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장관급만 4명 배출한 장하성 집안..가문 내력이 곧 한국 역사

경향비즈 2017. 5. 2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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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1일 청와대 정책실장에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발탁되면서 ‘전남 명문가’로 알려진 장 교수의 집안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장관급만 4명을 배출한 집안이 되면서다.

‘하’자를 돌림자로 쓰는 장 정책실장의 형제 상당수는 유명한 학자이다. 학자이면서도 활발한 사회참여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사회활동이 활발한 것은 할아버지대에서 독립운동, 아버지 대에서 6·25 참전 등 집안 분위기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장 실장의 친누나 장하진씨는 2005년부터 3년간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냈다. 장하진 전 장관은 학생 운동권 출신 시민운동가로서 충남대 교수를 지냈다. 동생 장하원씨는 옥스퍼드대 박사 출신으로 하나금융연구소장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 등을 지낸 뒤 사모펀드를 운용했다. 막내 장하경씨는 광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장 실장의 사촌 형제도 이력이 화려하다.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활발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벌이며 한국인 최초로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가 된 장하준 교수가 사촌 동생이다. 장 실장의 또 다른 사촌 동생이자 장하준 교수의 친동생인 장하석씨도 케임브리지대학 과학철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과학철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러커토시상’의 수상자다.

장 실장의 삼촌이자 장하준 교수의 부친인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장관은 김대중 정부 시절 14~16대 3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장관까지 올랐다. 21살에 행정고시에 합격해 30대 때 서울지방국세청장과 국세청 차장에 이어 주택은행장까지 지냈다.

장 실장 집안은 구한말 전남 신안 장산도 일대 염전을 일구며 논밭을 가진 만석꾼 부호였다. 1915년쯤 광주로 나와 자리를 잡았다. 3대에 걸쳐 사회 지도층을 다수 배출했다. 1세대는 독립운동가, 2세대는 정치인·관료 등, 3세대 역시 학자와 관료 등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장 실장의 증조할아버지 장진섭씨는 일찍부터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아 자식들을 외지로 유학 보냈다. 장남 장병준씨는 일본 니혼대 법과를 나왔고, 장재식 전 장관의 아버지인 둘째 장병상씨는 서울 보성전문을 거쳐 일본 메이지대를 졸업했다. 셋째 장홍재씨는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고문을 당해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막내 장홍염씨는 서울 휘문학교와 중국 베이징국민대학을 다녔다. 이들이 장씨 집안의 1세대다.

장홍재씨가 광주학생운동에 앞장섰던 것처럼 다른 형제들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장병준씨는 상하이에서 김구 선생 측근으로 임시정부의 외무부장이었고, 장홍염씨는 만주 신흥무관학교를 나와 독립군에 몸담았다. 장홍염씨는 광복 후 반민특위 검사와 제헌 국회의원을 지냈다. 장병상씨는 국내에서 철도공무원을 했지만 형과 동생의 뒷바라지를 하다 수차례 일본 경찰에 끌려다니기도 했다.

할아버지 대의 독립운동 이력에 대해 장 실장은 2012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굳이 제 집안이 어떻다고 얘기하는 게 우습다. 대한민국에서 독립운동 했다가 패가망신한 분이 많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말 훌륭한 분이 많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세상에서 제일 못난 사람이 자식 자랑, 돈 자랑, 집안 자랑하는 사람이다. (집안은) 내 자부심이지, 자랑거리는 아니다”라면서 집안 얘기 꺼내는 것을 꺼렸다.

2세대 주축은 장병상씨의 네 아들이다. 맏이인 장정식씨(사망)는 전남대 의대 교수였고, 장하진 전 장관·장하성 실장의 아버지 장충식씨(83)는 한국은행을 다니다 도의원을 지냈다.

셋째인 장영식씨(80)는 장면 정부에서 경제비서관을 하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 때 두 번이나 미국으로 망명했다. 한국전력 사장과 뉴욕대 교수를 역임했다. 막내인 장재식 전 장관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 국세청 차장과 주택은행장을 지냈다.

장씨 가문의 2세대 인물도 한결같이 공부를 잘했다. 장정식씨는 경성의전, 장충식씨와 장영식, 장재식씨는 각각 서울대 화학공학과, 금속공학과, 법학과를 나왔으니 4형제가 모두 서울대 동문이다.

1세대가 독립운동을 했다면 2세대는 6·25 참전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아버지 장병상씨가 아들 4형제를 모두 전쟁터로 보낸 것이다. 장정식씨는 군의관으로 참전했고, 장충식씨는 미군 2사단 소속으로 압록강까지 진격했다. 당시 압록강 전투에서 기관총탄에 맞았던 장충식씨는 동료들이 사망한 것으로 알고 방치했으나, 뒤늦게 미군에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져 목숨을 건졌다. 고등학생이던 장영식씨와 중학생이었던 장재식씨는 학도병으로 지원해 낙동강 전선에 배치됐다.

장하진 전 장관은 과거 인터뷰에서 “아버지 세대 영향이 컸다. 아버지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는 주말마다 바둑을 두면서 정치·사회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할아버지 세대도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신 걸 보면 그런 게 집안 분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경향비즈 eco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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