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폭포' 논란은 한국 공공미술 현주소다

노형석 2017. 5. 23.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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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물 논란 '슈즈트리' 공공미술인데 여론수렴 미흡
한달도 안돼 업체, 작가와 수의계약으로 완성
'아마벨' '말춤 동상' 등 숱한 과거 논란에도
성찰 없이 흉물 논란만 판박이로 되풀이해

[한겨레]

옛 서울역사 광장의 강우규 의사 동상 앞을 뒤덮은 공공미술작품 ‘슈즈트리’의 일부 모습. 헌 신발 3만켤레로 역사와 부근 서울로 고가공원 사이를 폭포와 강물 모양새로 뒤덮은 이 작품을 두고 흉물 논란이 일었다.

서울시는 왜 겉 다르고 속 다른 말과 행동을 할까.

20일 개장한 서울역 고가공원 서울로 7017에 설치된 헌신짝 공공조형물 ‘슈즈트리’의 흉물 논란을 지켜보며 드는 생각이다. 조경작가인 황지해씨가 이 문제작을 만든 과정은 모순적이다. 지난해 12월 서울시가 ‘서울은 미술관’ 사업을 시작하면서 선언했던 공공미술프로젝트의 약속들과 어긋나는 부분이 적지 않은 까닭이다.

당시 시가 선언한 약속은 다섯개 항목이었다. 공공미술을 주어로 △시민이 주인이며 △시민의 삶을 위한 것이며 △공간과 자원을 소중히 여기며 △도시의 문제를 찾아내고 개선하며 △도시와 함께 변화한다는 원칙이다. 그런데 ‘슈즈트리’는 이 요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슈즈트리’는 공공미술의 핵심인, 작품 개념에 대한 여론 수렴에 소홀했다는 인상이 짙다. ‘지저분하며 불결하고 불길한 느낌을 준다’는 상당수 시민들의 불평에서 드러나듯 이 작품은 서울역을 둘러싼 시민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데 그닥 성공하지 못했다. 지난 100여년간 우리 근현대사의 중심이자 민중의 숱한 애환이 묻어 있는 이 공간에 대한 일상적 감정과 되레 충돌한다. 사실 현대미술 작가들에게 주인 없는 신발은 쉽게 쓰는 소재가 아니다. 재난이나 이산, 죽음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러오기 때문에 프랑스 대가 볼탕스키의 설치작품들처럼 특정한 맥락이나 명확한 사회적 주제를 전달하는 전시에서 제한적으로 활용되곤 한다.

가장 결정적인 모순은 세 번째 원칙이다. 공간과 자원을 소중히 여기기. 신중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꼭 필요한 곳에 꼭 필요한 만큼 개입한다는 원칙을 ‘슈즈트리’는 지키지 않았다. 28일까지 불과 9일 내보이는 조형물의 지지대, 채집, 조명 설치에만 1억원 넘는 거액을 썼다. 시에는 지난해 ‘서울은 미술관’ 프로젝트 실행과 시내 공공조형물 심의를 위해 공공미술자문단이 생겼다. 그러나 고가공원 관리 책임을 맡은 부서인 ‘푸른 도시’ 쪽과 작가는 사전에 자문단과 논의하지 않은 채 이달 2일 설치업체와 수의계약하고 작업을 밀어붙였다. 작가인 안규철 자문단장은 “‘슈즈트리’의 작품 스케치를 최근 뒤늦게 입수하고 우려했지만, 설치가 진행 중이어서 관여할 여지가 없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노숙자 쉼터 구실을 해온 역 주변에 공간적으로 의미있는 울림을 던졌다고 보기도 힘들다. 신발떼와 끈들이 늘어져 터널을 이루거나 강물처럼 흘러가는 듯한 얼개는 을씨년스런 느낌만 더했다. 작가는 위쪽 중림동 구두상가의 맥락도 감안했다는데, 사실 구두상가는 고가공원 위에서도 겨우 건물군 뒤쪽 윤곽만 알아볼 수 있다. 게다가 신발떼 행렬이 일제강점기인 1919년 역전에서 조선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의 동상을 둘러싼 광경은 공간의 역사성을 짓뭉개고 헝클어뜨리는 ‘참상’처럼 되어버렸다. 도시의 문제를 개선하고, 도시와 함께 변화해온 시대의 의미와 가치를 오롯이 담는데도 실패한 셈이다.

이번 논란은 1990년대 이후 거듭되어온 공공조형물 논란과 판박이란 점이 유감스럽다. 97년 강남 포스코센터 앞에 놓인 뒤 흉물 논란이 거듭돼 결국 화초 사이에 가려진 프랭크 스텔라의 비행기 잔해 조형물 ‘아마벨’이나 2006년 청계천 들머리에 설치된 뒤로 예산 낭비, 맥락 불투명 등의 지적을 받은 클라스 올덴버그의 ‘스프링’, 최근 졸속 시비를 빚은 강남 코엑스 말춤상, 여의도 한강변의 영화 <괴물> 조형물 등에 이르기까지 숱한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나 미술계가 제대로 논란을 성찰하며 갈무리하는 경우를 찾지 못했다. ‘슈즈트리’는 곧 철거되겠지만, 서구처럼 작품 설치와 논란의 전말을 깊이있게 복기하며 공공미술의 현주소를 대중과 폭넓게 공유할 수 있는 전환점을 만들 수는 없을까. 3월 미국 뉴욕 월가의 황소동상 맞은편에 임시로 놓였다가 대중의 환호 속에 내년 초까지 설치가 연장된 ‘두려움 없는 소녀상’의 성취가 더욱 부러워진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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