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able] 세포라·로레알·SSG.. 그녀가 손대면 달라진다

최보윤 기자 2017. 5. 24.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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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with] 프랑스 화장품 유통기업 '세포라'크리에이티브 총괄 이보영
세포라 'K뷰티' 기획·신세계 브랜드 리뉴얼.. 패션·유통의'선수 중의 선수'
"일과 가정에 50대 50 투자.. 원하는 시간에 아이랑 함께하는 게 가장 큰 행복"

프랑스를 대표하는 글로벌 화장품 유통 기업 '세포라(Sephora)'. '화장품 천국' '여자들의 놀이터'란 애칭답게 전 세계 2300여 개 매장에서 메이크업, 스킨케어, 보디용품 등 럭셔리부터 저가 제품까지 300여 개 브랜드 제품을 판매한다. 연 매출은 2013년 기준 40억달러(약 4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보영 세포라 크리에이티브 총괄 디렉터는 “매장이든 온라인이든 사람들이 즐겁게 찾고 놀이터처럼 행복해질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웃었다./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이러한 거대 기업의 크리에이티브 전략을 진두지휘하는 이가 바로 한국인이다. 주인공은 이보영(45) 세포라 크리에이티브 총괄 디렉터. 2014년부터 세포라의 브랜드 광고, 매장·온라인 비주얼 디렉팅, e커머스 등 브랜딩과 크리에이티브 전략 5개 팀을 총괄하고 있다. 지난해 세포라 전 매장에 선보이며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던 'K뷰티 섹션'이 바로 이보영 총괄 디렉터의 작품이다.

일반인들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패션·유통업계에선 전설 같은 존재, 선수 중의 선수로 꼽힌다. 2010년부터 4년간 신세계백화점 브랜드 전략 총괄 상무로 일하면서 최고급 수퍼마켓 SSG푸드마켓을 진두지휘하고,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의 작품을 백화점에 들여와 마케팅한 것도 그녀였다. 신세계백화점 종이 쇼핑백에 새겨진 'S체크' 역시 그녀 작품이다. 또 로레알그룹의 '메가 히트'작인 슈에무라 클렌징 오일의 아티스트 협업 제품을 기획하고, 키엘과 조르지오 아르마니 뷰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쳤다.

이화여대 불문과를 거쳐 미국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RISD)과 영국 왕립예술학교(RCA)를 졸업한 뒤 1999년부터 최근까지 디자인 전문 회사를 경영한 디자인통(通)이자 중학생·초등학생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에 잠시 들어온 그녀를 만났다.

정유경과의 인연, 신세계의 변신 이끌어

―가는 곳마다 업계 혁신이었는데요.

"그게 다 실패가 이뤄낸 업적이에요. 갈 때마다 '반대'의 벽에 부딪혔죠. '모두가 안 될 거다'고 말했지만 좌절하지 않았던 게 주효했던 것 같아요. 신세계 광고 촬영을 위해 세계적인 포토그래퍼 스티븐 마이젤을 섭외할 때는 4개월 넘게 설득하면서 70페이지가 넘는 제안서를 보냈죠. 힘들었지만 그렇게 완벽했던 작업은 꼽기도 힘들 거라 생각해요. 신세계와의 여러 작업이 세포라에 입사할 수 있는 주요 바탕이 됐고요."

―처음부터 미술을 전공한 건 아니네요.

"미술을 전공한 할머니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 때 프랑스 투르로 연수를 떠났는데 당시 만났던 현지 친구가 '넌 네가 좋아하는 미술은 안 하고 왜 네가 좋아하는 화가들의 언어를 배우고 있니?'라고 말하는 거예요. '띵'했죠.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지만 할머니 지원 덕에 유학할 수 있었어요. 대학원 시절 'A+B'란 회사를 만들어 프리랜서 디자인 컨설팅을 했는데 운 좋게도 RISD 동창이었던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이 몇 가지 프로젝트를 맡겼어요. 베키아 누보, 분더샵, 조선호텔 리모델링 같은 작업을 했죠. 뉴욕에서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도 저만의 포트폴리오가 계속 쌓이면서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인 듯해요."

―SSG 마켓 역시 상당한 화제였죠.

"백화점은 이미 거대한 매체이기 때문에 신세계의 정체성을 한 번에 보여주기 어렵다 판단했어요. 대신 그 모든 정수(精髓)를 담는 상징적인 것을 해보자는 판단이었죠. 음식, 패션, 트렌드, 라이프스타일을 하나로 융합해 핵심만을 뽑아내 신세계가 기존 유통 기업과 다른지를 이미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① 세포라에서 K뷰티 기획전을 론칭하면서 선보인 광고 비주얼. 한국 사진가 강혜원과 한국 메이크업 아티스트 손대식에게 작업을 맡겼다. 모델은 박지혜. ②이보영 크리에이티브 총괄 디렉터가 지휘해 선보인 세포라 광고 이미지 중 하나. 디지털·매장·온라인·카탈로그 등 모든 채널에서의 이미지를 통합하고 정체성을 보여주는 일을 총괄하고 있다. ③ SSG 푸드 마켓을 만들고 새로운 식품 유통의 상을 보여주려고 세계적인 사진가 스티븐 마이젤과 협업한 사진./세포라·스티븐 마이젤·신세계·강혜원 사진가

직원은 자식처럼, 자식은 직원처럼

―어려운 때가 있었다면?

"둘째를 낳고 싶은데 임신이 안 되는 거예요. 당시 로레알에 다니고 있었는데 프랑스 회사다 보니 직원 복지와 불임 치료 프로그램도 굉장히 좋았어요. 회사 보험으로 연간 2만달러가량 보조를 해줘서 약을 쓸 만큼 썼는데 소용이 없었어요. 결국 실패를 하고 약을 신청하려 했는데 보험 커버가 끝났다며 매달 5000달러씩 내라는 거예요. 많은 기회를 준 회사지만 당당히 박차고 나왔죠. 하하."

―한·미에서 주요 직책에 올랐어요.

"한국에선 아마 회사에서 왕따였을 거예요(웃음). 임원 단체 사진 보고 군대 동기 모임 사진이냐고 물었을 정도로 한국 문화에 낯설었으니까요. 한국서 배운 것도 많아요. 미국은 걸출한 스타가 이끌어가는 구조인데 한국은 스타 대신 조직력·단결력으로 일을 해내죠. 그 조직력은 세계 누구도 따라가기 어려워 보여요."

―유리천장을 부순다 해도 일과 가정을 제대로 양립하는 게 여전히 숙제인데요.

"원하는 시간에 아이랑 함께하는 게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미국서 배운 게 50대50 법칙이에요. 일과 가정 모두 나의 100%를 쏟아 완벽을 기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잖아요. 일과 가정에 50대50으로 투자하되 그 50에 내 역량의 100%를 쏟는 거죠."

―세포라 직속 직원이 100명이 넘어요.

"'엄마 리더십'이라 말하는데요. 자식은 직원처럼 키우고 직원은 내 자식처럼 돌봐야 한다는 거죠. 내 아이라고 생각하면 직원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거예요. 경쟁자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잘되게 북돋워주는 동반자 개념도 필요하고요. 팀을 운영할 때는 영화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을 떠올려요. 영화에서처럼 팀원들이 하나하나 가진 특징이 다른 거죠. 전 그걸 더 계발하게 기회를 주고 어우르는 것이고. 그게 팀이에요."

―직원 작업이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을 텐데 어떻게 마인드 컨트롤 하나요?

"아이를 낳고 나니까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얼마만큼 화를 내봐도 소용없는지를 배우게 되던걸요? 화는 거의 안 내는데 대신 '이런 신호는 화가 난 것이다'는 건 알게 해요. 웃고 살기도 바쁜데 왜 화내면서 시간을 낭비해요."

―행복의 비결은 뭔가요?

"너무 큰 대의를 좇지 않는다는 것? 하루의 99%는 재미없을 수 있어도 나머지 1%만 재밌어도 그 부분에 포인트를 맞추면 하루가 재밌는 거잖아요. 예쁜 꽃을 봐서 좋다든지, 후배 작업이 훌륭하다든지 그렇게 기분 좋아하면 매일매일이 행복한 거죠."

이보영 세포라 총괄 디렉터 프로필

1972 서울 출생

1990~1992 이화여대 불문과(중퇴)

1995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 졸업

1999 영국 왕립예술학교 졸업

2001 뉴욕 나일론 매거진 아트 디렉터

2002 뉴욕 패션 브랜드 띠어리 아트 디렉터

2007 뉴욕 로레알 뷰티(슈에무라 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2010~2014 신세계백화점 브랜드 전략팀 상무

2014~ 세포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본부 크리에이티브 총괄 디렉터(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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