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스위스·벨기에.. 중서부 유럽 '脫원전 벨트' 확산

런던/장일현 특파원 2017. 5. 23.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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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 국민투표 5修만에 "퇴출"
후쿠시마 사고 이후 여론 돌아서
"年370만원 더 내고도 찬물 샤워" 불편 예상에도 국민 58%가 찬성
현재 전력의 36% 원전에 의존
전력 부족·에너지 안보 우려 1인당 전기 소비 43% 줄이기로

"2050년까지 1년에 3200스위스프랑(약 370만원)을 더 내고도 (전기가 부족해) 차가운 물로 샤워하시겠습니까?"

스위스의 제1 야당인 우파 국민당(UDC)은 지난 21일(현지 시각) 실시된 국민투표를 앞두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전단을 배포했다. 이번 국민투표는 현재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 5기를 오는 2050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내용의 '에너지 전략 2050' 채택 여부를 물었다. 투표 결과 스위스 국민의 58.2%가 원전 폐쇄에 찬성했다.

스위스 야당 국민당의 원전 포기 반대 포스터가 제네바의 한 건물 벽에 걸려 있다. 포스터에는 ‘3200스위스 프랑 더 내고도 차가운 물로 샤워하시겠습니까’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프랑스어권 매체‘20minutes’

원전 폐쇄로 인한 전기료 부담 상승은 스위스 국민의 최대 관심사였다. 야당은 원전 폐쇄로 소비자와 기업들 부담이 급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당은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이 2000억 스위스 프랑(약 229조4000억원)으로 추산된다"며 "이는 4인 가구가 오는 2050년까지 매년 3200스위스프랑을 더 부담하는 셈"이라고 했다. 반면 스위스 정부는 "야당 주장은 전기료 이외에 대체 전력 생산 시설 건설 등 모든 비용과 세금을 합쳐 금액을 부풀린 것"이라며 "실제 전기료 인상은 4인 가구 기준 1년에 40스위스프랑(약 4만6000원)에 그칠 것"이라고 반박했다.

원전 폐쇄가 '에너지 안보'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현재 스위스는 전체 전력 생산의 약 36.4%를 원전에 의존한다. 수력발전이 57.9%로 가장 많고, 태양광·바이오·풍력 등이 5.7%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 전력 생산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원전을 폐쇄하면 유사시 전력 부족 현상이 발생해 프랑스·독일 등 주변국에 에너지 수입을 크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 스위스 정부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의 전력 생산량을 지금의 4배 정도로 늘리고, 오는 2035년까지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을 2000년에 비해 43%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원전 폐쇄로 인한 비용 상승을 일부 전기료 인상과 에너지 소비 줄이기로 상쇄하겠다는 전략이다.

스위스 야당 국민당의 원전 포기 반대 포스터가 제네바의 한 건물 벽에 걸려 있다. 포스터에는 ‘3200스위스 프랑 더 내고도 차가운 물로 샤워하시겠습니까’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프랑스어권 매체‘20minutes’

지난 1969년부터 원자력발전을 시작한 스위스는 '탈(脫)원전'과 관련, 이번을 포함해 모두 다섯 번의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1984년 국민투표에선 55%가 '원전 없는 미래'에 반대했고, 1990년엔 53%, 2003년엔 66.3%가 원전 폐쇄에 반대했다. 작년 11월에도 원전 운영을 45년으로 제한하자는 방안을 54.2% 반대로 부결시켰다. 하지만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반대 여론이 지속적으로 커졌고, 결국 이번 국민투표에서 국민 과반이 '원전 제로(0)' 전략에 찬성했다. BBC 등은 "스위스 국민이 (이번 투표에서) 원전 폐쇄로 인한 전기료 부담 상승보다 폭발 등 원전이 초래할 수 있는 사고와 부작용 등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였다"고 했다.

스위스가 모든 원전의 폐쇄를 결정하면서 중·서부 유럽을 중심으로 '탈(脫)원전 벨트'가 확산되고 있다. 이달 취임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현재 프랑스 전체 전력 생산의 77%에 달하는 원전 의존도를 오는 2025년까지 50%로 낮추겠다"고 공언했다. 세계에서 원전이 가장 발달해 있는 프랑스는 현재 58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다.

앞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인 2011년 5월 "오는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독일 정부는 즉각 전체 17기의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하는 작업에 들어갔고,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은 8기에 불과하다. 2010년 22%에 달했던 원전 의존도도 지난해 13%로 줄었다. 전체 전력 생산의 55%를 원전에 의존하는 벨기에는 오는 2025년까지 원전 7기를 모두 폐쇄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1986년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원전 4기를 모두 폐쇄한 이탈리아는 베를루스코니 총리 시절 원전 재도입 방안이 추진됐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논의가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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