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단이 외친 '복사기' 타령

김연희 기자 입력 2017. 5. 20.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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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뇌물죄·직권남용·강요 등)이 시작되었다. 공판준비기일에 박 전 대통령 변호인 측은 기록 복사와 검토 시간이 부족하다며 준비기일을 한 번 더 부탁했다.

■ 5월2일 박근혜 뇌물 혐의 등 1회 공판준비기일

역사적인 재판이 시작되었다.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은 오랜만에 방청석 대부분이 찼다. 20년 전 전두환·노태우씨가 재판을 받았던 법정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곧 이 법정에 선다. 최순실씨와 신동빈 롯데 회장도 롯데의 K스포츠재단 70억원 뇌물 공여 혐의로 같이 재판을 받는다. 본격적인 재판에 앞서 열리는 공판준비기일에는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씨, 신동빈 회장은 5월23일 열리는 1회 공판 때 출석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최순실 사건을 심리해온 형사 22부(김세윤 부장판사)가 이 재판도 맡았다.

판사:방청객 여러분께 당부 말씀드린다. 이 사건은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건이다. 재판부에는 실체적 진실을 반영하기 위해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재판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지켜봐달라.

검사:박근혜 피고인의 롯데그룹 관련 뇌물에 대해 말씀드리겠다. 박근혜 피고인(이하 박근혜)은 최순실 피고인(이하 최순실)과 공모해 롯데 신동빈 회장으로부터 면세점 특허 재취득 관련 청탁을 받고 롯데에 하남시에 체육시설을 건립하는 비용 70억원 공여를 요구했다.

삼성 관련 뇌물 범행이다. 박근혜는 최순실과 공모해 삼성그룹 이재용으로부터 경영권 승계 청탁을 받고 정유라 승마 지원 명목으로 213억원을 지급받기로 했다. 그중 77억9735만원을 수수했다. 또 이재용한테 같은 취지의 청탁을 받고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이하 동계영재센터)에 지원금 16억2800만원, 미르·K스포츠재단에 204억원을 공여하게 했다.

ⓒ그림 우연식 전두환·노태우씨가 재판을 받았던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판을 받는다.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등에 대해 말씀드리겠다. 박근혜는 김기춘·조윤선 등과 공모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영화진흥위원회·출판문화산업진흥원을 통해 직권을 남용하여 심사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하도록 해 문화예술계 특정 개인 및 단체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게 했다(검찰은 그 외에 직권남용, 강요, 강요미수, 공무상 비밀누설 등 박근혜 피고인의 18개 범죄 혐의를 설명했다).

박근혜 변호인:검찰 기록이 10여 만 페이지에 달해 5월10일을 전후로 복사가 끝날 것 같다. 검찰 공소사실에 대해 몇 가지 석명(사실을 설명하여 내용을 밝힘)을 요구드리겠다.

동계영재센터에 대한 직권남용, 강요와 관련해 석명을 요구한다. 박근혜가 2015년 7월25일 삼청동 안가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동계영재센터에 지원을 요청하면서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으로 하여금 지원하게 하라고 하며, 이재용 부회장은 이 같은 요구에 불응할 경우 기업 활동 전반에 직간접적 불이익이 두려워서 돈을 주었다고 검찰은 공소장에 기재했다. 그런데 공소장 다른 쪽에는 같은 내용을 기재하면서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의 요구를 들어줄 경우 승계 작업에서 박근혜와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지원 요구를 들어줬다고 했다. 이재용의 지원 동기가 앞서 검찰이 적시한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인지 아니면 승계 작업에서 도움을 받기 위함인지 아니면 복합적인 것인지, 이렇게 상호 모순되는 의사를 기재한 데 대해 의견을 요청한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공소사실이 전체 18개이다. 저희가 아직 기록을 보지 못했다. 이런 공소사실을 전부 부인한다. 증거를 다 등사하면 추가 의견서를 제출하겠다.

판사:다음으로 최순실 피고인 변호인께서 공소사실 인정 여부를 답변해달라.

최순실 변호인:최순실은 검찰 특수본 1기, 특검, 특수본 2기에 의해서 네 차례 기소되었고 현재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다. 거의 매일 재판을 받고 때때로 검찰 소환도 있어서 정신적·육체적으로 부담이 크다. 오랜 세월 동안 존경하고 따르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재판정에 서게 해,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을 토로하고 있다. 그런 만큼 박 전 대통령과 같은 자리에서 재판을 받는 것은 피고인에게 살을 에는 일이다. 최순실은 재판과 수사에서 사실대로 진술하고 죄가 있다면 감수할 생각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죄를 떠넘기거나 감추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롯데 70억원 뇌물 수수와 관련해서 특수본 1기는 최순실·박근혜·안종범이 공모해 롯데를 압박해 70억 추가 출연을 받았다고 했다. 롯데는 피해자였다. 그런데 5개월 후 특수본 2기는 범인으로 최순실과 박근혜만 넣고 안종범을 뺐다.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검찰은 석명해달라. 또 강요죄 피해자였던 롯데는 뇌물 공여자로 변신했다. 피해자이며 범죄자이기도 한 이런 구성은 형사법상 될 수 없다. 직권남용, 강요와 뇌물죄는 어느 한쪽이 성립하면 다른 한쪽은 성립하지 않아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다. 재판부에서 검찰에 공소장 변경을 요구하셔야 피고인은 한쪽으로 방어권을 충실히 할 수 있다.

판사:재판부에서 여러 가지로 의논을 해서 재판을 어떻게 진행할지 궁리를 했다. 박근혜 피고인 변호인이 말했듯 검찰 제출 증거 기록이 방대하다. 통상적으로는 공판준비기일을 몇 차례 더 진행하면서 공소사실 증거 인부(증거에 대한 피고인 측의 동의 여부)와 심리 계획을 모두 마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 사건은 증거의 분량에 비춰 계속 공판준비기일만 하는 건 구속 기간(6개월)을 고려할 때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추가로 공판준비기일을 잡지 않고 바로 1회 공판을 진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박근혜 변호인:준비기일을 오늘 종료하겠다고 하니 저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어떤 증거가 증거능력이 있는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한번 정도 더 공판준비기일을 잡아주었으면 한다.

판사:(조금 난감한 듯) 그렇게 되면 1회 공판을 6월 초에 잡아야 한다. 구속 만기가 10월인데 그 안에 재판을 끝내기가 어렵다. 공소사실 인부(인정 여부)는 증거 기록을 충분히 보고 차차 이야기할 기회를 드리겠다.

박근혜 변호인:그렇게 되면 저희들은 적절한 방어권을 도저히 행사할 수 없다. 지금 5월10일에 복사를 마치면 10만여 쪽 되는 기록을 변호인단이 분리해서 보더라도 한계가 있다.

방청객:검사님, 제가, 피해자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경위가 와서 주의를 준다. 이후 경위 한 명이 옆에 서서 이 방청객을 감시한다.)

판사:소란을 피우면 퇴장당할 수도 있습니다. 변호인 그러면 5월16일에 공판준비기일을 하고 5월23일에 재판은 가능한가?

박근혜 변호인:재판장님 최소한의 시간을 더 주셔서 18일, 19일 정도로 해주시면….

최순실 변호인:그날 최순실은 또 다른 재판이 있다. 출석이 어렵다.

박근혜 변호인:그러면 최대한 저희가 맞춰보고 만약 그때까지 준비가 안 되면 공판준비기일에 말씀드리겠다.

■ 5월2일 최순실 뇌물 혐의 등 6차 공판

같은 날 오후 박영수 특검이 기소한 최순실 뇌물 혐의 등에 대한 6차 공판이 열렸다. 한국마사회 승마지원단 업무를 맡았던 송○○ 단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한국마사회의 정유라씨 지원 의혹에 대한 증언을 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수치소에 수감된 뒤 서울남부구치소로 이감되었던 최순실씨는 다시 서울구치소로 보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판사:최순실 피고인, 아침에 재판부에 편지 썼죠. 박근혜 전 대통령과 분리해서 심리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삼성 관련 뇌물은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에도 들어가 있어서 불가피하게 병합(재판을 합치는 것)해 재판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같은 증인을 두 번 불러야 한다. 또 현재 남부구치소에 있어서 법원에 오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니 서울구치소로 옮겨달라고 썼던데, 그 부분은 재판부가 아니라 법무부 장관이 정하는 것이다. 재판부에서 검찰에 그런 뜻을 전하고 검토를 요청했지만 재판부에는 결정 권한이 없다.

송○○ 증인에 대한 검찰 신문

특검:‘승마 활성화를 위한 2016년 주요 사업계획 보고서’를 제시하겠다. 이것은 증인이 한국마사회 승마지원단에서 작성해 현명관 당시 마사회 회장에게 보고한 문건이죠?

송○○:네. 2015년 12월 말에 혁신 과제로 선정돼 1월달 안으로 회장에게 전체적인 업무 방향을 설정해 보고하는 사업 계획이었다.

특검:과거에 승마지원단 차원에서 별도로 이런 보고서를 만든 적 있나?

송○○:없었던 것 같다. 적어도 2014년, 2015년에는 없었다.

특검:당시 보고 기한이 안 되었는데도 현명관 마사회장이 증인에게 전화해 빨리 보고하라고 독촉한 적 있죠?

송○○:네. 보통 1월 안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 건에 대해는 빨리 보고했으면 좋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특검:2015년 1월12일 안종범 전 수석의 수첩에는 VIP 지시 사항으로 ‘1. 소년체전 위해서 말 구입 2. 유소년 승마단 운영 지원 3. 올림픽 대비 선수 말’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는 증인이 마사회 회장에게 보고한 승마 활성화 계획 보고서의 내용과 겹친다. 소년체전 승마 종목 지원, 유소년 승마단 지원, 올림픽 출전을 위한 국가대표 승마선수단 지원이 보고서에 있는데 안종범 수첩의 기재 내용과 동일한 취지이다.

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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