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 학생들, 사회 고민 나눌 여유도 없네요 .. 녹두거리 책방 '그날' 29년 만에 규모 줄여 이사

임미진 2017. 5. 23.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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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가게서 만난 서점 주인 김동운씨
전국 유일 인문사회과학 책 전문점
경영난에 건너편 뒷골목으로 옮겨
"정체성 살리려 실용서는 안 팔아"
서울대 앞 인문학 서점 ‘그날이 오면’ 김동운 사장이 지난 18일 규모를 줄여 서림동 주택가로 이전한 새 서점에서 책들을 정리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서울대 앞 상점가인 녹두거리(서울 관악구 대학동)에 1988년 문을 연 서점 ‘그날이오면’(이하 그날)은 전국에 하나 남은 인문사회과학 전문 서점이다. ‘그날’은 당시 서울대 학생 문화의 중심지였다. 학회나 동아리 활동을 하는 학생들은 녹두거리를 찾으면 ‘그날’부터 들렀다. 서점 앞 게시판엔 “OO 주점에서 학회 뒤풀이를 한다”거나 “OO 카페에서 세미나를 한다”는 메모가 수십 개씩 붙어있었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학생들은 ‘그날’을 통해 만나고 ‘그날’에서 공부할 거리를 찾고, ‘그날’에서 고민을 나눴다.

그런 ‘그날’이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축소 이전했다. 18일 녹두거리 건너편의 주택가(서림동) 뒷골목에 막 문을 연, 25㎡의 새 가게에서 서점 주인 김동운씨를 만났다.

김씨는 “취업에 대한 걱정으로 사회에 대한 고민을 나눌 여유가 없는 대학생들이 안쓰럽다”면서도 “길게 보면 ‘그날’이 지키려 노력했던 인문사회적 가치가 다시 힘을 얻고 서점이 번성할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동운동가 출신인 김씨가 88년 녹두거리에 ‘그날’을 열었을 때는 이미 대학가의 학생 저항 문화가 정점을 찍은 뒤였다. 90년대 들어 학생운동이 빠르게 힘을 잃어가며 고려대 앞 ‘장백’이나 연세대 앞 ‘알서점’ ‘오늘의책’, 서울대 앞 ‘열린글방’ ‘백두서점’ 등이 차례로 문을 닫았다. 한때 ‘그날’은 이런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98년엔 서점 위층에 세미나 카페를 열 정도로 경영 사정이 좋았다.

서울대 앞 인문학 서점 ‘그날이 오면’ 김동운 사장이 지난 18일 규모를 줄여 서림동 주택가로 이전한 새 서점에서 책들을 정리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Q : 비교적 잘 버텨온 비결이 뭘까.

A : “책을 사는 장소라기보다 사랑방 역할을 했 다. ‘그날’에 오면 친구들이 어디에 모여있는지, 어떤 책을 보 는지 알 수 있었다.”

Q : 학생들이 인문사회 서적을 읽지 않아 서점이 어려워졌나.

A : “2000년대 들어 학생들이 줄기 시작했다. 예전 학생들에 비해 지금 학생들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 훨씬 크다. 예전 학생들은 뭘 하든 못 먹고 살겠느냐고들 생각했는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왜 사회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느냐고 학생들 탓만 할 수도 없다.”

Q : 왜 취업 준비나 어학 교재는 들이지 않나.

A : “실용서를 들인다 해도 운영이 크게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정체성만 흐려질 뿐이다.”

Q : 학생 문화도 많이 바뀌었는데.

A : “혼술·혼밥이라고들 하는데 실제로 그런 모습이 보인다. 예전엔 공부도 놀이도 같이 했는데, 요즘 학생들은 카페에서 혼자 수업 준비를 한다. 서점이 예전 같지 않은 건 사실 이런 개인화가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Q : 촛불집회를 보듯 대학생의 사회 참여는 여전히 뜨거운 것 아닌가.

A : “촛불집회는 일시적인 분노 표출이라 생각한다. 사회의 궁극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이걸 나서서 해결해보겠다는 의지는 부족하다. ”

Q : 요즘 학생들은 어떤 책을 많이 읽나.

A : “지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교양서를 많이 읽는다. 고시 공부나 취업 준비를 하다 공허한 마음이 들 때 우리 서점을 찾는것 같다. 예전에는 사회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담은 책이 잘 나갔다 .”

Q : 서점 말고 다른 일을 찾을 생각은 안 했나.

A : “가족들에게 미안할 때도 있지만, 나는 최소한의 생활만 영위할 수 있다면 경제적 풍요를 얻고 싶은 생각은 없다. 우리 사회가 가야하는 길에 내가 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외롭다고 느낀 적도 없다.”

Q : 다시 예전 같이 서점이 북적거릴 수 있을까.

A :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의 이 흐름이 잘못 됐고, 이대로는 절대 더 나은 세상으로 갈 수 없다는 걸 다들 깨달으면 흐름이 바뀔 거라 믿는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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