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호의 사서삼매경] (14) '과유불급' 안철수 이길 수도 있었다

southcross 입력 2017. 5. 20.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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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공이 스승 공자에게 물었다. 자장과 자하 중에서 누가 낫습니까. 모두 공자의 제자였다. 공자가 말했다.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하다. 자공이 반문했다. 그러면 자장이 낫습니까. 공자가 답했다. 지나침과 미치지 못함은 같느니라. <논어 중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지난 4월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국민대통합과 협치에 관한 구상 발표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패배를 복기하는 건 쉬운 일이다. 이미 일어났다. 예상됐던 경우의 수 중에서 가장 개연성이 높은 쪽으로 맞춰보게 된다. 늦었지만 패자 안철수 전 대표에 대해 이 칼럼으로 써보려 한다. 사후확신편향이 아닌 묵혀뒀던 비밀이야기들을 해보려 한다. 의사, 성공한 기업가, 국민 멘토 등 안 전 대표의 삶은 항상 성공적이었다. 이번 대선이 제대로 실패해본 첫경험이지 않을까 싶다. 가만히 앉아 숨만 쉬어도 위인전이 나올 분이다. 

그의 V3백신은 이찬진 대표의 아래아한글과 함께 토종 소프트웨어의 자존심이다. 이 대표는 시대의 배우를 아내로 맞아 정치와 무관하게 잘 살고 있다. 실속있는 사람이다. 청춘의 아픔을 어루만지던 안 전 대표는 지난 대선 즈음 끄집어내졌다. 안철수현상에 불이 지펴졌다. 이간계에 걸리는 듯 하다가 말았다. 거듭 양보했다. 아마 준비가 덜 됐겠다. 이번엔 제대로 배수진을 쳤다. 철저하게 졌다. 이길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유리하게 만들 순간이 적어도 두 번은 있었다.

지나침이 실패를 불렀다. 모든 정치인은 기반이 있다. 누군가들에게 친문으로 개명된 친노, 그 기저에 노사모가 있다. 노사모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뭉치고 자기 목소리를 냈었다. 2000년 6월 6일 대전대학교 앞 작은 PC방에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노사모가 탄생했다. 정몽준 이사장의 단일화 파기, 비보를 접한 새벽 급한 전보가 돌았다. 한 언론에서 신문을 마구 찍어 살포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찬 새벽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선 건 노무현을 지키고 싶어서였다. 그 사람들이 노무현을 만들었고 문재인을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자 여의도에 모인 노사모 회원들이 탄핵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안 전 대표의 첫 기반은 호남이었다. 전라남북도, 광주를 포함해 전국 에 살고 있는 1000만 호남 출신 사람들이 안 전 대표를 밀었다. 외연 확장을 위해 보수에 구애를 한 건 자충수였다. 호남이 돌아섰다. 본진을 지키지 못하니 무너졌다. 빈집털이다. 호남은 친노와 친박 중에 어디를 더 싫어할까. 호남의 여러 선택 중 가장 명확한 경험명제는 이하다. 그들은 항상 민주세력의 적장자에게 표를 몰아줬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와 부인 김미경씨(왼쪽), 딸 설희씨(오른쪽)가 19대 대선 투표일인 지난 5월 9일 오전 서울 노원구 상계1동 제7투표소인 극동늘푸른아파트 경로당에서 투표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부족함도 실패를 불렀다. 보수보다 충청을 노렸어야 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어떻게든 총리로 모셨다면 이겼을 가능성도 있겠다. 대선 전 써보려 했었다. 반 전 총장이 유세차를 타고 마이크를 잡지 않아도 된다. 대선 이후 총리 지명을 약속했고, 그도 응했다는 양측의 보도자료로도 충분하다. 충청이 흔들리면 전국 1000만표 정도가 요동친다. 과거 DJP연합과 비슷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대통합 안철수 대안론이 만들어질 수도 있었다. 심상정 캠프는 문재인이든 안철수든 누가 되든지 정권교체라고 봤다. 정의당 5% 보수정당 30% 나머지 65%를 두고 싸우는 그림이 그려졌을 수도 있었다. 캠프의 부족함도 원인이다. 문재인 당시 후보의 30% 지지율은 콘크리트였다. 친노와 촛불이 더해지며 절대 깨지지 않을 것처럼 단단해졌다. 아무리 의혹을 떠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미래를 말해놓고 선거 막판까지 네거티브만 했다. 문재인 네거티브만 할 줄 알았지 안철수 포지티브는 한 번도 제대로 못했다. TV토론에서 잃은 것들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오전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린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유족의 편지를 낭독한 김소형씨을 위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보수가 진 건 분열돼서다. 안 전 대표가 보수계열로 분류되면서 그들만의 삼분지계를 이뤘다. 셋이 정말 제대로 해볼 생각이었다면 서로 피나게 물고 뜯어 정리를 했어야 했다. 누구는 구실을 많이 줬고 누구는 세가 더욱 쪼그라들았다. 치명적인 것을 찾아 한 명을 낙오시키고 적당히 딜 했어야 했다. 게임은 끝났다. 하나는 공중분해될 예정이다. 둘 중에 반드시 하나는 자연도태될 것이다. 제대로 언급하지 않는 건 가치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안 전 대표가 호남을 기반으로 충청을 잡고 반문 정서를 가진 국민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다면 결과는 어떠했을까. 좀더 유리한 천하삼분지계를 만들 기회가 있기는 했었다. 지지율 동률 다음에 반기문 카드다. 미래에 좀 더 집중해야 했다. 대선이 끝났다. 과거만 쓰던 이 칼럼도 이제 미래를 써야겠다. 사람 사는 세상을 넘어 사람 살기 좋은 세상에 대한 궁리를 해봐야겠다. 

하정호 기자 southcros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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