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위한 '미슐랭 ☆ 3개 공짜식당' 세계가 주목

심진용 기자 2017. 5. 23.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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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빈민과 노숙인을 위한 무료식당 ‘라페트리오 엠브로시아노’를 운영하고 있는 유명 셰프 마시모 보투라(왼쪽에서 두번째)가 주방에서 자원봉사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라페트리오 엠브로시아노 홈페이지

빈민가 버려진 극장이 레스토랑으로 변했다. 노숙인과 난민들을 위한 공간이다. 최고의 셰프들이 이곳 주방에 선다. 노숙인도, 난민도 모차렐라와 파마산 치즈를 곁들인 주키니호박 요리와 라즈베리 아이스크림을 즐길 수 있다. 이곳 ‘라페토리오 엠브로시아노(밀라노 식당)’를 세운 마시모 보투라(55)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 하루에 한 시간쯤은 아름다운 식당에서 아름다운 음식을 먹으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보투라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셰프다. 고향 모데나에서 운영 중인 레스토랑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는 미쉐린(미슐랭) 가이드 별 3개를 받았다. 지난해 6월에는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50’에서 1위를 하기도 했다. 보투라가 밀라노에 엠브로시아노 식당을 연 건 2015년이다. 밀라노 세계엑스포 기간에 남는 식재료를 기부받아 빈민과 노숙인에게 밥을 내주자는 아이디어였다. 그때만 해도 엑스포가 열리는 다섯 달 동안의 한시적 이벤트로 계획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계획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가톨릭 자선단체를 통해 보투라의 아이디어를 들은 교황은 엑스포가 끝난 뒤에도 식당을 계속할 수는 없는지 물었다. 이왕 식당을 연다면 정말 가난한 이들이 많은 곳에 열라면서, 밀라노에서 가장 가난한 그레코 지역의 줄리아노 신부를 보투라에게 소개했다. 줄리아노 신부는 성당 옆 버려진 극장을 레스토랑으로 바꿔보자고 제안했다. 보투라는 ‘영혼을 위한 음식’이라는 사업 재단을 만들었다.

“쥐들만 가득했고, 마약상들이나 찾는 장소였다. 우리는 이곳에 빛과 아름다움과 음악과 요리를 가져왔다.” 보투라는 지난 22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이렇게 말했다. 1930년에 지어진 극장 그레코는 반년 만에 화사한 레스토랑으로 변신했다. 밀라노 엑스포 때 ‘파빌리온 제로’ 테마관을 총괄한 아트디렉터 다비데 람펠로가 건물 개조를 맡았다. 유명 디자이너와 건축가, 가구 회사들이 변신을 도왔다.

유명 셰프 60여명이 머리를 맞대고 레시피를 개발했다. 엠브로시아노 식당이 없었다면 쓰레기통으로 향했을 감자 껍질과 딱딱해진 빵이 창의적인 요리로 탈바꿈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재료, 맛과 품질에는 이상이 없지만 모양이 좋지 않아 팔리지 않는 식재료들이 이곳에 모인다. 밀라노에서 손꼽히는 셰프들이 하루씩 돌아가며 주방에 선다. 자원봉사자들이 매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요리 100인분을 만든다. 보투라는 “20분도 안돼서 접시를 비우고 도망치듯 떠나던 손님들이 이제는 맛을 두고 불평을 한다”면서 “이제야 비로소 우리가 그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보투라는 지난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 리우에도 ‘라페토리오 가스트로모티바’를 열었다. 선수촌에서 남은 식재료를 모아 빈민과 노숙인들을 위해 매일 5000인분의 식사를 만들었다. 전 세계 셰프 80명이 리우 식당에 함께했다. 지금도 리우의 식당은 지역 슈퍼마켓에서 식재료를 받아 무료로 요리를 내준다.

최근에는 미국에 두 곳 이상 식당을 세우는 조건으로 록펠러재단으로부터 65만달러 후원을 받았다. 지난 8~9일 밀라노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부도 엠브로시아노 식당을 찾은 뒤 후원을 약속했다. 다음달에는 영국 자선단체 펠릭스프로젝트와 손잡고 런던에 ‘라페토리오 펠릭스’를 연다. 보투라는 브렉시트 뒤 영국이 난민에게 문을 닫고 노숙인들을 꺼리는 나라가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2년여 동안 그의 사업을 통해 버려졌을 음식 재료 25t이 요리로 변신했다. 난민과 노숙인 1만6000명이 맛있는 요리와 함께 하루 1시간의 즐거움을 누렸다. 그러나 세계의 8억명은 여전히 굶주리며, 매년 생산되는 음식과 식재료 13억t 가운데 3분의 1은 버려진다. 보투라는 엠브로시아노 식당 앞에 ‘변명은 필요 없다(No More Excuses)’고 쓴 네온사인 간판을 세웠다. 오른쪽 팔뚝에도 같은 문구를 문신으로 새겼다. 음식이 넘쳐나는데도 정작 굶주리는 이들은 구하지 못하는 현실 앞에 보투라가 전하는 메시지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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