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다"

손진석 경제부 기자 2017. 5. 2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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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석 경제부 기자

나라가 파산 위기에 몰린 1998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이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말한다. "일면식도 없지만 일을 잘한다고 해서 뽑았소." 공동 정부를 구성한 자민련이 충청 출신 이규성을 추천하긴 했다. 하지만 그는 정권 창출에 기여한 것도 없고, DJ와 인연도 없는 사람이었다. 노태우 정부 때 재무장관을 하고 물러나 고향 논산에서 대학 강의를 나가며 초야에 묻혀 있었다. DJ는 말을 섞어본 적도 없는 이규성을 경제팀 수장으로 불러들였다.

DJ는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으로는 강봉균을 발탁했다. 후일 강봉균의 이야기다.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장인 김중권씨한테 연락이 와서 만났더니 정책기획수석을 맡아 달라 그래요. 저는 김영삼 정부에서 정보통신부 장관을 하면서 외환 위기 책임이 있다고 느껴 마음이 무거웠고, 새 정권 탄생에 기여한 바도 없어서 거절했어요. 그런데 DJ가 안가(安家)로 불러 '나라가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해 있으니 재고해줬으면 좋겠소'라고 직접 부탁하더군요.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3년8개월 만에 구제금융을 모두 갚기까지 국민이 희생하고 땀 흘렸지만 친소(親疎)를 따지지 않고 능력 있는 소방수를 경제팀에 기용하고 힘을 실어준 DJ의 용병술도 적잖은 힘을 발휘했다. '빅딜'처럼 피 흘리는 정책 결정에 결단력을 보인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도 DJ와 안면 있던 사이는 아니었다.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지명된 김동연 아주대학교 총장이 22일 오전 박수를 받으며 특강장에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정부 첫 번째 경제부총리로 지명된 김동연 후보자가 기용된 과정도 DJ 정부 초기와 유사하다. 김 후보자는 기자회견에서 인선 과정에 대한 질문에 "(문재인)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고 심지어 전화 통화를 한 적도 없다"고 답했다. 과거 정부에서 장차관을 마치고 물러나 대학(아주대 총장)에 몸담고 있었다는 점에서 김 후보자 발탁은 오래전 이규성을 불러들인 것과 비슷하다. 관료들은 안도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김 후보자를 발탁한 것은 '정치적 거리를 고려하지 않고 능력 위주로 인사한다'는 신호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올해 수출을 중심으로 각종 경제지표가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는 세계경제가 호전되면서 일시적으로 곁불을 쬐는 정도라고 지적한다. 저출산·고령화, 고질적인 청년 실업, 천문학적인 가계 부채 등 구조적인 위험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위기가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경고음이 사방에서 울린다.

경제 위기도 사람이 극복해야 하니 앞장선 사람이 누구냐가 중요하다. 경기가 반짝 좋아져 체력이 일시 회복된 지금이 구조조정에 들어갈 적기라는 주장도 많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는 전문가를 내세워 위기를 관리하고 미래를 모색해야 한다. 특히 경제 분야 인사는 정권에 지분 가진 이들에게 논공행상하듯 해선 안 된다. 정파적 이해관계를 초월해 인재를 등용해 믿고 맡겨야 한다. 그런 인사 원칙이 일회성 보여주기로 그쳐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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