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 아직 살아 있어요"..스텔라데이지호 가족의 '절규'

권혜정 기자 입력 2017. 5. 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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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끝나면 부모님 모시고 여행간다던 동생"
"노후·개조 선박이 침몰 원인..생존 가능성 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 대표 허경주씨. © News1 오대일 기자

(서울=뉴스1) 권혜정 기자 = "선원들은 살아 있다."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에 걸려 있는 현수막 아래 얇은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있는 이들이 있다. 하루의 대부분을 거리에서 보내는 10명 남짓한 이들은 지난 3월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이다. 머리가 하얗게 쇤 노인부터, 3살 남짓한 아이까지 하루 아침에 '실종자 가족'이 된 이들은 2달째 거리로 나오고 있다.

화물선 스텔라데이지호는 마샬제도공화국 선적으로 지난 3월31일 남대서양 해역에서 침몰했다. 배에는 한국인 8명과 필리핀인 16명이 타고 있었지만 필리핀인 2명만이 구조됐다. 실종자 가족들은 사실상 사고해역에 대한 구조작업이 종료됐다며 수색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우리가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이 될 줄은몰랐어요"

스텔라데이지호 이등항해사 허재용씨(33)의 누나 허경주씨(38·여)는 한눈에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18일 청와대 인근 농성장에서 만난 그녀의 얼굴은 초여름의 뙤얕볕에 검게 그을려 있었다.

그녀는 매일같이 칠순에 가까운 부모와 언니, 그리고 3살배기 조카와 함께 농성장으로 나온다. 하던 사업은 사실상 접었고, 사고 소식을 듣고 영국에서 온 언니와 조카는 여전히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재용씨는 위로 누나만 3명 있는 집안의 귀한 막내아들이다. 그녀는 재용씨 제대 이후 둘만 떠났던 중국 여행을 기억하며 "단둘이 여행을 갔는데, 동생이 어느새 어른이 돼 있더라"며 "속으로 '자식 잘 컸네'라고 생각했었다"고 회상했다.

법대를 졸업해 그 길을 걸을 것이라 생각했던 재용씨는 어느날 갑자기 배를 타겠다고 했다. 결심을 굳힌 재용씨는 해양수산연수원에서 1년 반 동안 교육을 받고 폴라리스쉬핑에 입사해 마도로스가 되었고 지난해 11월 먼 항해를 떠났다. 배 위에서 카카오톡 등 SNS는 가능했기에 주로 동생과 경주씨는 카카오톡을 통해 대화를 나눴다. 재용씨는 긴 항해에 지친 듯 사고 전 "예정대로 한국에 5월 초에 들어가면 얼마동안 휴식을 취하겠다"고 카톡을 보내왔다.

재용씨는 가족을 걱정해 민감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4년 전 세월호참사 당시 배를 타는 동생이 걱정돼 몇마디를 건넸을 때 동생은 이렇게 안심시켰다. "걱정마라. 우리가 타는 배는 세월호 보다 훨씬 더 큰배이기 때문에 가라앉는데만 며칠이 걸린다. 탈출을 못할 수가 없다."

나이가 먹으면서 부모님을 끔찍이도 생각하던 재용씨는 "이번에 (항해가 끝나고 돌아오면) 부모님을 모시고 해외 여행 다녀오겠다"고 약속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항해일을 배우고, 제대로 돈을 벌지 못했던 재용씨는 "조금만 더 돈을 모으면 부모님과 여행을 갈 수 있다"고 누나인 경주씨에게 말하곤했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후에는 "재용이가 내 목숨을 살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했다. 실습을 위해 탔던 배에서도 침수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했다던 한 동료 선원은 "배에 생긴 문제를 재용이가 가장 먼저 발견해 대응했기 때문에 대형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다. 재용이는 내 은인"이라고 말했다.

그런 동생의 실종 소식이 전해진 이후 경주씨 가족의 삶은 일순간에 송두리째 변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길거리에서 보내는 가족들은 화장실은 대충 인근의 건물을 사용하고, 식사는 대부분 거르고 있다.

허리디스크가 심해 바닥에 앉는 것이 힘든 재용씨의 어머니는 근근히 버티다 집에 가면 밤새 앓는다. 아흔이 넘은 부모에게 자식의 실종 소식을 전하지 못한 가족들도 있다. 인터뷰 내내 씩씩하게 말을 이어가던 재경씨는 "침몰 이후 병원에 실려가지 않은 실종자 가족들이 없다"며 "밥도 먹을 수 없고, 조금이라도 먹으면 토하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실종 선원의 어머니들은 가끔씩 과연 수색작업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직접 사고 현장에 가서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눈다고 들려준다. 그러나 "가면 뭐하나, 시퍼런 바닷물만 볼텐데…"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며 눈물을 훔쳤다.

경주씨는 "앞으로 여름이 되면 더 힘들어질텐데 괜찮은가"라는 질문에 "전혀 상관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경주씨는 그녀를 비롯한 실종자 가족이 바라는 것은 단 한가지, 수색재개라며 "길바닥에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지거나, 더 오래 버텨야 하는 것은 전혀 상관 없다"고 밝혔다.

◇"생존 가능성 상당…개조·노후 선적 침몰 원인"

(스텔라데이지호 실종 선원 제공) © News1

경주씨는 실종 선원들의 생존 가능성이 높다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실종 선원들은 비상시에 대비한 충분한 훈련을 받은 이들이고, 구명벌을 통해 탈출했을 경우 구명벌에 식량과 낚시도구와 응급의약품, 식수 등 생존장비 등이 구비돼 있기 때문에 여전히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또 사고 이후 해역에 비가 상당량 왔기 때문에 식수가 바닥났을지라도 충분한 공급이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녀는 "실종선원들은 항상 비상시에 대비해 훈련을 받은 전문가들이다"며 "일반인이 아니라 훈련 받은 이들이기 때문에 구명벌에만 탔다면, 아직까지 충분히 생존해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경주씨는 만약 이들이 구명벌에 탑승을 못했다면, 선원 중 누군가는 구조됐어야 했다며 "사고 직후 구조된 필리핀인 2명도 '선원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고 이야기하는데, 만약 이들이 구명벌에 탑승을 못했다면 (구명조끼를 착용한 상태로) 수면 위로 떠올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구명벌의 경우 천막이 있어 돛단배와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바람을 받으면 더 멀리 갈 수 있다"며 "따라서 우리는 현재 수색구역 설정도 잘못됐다고 주장한다"고 덧붙였다. . 경주씨를 비롯한 실종선원들은 스텔라데이지 침몰 원인이 노후·개조 선박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실종된 선원이 사고 전 친구들과 나눴던 SNS 대화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경주씨는 실종된 3기사 선원 문원준씨의 아버지는 평소 아들로부터 '배(상태가) 안 좋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다고 했다. 그녀는 "카카오톡을 통해 나눈 대화에는 '(수리를 위해) 48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거의 한잠도 못자고 펌프를 뜯어내는 작업을 했다'라는 등의 메시지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우리나라는 폐선될만한 배를 수입해온다"며 "이 과정에서 선박의 사고 이력은 최소화되고 정비이력 역시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비이력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노후 선박을 타는 선원들은 (노후선박 수리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상당히 받는다고 한다"고 전했다.

경주씨는 "세월호참사 이후 바뀌었을 줄 알았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사고 이후 지금까지 정부가 구체적인 행동을 취한 것은 전혀 없다"고 토로했다. 그녀는 "정부만 믿고 기다렸던 것이 제일 한심하다"며 "시간이 이렇게 흐르기 전에 우리가 뭔가를 했다면, 결론이 지금쯤 달라졌을 수 있는데 우리가 너무 바보같이 정부와 선사만 믿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과의 공식면담을 요청한 그녀는 "문 대통령을 만나면 수색 재개를 하루라도 빨리 해달라고 할 것"이라며 "이와 다시는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해달라는 말만 하고 싶다"고 간절히 바랐다.

실종자 가족들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폴라리스쉬핑 관계자는 "수색을 종료한 적이 없다"며 "다만 수색체계를 구조선 투입 방식 등에서 사고해역을 통과하는 선박들의 수색으로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사고가 발생한 해역이 우리나라 해역이 아니라 우르과이 측의 해역이기 때문에 우루과이 측의 결정에 따라 수색 방법이 바뀐 것"이라며 "현장수색과 통과수색을 통해 (수색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후·개조 선박으로 인한 침몰 가능성에 대해서는 "장기적인 검사 등을 통해 선박이 운행 가능하다는 판단이 나왔고,이에 따라 출항을 시킨 것"이라며 "다방면을 통해 침몰 원인에 대해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jung9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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