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감독이 갑자기 자리를 비우게 되면서 한화 구단과 선수단도 우왕좌왕했다.

한화 구단 측은 23일 대전 KIA전 시작을 1시간 앞둔 오후 5시30분께 입장을 정리했다. 오후 3시8분 발표된 ‘김성근 감독 사의 표명’ 보도자료 내용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임헌린 홍보팀장은 “김성근 감독이 21일 삼성전을 마친 뒤 운영팀장에게 사의를 전하고 1군 코칭스태프 회의를 통해서도 ‘내일부터 경기장에 나오지 않겠다’고 말 한 뒤 그룹 관계자에게도 전화를 통해 사의를 드러냈다”고 말해 ‘경질’ 아닌 ‘사퇴’임을 강조했다. 이어 “사의 수용 여부를 검토하던 단계에서 오늘 오후 2시30분 언론에 ‘경질’ 보도되는 바람에 감독의 사의 표명 사실을 발표하게 됐다”며 “현재 김 감독이 그룹 관계자와 면담을 진행중이라 확실한 사퇴 여부를 발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성근 감독이 사의를 표한 것은 분명하지만 구단이 수용하기 전에 외부에 공개돼 어쩔 수 없이 현재 상황까지만 발표하게 됐고, 아직 김성근 감독이 완전히 지휘봉을 놓은 것은 아니라는 내용이다.

이는 한화의 엔트리 등록 작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박종훈 한화 단장은 이날 오후 대전구장에서 1군 코치들과 일대일 면담을 가졌다. 사실상 김성근 감독 경질 이후를 준비하기 위한 면담으로 보인다.

한화 측은 “김 감독 사의 수용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지만 일단 오늘 KIA전을 준비해야 했다”며 “박 단장이 12시50분 면담을 통해 김광수 수석코치에게 감독대행을 맡기려 했으나 본인이 고사했다. 박 단장은 1시20분 코칭스태프 전체와 만나 이상군 코치에게 대행을 맡긴다는 사실과 함께 ‘잘 부탁한다’고 인사했다”고 밝혔다. 이상군 투수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으면서 미등록 상태던 정민태 불펜 코치를 투수코치로 등록시키기 위해 한화는 김광수 수석코치를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김성근 감독은 아직 사퇴 여부가 확정되지 않아 엔트리에는 그대로 등록돼있다. 감독 이름은 엔트리에 그대로 있는데 경기는 감독대행이 진행하는 상황이 됐다.

선수들도 혼란스러워했다. 경기 전 훈련을 정상적으로 소화했지만 이미 퍼진 경질설을 접한 뒤라 조심스럽게 주위에 묻기도 했다. 더그아웃 내 김성근 감독의 자리는 바로 사라졌다. 허리 수술을 받은 김 감독이 사용하는 전용 탁자와 의자는 경기중은 물론 선수들 훈련 중에도 언제나 더그아웃 앞쪽에 설치돼있지만 이날은 이미 사라져있었다.

박종훈 단장은 당초 오후 4시30분 선수단 미팅도 소집했다. 전달받은 일부 선수들은 “단장 미팅?”이라고 되물으며 당황하기도 했다.

박 단장은 이 자리에서 감독 대행 체제를 설명하고 선수들이 동요하지 말 것을 당부하려 한 듯 보인다. 그러나 실제 미팅은 이상군 감독 대행이 진행했다.

이날 한화 더그아웃에는 취재진이 몰려있었다. 박 단장은 이번 사퇴 과정을 비롯해 그동안 여러 차례 김 감독과 충돌을 빚어왔다. 김 감독이 지휘봉을 놓게 된 와중에 자신이 직접 언론에 노출되는 상황을 꺼린 것으로 보인다.

선수단 미팅은 약 1분 만에 짧게 끝났다. 갑자기 지휘봉을 잡게 된 이상군 감독대행은 “각자 자기 자리에서 하던대로 열심히 하자”는 취지로 짧게 선수들을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