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듣고 싶던 바로 그 말

입력 2017. 5. 22. 15:08 수정 2017. 5. 2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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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
‘광주선언’ 통해 5·18 왜곡 바로잡고 개혁 시동 거는 문재인 대통령

5월의 광주는 눈물바다가 됐다. 37년 전과 같은 슬픔과 비통함의 눈물이 아닌, 기쁨과 환희의 눈물이었다. 광주의 중심에 문재인 대통령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5월18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5·18 정신을 헌법에 넣겠다고 약속했고, 1980년 5월18일 출생과 함께 아버지를 잃은 ‘5·18둥이’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5·18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문 대통령이 이날 광주에서 보인 파격적인 행보는 그가 앞으로 추진할 개혁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시민들이 꾸준히 관심을 갖고 문 대통령의 개혁정책에 힘을 실어주며 잘하는 것은 잘한다고 격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문재인의 광주 정신은 어쩌면 대한민국을 뒤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취재 정대하 <한겨레> 기자, 사진 정용일 기자, 편집 송채경화 기자, 디자인 장광석
5월18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1980년 5월18일에 태어난 유족 김소형(37)씨의 사연을 들으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눈물 날라하드마.”

시민군 출신 소설가 전용호(61)씨는 이날의 ‘감동’ 포인트를 수식어에서 찾았다. 5월18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박관현’을 언급할 때 온몸에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1982년 광주교도소에서 광주 진상 규명을 위해 40일간의 단식으로 옥사한 스물아홉 살”이 문 대통령이 전남대생 박관현을 설명하며 사용한 수식절이었다.

박관현은 1980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광주 지역 학생운동의 중심인물이었다. 그는 “관현이 형”과 1978년 광주·전남에 최초로 생긴 노동자 야학인 ‘들불야학’에서 강학(가르치며 배우는 교사)으로 활동했다. “(문 대통령이) 진짜 듣고 싶었던, 누군가 해줬으면 하는 그런 부분을 딱딱 골라갖고 말씀하시드마. …박관현·표정두·조성만·박래전 이런 분들 챙긴 것 봉께 대단하셔.”

“아버지가 안아준 것처럼 포근”

문 대통령이 이날 행사에서 보여준 ‘몸 언어’도 이명박·박근혜 정권기에 견디기 힘든 모욕을 감당해야 했던 광주 시민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행동으로 표현해주셨어요. 유족에게 걸어가서…. 마음이 없으면 그리 안 되지요.” 광주 시민 박아무개(53)씨의 이야기다. 문 대통령은 이날 ‘5·18둥이’ 김소형(37)씨가 고인이 된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듣다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김씨의 편지 낭독이 끝나자 연단으로 올라가 20여m를 뚜벅뚜벅 걸어갔다. 김씨는 문 대통령이 따라오는 것을 알지 못하다가 진행요원이 귀띔해줘 뒤를 돌아봤다. 문 대통령은 김씨와 악수한 뒤 한참 동안 안아주며 위로했다. 박씨는 숨진 아버지를 부둥켜안듯 문 대통령의 가슴에 안겼다. 문 대통령은 자리로 돌아온 뒤에도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훔쳤다.

‘슬픈 생일’이라는 제목의 김씨 편지는 듣는 이들을 눈물짓게 했다. 김씨의 아버지 김재평씨는 1980년 5월22일 집 안까지 뚫고 들어온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졌다. 전남 완도 수협 직원이던 그는 5월18일에 태어난 딸을 보러 광주로 왔다가 변을 당했다. 딸은 당연히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5·18은 제가 이 세상에 왔던 기쁜 날이기도 하지만 제 아버지를 빼앗긴 슬픈 날이기도 합니다. 이제 당신보다 더 커버린 나이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당신을 이렇게 부를 수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문 대통령은 기념식이 끝난 뒤 김씨 등 유족과 함께 고인의 묘지를 찾아 헌화하고 참배했다. 김씨는 이후 문 대통령과의 짧은 만남을 묻는 기자들에게 “아버지가 온 것처럼, 아버지가 안아준 것처럼 따뜻하고 포근했다. …어깨에 기대 목 놓아 울고 싶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이날 기념사는 그야말로 ‘광주 선언’이었다. 문 대통령의 ‘선언’은 촛불의 힘에서 나온 자신감의 발로인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새 정부의 정체성을 광주 정신을 이은 ‘촛불정권’으로 규정했다. “마침내 오월 광주는 지난겨울 전국을 밝힌 위대한 촛불혁명으로 부활했습니다. 새롭게 출발한 문재인 정부는 광주 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새 정부는 5·18 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의 정신을 받들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하게 복원할 것입니다.” 이 발언을 듣는 이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5·18 민주유공자 김상집씨는 이날 “아따, 새 시대가 와부렀네요. 세상에 대통령께서 광주 정신과 촛불 정신을 잇겠다고 천명하셨네요. 전국의 5·18 진상 규명 노력을 기억하자는 말씀을 듣고 찡하데요”라고 말했다.

“요것이 바로 진정한 기념식이여”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5월18일 광주에서 열린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권한대행(오른쪽 두 번째)은 입을 다물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날 부활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먹먹한 가슴을 확 뚫어주는 ‘사이다’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닙니다. 오월의 피와 혼이 응축된 상징입니다.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 그 자체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은 희생자의 명예를 지키고 민주주의의 역사를 기억하겠다는 것입니다.”

문 대통령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지루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문 대통령과 참석자들은 일어나 서로 손잡고 이 노래를 목청껏 불렀다. 일부 5·18 단체 회원들과 시민들도 손을 위로 뻗어올리며 힘차게 노래를 불렀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이 노래가 제창된 것은 9년 만이다. 지난 5월12일 밝힌 문 대통령의 제2호 업무지시가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 5·18 기념식 제창이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1950~80)과 들불야학 설립을 주도했던 고 박기순(1957~78)의 ‘영혼 결혼식’이 치러진 뒤 1982년 4월께 만들어졌다. 소설가 황석영씨와 전남대생 김종률(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씨 등이 만든 노래극 <빛의 결혼식>에 마지막 합창곡으로 실렸다. 5·18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 현장에서 불렸던 이 노래는 이후 자연스럽게 5·18을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 이 노래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정부 공식 행사로 치러진 1997년부터 2008년까지 사람들이 다 함께 일어서서 부르는 방식으로 제창됐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출범 두 해째인 2009년부터 이 노래를 합창단이 합창하면 원하는 사람만 따라 부르는 형태로 바꾸어버렸다. 광주는 제창을 부활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명박 정부도 후임 박근혜 정부도 무슨 이유에선지 이들의 요구에 귀를 닫았다. 2013년 박승춘 당시 국가보훈처장은 한발 더 나아가 별도의 기념곡 제정을 추진한다고 밝혀 거센 반발을 불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수구 중심으로 현대사를 재정립하면서 5·18 민주화운동을 흠집 내기 위해 5·18의 상징인 이 노래를 흔들어댔던 것이다.

문 대통령이 5·18 진상 규명을 약속한 부분도 시민들에게 큰 힘이 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헬기 사격까지 포함해 (5·18 당시)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혀내겠다. 5·18 관련 자료의 폐기와 역사 왜곡을 막겠다”고 약속했다.

의자 위에 목발을 놓고 앉은 채 기념식을 지켜보던 5·18 민주유공자 이세영(57)씨는 “요것이 바로 진정한 기념식이여…”라고 감격스러워했다. 1980년 5월21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에 맞서 시위하던 그는 집단 발포로 총상을 입고 후유증으로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5월21일 집단 발포가 행해진 날, 옛 전남도청 앞에서 신군부에 저항해 민주주의를 요구하던 광주 시민에게 총을 쏘라고 명령한 자가 누구인지 아직도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다. 시민 34명이 총에 맞아 숨진 5월21일의 ‘학살 행위’에 대해선 전두환 등 5명에게 내란죄의 ‘폭동’ 행위로 유죄가 나왔지만, 이 학살을 지시했음을 뜻하는 ‘내란목적살인죄’는 당시 범죄행위에 포함되지 않았다.

개혁정책으로 이어질 ‘광주 선언’

5월17일 오후 광주 금남로에서 5·18 전야제가 열렸다. 정용일 기자

‘광주 정신’이라는 문 대통령의 표현도 시민들의 자긍심을 북돋웠다. 문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것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제안하지 않았던 ‘파격’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는 저의 공약도 지키겠다”고 말했다. 지난 2월 <한겨레> 칼럼을 통해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자고 제안했던 박구용 전남대 교수(철학과)는 “문 대통령의 이날 기념사와 행동을 보면서 ‘저분이 진심으로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고 싶어 하시는구나’를 느꼈다. 실현되는 것은 두 번째 문제고 문 대통령이 5·18 정신과 헌법 전문을 이야기한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상징적) 헌법 전문’이 됐다”고 말했다.

이날 기념식은 ‘탈권위’적이고 개방적으로 치러져 신선함을 줬다. 예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땐 대통령이 참석할 경우 사전에 비표를 신청하지 않으면 기념식장에 입장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날은 신분증만 제시하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었다. 청와대는 검색대를 통과한 국민 모두가 기념식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좌석을 줄이는 대신 입장 공간을 늘렸다. 기념식장 주변엔 광주뿐 아니라 전남 인근 시·군 마을에서 온 주민들도 눈에 띄었다.

“울 동네 동창도 5·18 때 죽었어. 신분증만 보이면 참석할 수 있다고 해서 같이 왔어.” 전남 담양군 대덕면 성곡리에 사는 박병은(76)씨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게 해서 좋다”고 말했다. 기념식이 끝난 뒤 5·18 민주영령들에게 헌화·분향하는 것도 ‘선착순’으로 진행됐다. 대선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지지를 선언했던 가수 전인권이 이날 기념공연에서 <상록수>를 열창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문 대통령의 이번 ‘광주 선언’이 문재인 정부가 본격 추진할 ‘개혁정책’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참여정부와 약간 다른 느낌이 들었어요. 문재인 정부가 시민들의 촛불이 탄생시킨 정권이고, 시민들의 힘이 뒷받침됐기 때문일까요. 예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면 반격당하지 않을까 내심 불안했는데, 이젠 설령 그런 소리를 해도 별로 걱정되지 않아요. 비교적 마음 편하게 진보적 정책을 추진할 것 같아요.” 문학평론가 김형중 조선대 교수(국문과)의 생각이다. 하지만 개혁정책 과제를 문 대통령 선언만으로 풀 수는 없다. 김 교수는 “시민들이 꾸준히 관심 갖고 개혁정책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잘하는 것은 잘한다고 격려해야 정권에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개혁 세력의 연대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은 이날 “광주 시민들도 광주 정신으로 희생하며 평생을 살아온 ‘전국의 5·18들’을 함께 기억해달라. 광주가 먼저 정의로운 국민 통합에 앞장서달라”고 호소했다. 이 발언은 표면적으론 “상식의 가치를 함께 공유하는 개혁 세력의 연대”를 촉구하는 메시지이지만, 내면엔 “호남과 비호남의 개혁 세력 연대”를 촉구하는 ‘호소’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4·13 총선에서 호남에서 국민의당에 참패했던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호남 득표율은 60~65%까지 높아졌다. 그래도 여전히 광주 사회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하나 보자”라는 견제 심리가 없지 않다.

호남과 비호남의 연대 호소

하지만 문재인 정부 초반 ‘시원시원한 굿 뉴스’가 잇따라 전해지면서, 문 대통령을 보는 호남 유권자들의 눈이 달라졌다. 이날 망월동 옛 묘역에서 만난 한 50대 여성은 “문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보다 더 야문 것 같다”고 말했다. 노영숙(63) ‘오월 어머니의 집’ 관장은 “(5·18 진상 규명 등에 대한) 대통령님 말씀이 얼마나 귀에 쏙쏙 들어오던지 어머니들이 모두 좋아하신다. 어느 역대 대통령도 광주에 오셔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소신을 이야기하신 적이 없다. 오늘은 오월의 어머니들이 너무 좋아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이날 기념식 뒤 풍경은 문재인 정부를 둘러싸고 달라진 ‘정치적 지형’을 반영하는 것 같았다. 시민들은 기념식장 밖으로 나가지 않고 문 대통령을 보려고 담장 밖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묘지를 참배한 뒤 문 대통령이 유영봉안소 쪽으로 나오자 “와!”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문 대통령이 손을 가볍게 흔든 뒤 인사하자 박수가 터져나왔다. ‘대통령과 셀카’를 기대했던 일부 시민들은 경호원의 손목을 잡고 나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날 국립5·18민주묘지에는 한숨 대신 환호가 넘쳤다. 참으로 오랜만에 경험하는 진짜 5·18이었다.

광주=정대하 <한겨레>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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