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바다는 어떤 色인가요

제주=정유진 기자 2017. 5. 23.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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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김창열 미술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물' 展]
김혜순 詩에서 영감 받은 전시.. 회화부터 비디오 作까지 다양
물의 속성 색채·빛 등으로 표현

건드리면 톡 터질 것만 같은 물방울 하나가 흘러내린다. 물방울 지나간 자리엔 울퉁불퉁 그림자가 남았다. 김창열(88) 작품 '회귀'다. 그는 "물방울 그리는 행위는 모든 걸 물방울 속에 용해시켜 '무(無)'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물'은 김혜순의 시(詩)다. 그는 '직육면체 물, 동그란 물, 길고 긴 물, 구불구불한 물/…/자꾸만 이곳에 있으면서 저곳으로 가고 싶은/그런 운명을 타고난 저 물이/초침 같은 한 방울 물이/내 뺨을 타고 어딘가로 또 흘러가네'라고 노래했다.

제주시 한림읍 김창열 미술관에서 6월 11일까지 열리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물'전(展)은 물에서 시작해 물로 끝난다. 김혜순 시를 제목 삼아 백남준, 문창배, 이이남 등 작가 10명이 물을 주제로 한자리에 모였다.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에서 출발해 회화, 사진, 비디오, 설치 작업으로 이어진다. 작가들은 물의 이미지와 속성을 각기 다른 형상과 색채, 질감, 소리와 빛으로 풀어냈다.

임창민은 무채색 창문 틀 너머로 보이는 제주 바다 풍경을 담았다. 언뜻 사진 같지만 화면의 일부는 바닷물이 일렁이는 영상 작품이다. 멀리 형제섬이 보인다. /김창열 미술관

미디어아티스트 임창민은 제주 바다의 고즈넉한 풍경을 담았다. 언뜻 보면 사진이지만 일부분이 영상으로 바뀌어 움직인다. 무채색 창문 틀 너머로 제주의 형제섬이 자태를 뽐내고, 섬을 둘러싼 바닷물은 넘실넘실 춤춘다. 이이남의 물은 정반대다. 5개의 LED TV화면을 통해 콸콸 쏟아지는 거칠고 힘찬 물이다. 작가의 '박연폭포'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특별전에 출품됐던 것으로 높이만 8m다. 물소리 들으며 쏟아지는 폭포를 바라보고 있으면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린다.

백남준의 비디오 조각 'TV 부다'는 크기는 작지만 파워풀하다. 작은 부처상을 들고 다니며 눈 오는 날과 안개 피어오르는 날 찍은 영상을 옛 TV 속에 담았다. 부처상 위로 빗방울 뚝뚝 떨어지고 흰 눈이 소복이 쌓인다. 실제 촬영에 쓰인 조각상도 전시돼 있다.

백남준 제자이자 비디오 아트 거장인 빌 비올라의 '세 여자'도 독특하다. 어머니와 젊은 두 딸이 흑백 물 벽을 향해 앞으로 앞으로 걸어나온다. 물 벽을 뚫고 나오는 순간 색채를 되찾는 세 여자.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물로 은유한 영상 작품이다.

가구가 물에 떠있는 듯한 한경우의 '그린하우스'. /김창열 미술관

한경우의 '그린 하우스'는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설치 작품이다. 투명 끈을 사용해 의자를 공중에 매단 뒤 벽을 포함한 가구 절반을 파란색으로 칠했다. 실내가 마치 물에 잠긴 듯한 모습으로, 가구들이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형상이다.

김선희 관장은 "물을 소재 삼아 작업하는 다양한 연령층의 작가들이 물이라는 존재를 얼마나 다채롭게 변주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며 "김혜순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출발한 전시인 만큼 시도 읽고 미술도 감상하는 인문학적 전시가 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064)710-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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