았는지, 어떤 결제 수단을 사용하는지, 구매 주기가 어떻게 되는지 등을 가지고 있다. 소비자는 인터넷 쇼핑몰과 취급하는 물품에 대한 정보가 온라인 쇼핑몰이 제시하는 수준에 그친다. 심각할 정도의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소비자가 비싼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하여 그럴 경우 비싼 여행 옵션을 제시한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어떤 순간에 어떤 상품 정보를 보여주면 소비자의 마음을 세게 흔들어놓을지조차 인터넷 쇼핑몰은 알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 쇼핑몰이 사용하는 추천 필터는 위력적이다. 고객들은 전문가나 친구 추천보다도 인터넷 쇼핑몰이 추천해주는 리스트를 더욱 신뢰할 정도다. 유용하다고 믿고, 실질적 도움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인터넷 쇼핑몰 매출 3분의 1(2014년 기준 약 300억달러)이 이런 추천 필터로 인해 발생했다. 영화, 드라마 등 인터넷 콘텐츠를 제공해 주는 넷플릭스는 이런 추천 시스템 전담 인력이 무려 300명에 달하고 연간 예산이 1억5000만달러에 이른다. 돈을 투자하는 만큼 회수가 가능한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이들의 추천 시스템에 대한 투자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는 스스로의 지갑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아직 명확한 답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숱하게 쏟아져 나오는 개인 데이터를 스스로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이슈다. 온라인 기업은 개인 데이터를 활용해 추가로 구매하게 만든다. 개인은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구매가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서 구매(유도)와 관련된 소비자의 데이터 보호 이슈가 대두될 것이다. 기업과 소비자의 이해가 충돌하기 때문에 쉽지는 않겠지만 그에 대한 대비가 소비자와 기업 모두에 필요해 보인다.

[고평석 인문디지털 커넥터, 책 '제4의 물결, 답은 역사에 있다' 저자]
고평석 인문디지털 커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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