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급 고려시대 사경, 남원 실상사 불상에서 발견

도재기 선임기자 2017. 5. 23.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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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고려시대 말기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사경(종이에 손으로 옮겨 쓴 불경)이 전북 남원 실상사의 불상 불두(머리) 속에서 발견됐다.

전북 남원 실상사 불상 속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사경. ‘보물’급으로 평가받는 이 사경은 불경인 ‘대반야바라밀다경’(대반야경)을 뽕나무로 만든 종이에 은가루로 썼다. 불교문화재연구소 제공.

전문가들은 고려시대의 종이 유물이 희귀한데다 불교사 연구 등에 귀중한 자료여서 ‘보물’급 유물로 평가하고 있다. 실제 지금까지 발견된 고려시대 사경은 대부분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실상사와 (재)불교문화재연구소는 “실상사 극락전에 안치되어 있는 ‘건칠 아미타여래 좌상’ 불두 속에서 뽕나무로 만든 종이(상지)에 은가루(은니)로 ‘대반야바라밀다경’(대반야경)을 옮겨 쓴 ‘상지은니대반야바라밀다경’(桑紙銀泥大般若波羅密多經)을 확인했다”고 23일 밝혔다.

보존을 위해 수습된 사경은 전체 600권의 방대한 대반야경 가운데 ‘권 제396’인 1첩이다. 사경은 은가루로 꽃 무늬를 그린 표지에 금가루(금니)로 대반야경임을 표시하고 있다.

특히 사경의 끝 부분에는 ‘이장계(李長桂)와 그의 처 이씨(李氏)가 선친의 명복을 빌고 집안의 액을 물리치기 위해 시주했다’는 내용이 기록돼있다.

실상사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사경인 ‘상지 은니 대반야바라밀다경’ 끝 부분에는 시주자의 이름과 조성 목적 등이 기록돼 있다.

이 사경을 감정한 송일기 중앙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표지의 양식이 고려 후기인데다, 서체도 이 시기 사경에 주로 쓰인 송설체(중국의 명필 조맹부의 서체)인 점 등으로 볼 때 고려 말기인 14세기 중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며 “보물 959호로 지정된 경주 기림사의 비로자나불 사경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고 밝혔다. 송 교수는 “보물 959호보다는 조금 늦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귀한 유물인 만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불교문화재연구소 임석규 실장은 “사경의 장황은 절첩장(종이를 길게 이어 붙여 일정한 크기로 접은 후 양쪽 끝에 두꺼운 표지를 붙인 것) 형식”이라며 “이런 형태의 장황을 한 대반야경은 국내에 4점만 전해지고 있어 희소가치가 매우 크다”고 밝혔다.

고려시대 말기에 쓰인 사경 ‘상지 은니 대반야바라밀다경’이 발견된 실상사의 ‘건칠 아미타여래좌상’. 건칠은 흙으로 불상 형태를 만든 뒤 옻칠과 삼베를 10여회 붙인 후 흙을 제거해 만드는 불상 조성의 한 기법을 말한다.

임 실장은 “이번 사경은 실상사와 불교문화재연구소가 실상사의 건칠아미타여래좌상과 보광전에 안치된 건칠보살입상의 제작기법, 보존상태 등을 확인하기 위해 3D-CT촬영을 하던 중 발견했다”며 “문화재 조사에 비파괴 조사가 가능한 3D-CT 촬영이라는 첨단 기법을 활용해 얻은 성과라는 점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임 실장은 “사경이 발견된 불상은 2005년도에 X선 조사로 불두 안의 복장물 존재를 확인했고, 3D-CT 촬영을 통해 금속성 물질로 쓴 글자들이 겹쳐 있는 것이 관찰돼 금니나 은니로 쓰인 경전일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며 “접힌 채 오랜 기간 불상 안에 들어있어 보존 상태가 우려돼 수습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임 실장은 “이번에 발견한 경전에 대한 보존처리를 거친 뒤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신청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실상사의 ‘건칠 아미타여래좌상’을 최첨단 기법인 3D-CT 촬영을 한 모습. 불두 부분에 접혀진 사경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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