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토피 있으면 긁어내라, 화상을 입으면 햇볕을 쬐어줘라.. 안아키 카페, 사이비 종교 같았다"

최원우 기자 2017. 5. 24.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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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카페.. 의사가 회원 가입해 실상 폭로]
"아이 괴로워해도 이겨내게 하라"
예방접종도 하지 말라고 해
애먼 아이들 건강까지 위협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안아키) 카페에 올라온 화상을 입은 어린이 사진. 이 사진을 올린 회원은 ‘카페 지침대로 뜨거운 물로 찜질하고 햇볕을 쬐어 줬는데 별 효과가 없다’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안아키 캡처

"아토피 진물 증상이 점점 심해지는데 괜찮은 거겠죠?" "아이가 한 달 동안 기침, 콧물 하더니 40도 넘는 고열이 이어지네요. 불안한데…."

최근 논란이 계속되는 온라인 카페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안아키)에 엄마 회원들이 올린 글이다. 회원들은 아토피로 얼굴이 벌겋게 벗겨진 아이와 화상 입었지만 제대로 치료받지 않은 아이 사진 등을 올리며 이 카페 운영자인 한의사 김모씨에게 불안을 호소했다.

대구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김씨는 지난 2013년 약을 쓰지 않는 이른바 '자연주의' 치료를 표방하며 안아키 카페를 열었다. 그는 아픈 아이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도록 유도한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최근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회원이 6만명에 이르는 이 카페는 지금은 폐쇄됐지만, 김씨를 지지하는 일부 회원이 여전히 인터넷에서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본지는 최근 소아청소년과 의사인 A씨로부터 이 카페에 게재된 글 100여 건을 입수했다. 카페 회원으로 몰래 가입해 게시판 글을 발췌했다는 A씨는 "병원에 방문한 환자를 통해 알게 된 안아키에 들어가 봤더니 사이비 종교 집단 같은 '막장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었다"면서 "누군가는 증거 자료를 확보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아 자료를 수집했다"고 말했다.

게시글 중에는 ▲화상을 입으면 온찜질을 하고 햇볕을 쬐어 줘라 ▲예방접종은 피하라 ▲호흡기 질환에 걸리면 숯을 먹여라 ▲아토피는 긁어내라 ▲열나도 해열제 먹이지 말라 등 내용이 포함됐다. 대한소아청소년과개원의사회(소청과)는 이 게시판 글에 대한 본지 문의에 "대부분 잘못된 의학 상식이라 그대로 따를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처럼 현대 의학과 동떨어진 내용을 카페 회원들에게 상담하거나 권고했다. 아이가 아파도 되도록 병원을 가지 말고, 약도 쓰지 말라는 내용이 많았다. "아이가 괴로워해도 스스로 이겨내게 하라"고도 했다.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안아키) 카페에 올라온 화상을 입은 어린이 사진. 이 사진을 올린 회원은 ‘카페 지침대로 뜨거운 물로 찜질하고 햇볕을 쬐어 줬는데 별 효과가 없다’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안아키 캡처

이 때문에 부작용이 속출했다. 아이가 화상을 당했다는 한 엄마 회원은 "(김씨 지침대로) 뜨거운 물에 찜질했다"고 했고, 40도 넘는 고열에 시달려도 아이에게 해열제를 먹이지 않았다는 회원도 있었다. 일부 회원 사이에선 유행성 질환인 수두 면역력을 키우겠다며 수두에 걸린 아이를 불러 아이들에게 일부러 옮기게 하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소청과 관계자는 "일부러 수두에 걸리게 하는 '수두 파티'가 한때 유행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면서 "화상을 입으면 반드시 흐르는 찬물에 식히고, 고열은 아이에게 위험하니 해열제로 열을 식혀주는 게 올바른 대처법"이라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 공인식 예방접종관리과장은 "아이가 예방접종을 안 하면 다른 아이까지 질병에 노출될 수 있고 사회 전체의 면역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대한한의사협회는 최근 "안아키 주장은 현대 한의학적 근거나 상식과 맞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놨다. 시민단체 아동학대방지시민모임은 "안아키 행위는 명백한 아동학대 행위"라며 김씨와 회원 70여 명을 의료법 위반과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보건복지부는 "경찰 수사 결과를 토대로 사실관계가 확인되면 행정처분 등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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