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혼밥·국밥.. 역대 대통령들의 '식사 정치'

박은수 기자 입력 2017. 5. 20. 06:27 수정 2017. 5. 22.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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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노무현 전 대통령~문재인 대통령까지.. 대통령의 식사도 '정치'다

[머니투데이 박은수 기자, 백승관 기자] [故노무현 전 대통령~문재인 대통령까지… 대통령의 식사도 '정치'다]

왼쪽부터 문재인 대통령, 박근혜·이명박·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머니투데이DB, 뉴시스, 노무현재단

문재인 대통령의 '식사 정치'가 주목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청와대 수석들과 커피를 마시며 산책하는 모습으로 화제가 됐다. 청와대 직원들과는 구내식당에서 3000원짜리 점심을 먹었고 주말엔 기자들과 등산 후 삼계탕을 즐겼다.

누구와 밥을 먹는다는 것은 허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처음 만난 사람과 밥을 먹음으로써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도 하고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시키기도 한다. 직장인들도 때론 목적이 있는 점심을 한다. 윗사람들은 부하직원들을 원활히 통솔하기 위해 밥시간을 활용하는데, 한솥밥을 먹다보면 서로 이해의 폭도 넓어지고 업무 중간에 쌓였던 오해도 풀리기 때문이다. 밥은 그래서 '소통'이다.

역대 대통령들 또한 식사 정치를 통해 국정운영을 했다. 같은 당의 수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함으로써 세를 과시하기도 하고 야당 원내대표와는 협치를 요청한다. 대통령의 식사 뒤에는 항상 정치적인 해석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밥상머리 정치라고 해서 모두가 환영받은 것은 아니다. 서민 대통령으로 칭송받기도 하지만 때론 초호화 메뉴로 국민들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부터 고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대통령들은 어떤 '식사 정치'를 했을까? 그들의 밥상을 들여다봤다.

◇ 문재인 대통령, 커피·삼계탕 '소통의 아이콘'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연일 격식과 권위 없는 소탈한 모습으로 환영받고 있다. 취임 당일 첫 식사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했는데, 이는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 첫날 100여명의 각국 정부 대표단과 함께 첫 식사한 것과 대조적이다. 별도 취임식이 열리지 않았던 이유도 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사실상 국정을 책임져온 총리에 대한 예우 차원이라는 분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커피를 들고 참모진과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 국 민정수석, 권혁기 춘추관장, 문 대통령, 이정도 총무비서관, 조현옥 인사수석, 송인배 전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일정총괄팀장, 임종석 비서실장. /사진=뉴스1

둘째 날 문 대통령의 행보는 더욱 파격적이었다. 신임 수석비서관들과 상견례를 겸한 오찬 후 여느 직장인들처럼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는 사진이 공개돼 신선함을 안겨줬다.

이날 오찬에서는 문 대통령 맞은편에 이정도 총무비서관이 앉았는데 이를 두고 관가에선 수석이 아닌 비서관이 대통령 맞은편에 앉아 겸상하는 것은 이례적인 장면이라고 입을 모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일 청와대 여민2관 구내식당에서 기술직 직원들과 오찬을 하고 있다. 메뉴는 볶음밥과 메밀국수였다. (청와대 제공) /사진=뉴스1 (사진 아래)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오전 대선 당시 '마크맨'을 담당한 기자들과의 산행을 마친 후 청와대 충정관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사진=뉴스1

청와대 직원식당에서 기술직군 공무원 9명과 점심을 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여민관(위민관) 직원식당에서 볶음밥과 메밀국수로 구성된 3000원짜리 오찬을 함께 했다. 다른 직원들과 똑같이 식판에 담긴 식사였다. 한 공무원은 대통령과의 오찬에 참석하라는 말에 30분 동안 "거짓말 아니냐"고 의심했다고 하니, 그동안 대통령과 청와대 직원 간에도 소통의 기회가 거의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취임 첫 주말인 지난 13일엔 대선 기간 자신을 취재했던 일명 '마크맨'들과 산행 후 청와대에서 삼계탕을 함께 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기자들의 노고에 감사하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5당 원내대표와 첫 오찬 회동을 하고 있다. 임종석(오른쪽부터) 대통령 비서실장, 주호영 바른정당, 정우택 자유한국, 문재인 대통령,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김동철 국민의당,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 /사진=뉴시스

문 대통령과 5당 원내대표와의 청와대 오찬 회동이 있던 지난 19일에는 비빔밥이 메인 메뉴로 올랐다. 소통과 협치를 바라는 의미에서다. 김정숙 여사는 손수 준비한 인삼정과 디저트를 협치의 길을 의미하는 조각보에 싸 손편지와 함께 각 당 원내대표에게 대접했다. 메뉴 하나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문 대통령의 센스가 엿보인다.

◇ 박근혜 전 대통령, '혼밥'·송로버섯
박근혜 전 대통령은 '혼밥족'이다. 박 전 대통령은 40년지기 최순실이 청와대에 방문해도 식사는 혼자 따로 했고, '세월호 참사'라는 긴박한 순간에도 식사만은 홀로 해야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였던 2012년 10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타운홀미팅 및 정책간담회'에 참석,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2008년부터 2016년 7월까지 청와대 서양요리담당 조리장으로 근무한 A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식사 습관에 관해 "혼자 먹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는 분으로 지방 출장이 있어도 식사는 대체로 혼자 하길 원했다"고 말했다. (2016년 12월 여성동아)

박 전 대통령 탄핵 직전까지 청와대에 머물렀던 김막업 요리연구가(75)는 "최순실도 유리문 안(내실)으로 들어간 적이 없어요. 대통령과 같이 식사했다는 말도 다 엉터리입니다. 대통령은 늘 혼자 식사를 하세요"라고 말했다. (2017년 5월 조선일보)

세월호 참사 당일에도 박 전 대통령은 혼자 TV를 보며 식사를 했다.☞[단독]朴대통령, '세월호 참사' 점심 때 TV로 봤다

박 전 대통령의 '혼밥사랑'은 그의 폐쇄적인 성향을 드러내며 불통의 상징처럼 따라다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8월11일 청와대 인왕실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당 대표등 신임 지도부와 오찬을 함께했다. /사진=뉴시스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 호화 만찬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8월11일 이정현 신임 새누리당 대표 등과 가진 오찬에서 송로버섯, 바닷가재, 훈제연어, 캐비아 샐러드, 샥스핀 찜, 한우갈비 등 최고의 메뉴를 내놓았다. 반면 8·15 경축사에선 "어려운 시기에 콩 한쪽도 서로 나눠 먹으라"고 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한편 이날 메뉴는 2014년 김무성 전 대표의 청와대 오찬(해산물 냉채, 버섯 수프, 해물찜, 생선튀김, 쇠고기찜 등)과 비교되며 '친박 이정현'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각별한 마음을 드러낸 일화로 꼽히기도 한다.

◇ 이명박 전 대통령, 국밥·미국산 쇠고기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선 TV 광고의 한 장면.

이명박 전 대통령 하면 대선 때 '국밥 TV 광고'를 빼놓을 수 없다. "밥 처먹었으니께 경제는 꼭 살려라잉 알겄냐." 욕쟁이 할머니에게 잘하라는 구박을 받으며 먹성 좋게 국밥을 떠먹는 모습은 많은 이들의 뇌리에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다. '서민 이미지' 광고 때문일까. 이 후보는 사업가 이미지를 탈피하는 데 성공,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던 2008년 8월6일에는 한우 갈비구이와 미국산 쇠고기가 만찬에 올랐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로 온 국민적 반발에 직면한 상황이었다. 당시 야당과 진보시민단체 등은 'MB 아웃'을 구호로 정권퇴진 운동을 펼쳤고 시위 현장엔 아이들을 앞세운 유모차 부대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미국산 쇠고기를 메뉴로 선택한 것은 광우병 파동으로부터 국민들을 안심시키려는 의도가 컸던 것으로 풀이됐다. 이 전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를 시식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퇴임 후인 2014년 말에도 친이명박계 측근 인사들과 서울시내 한 식당에서 미국산 쇠고기로 송년 만찬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4년 12월 서울 신사동 한 식당에서 이재오 의원 등 측근들과 송년만찬을 하고 있다. 이날 메뉴는 미국산 쇠고기였다. /사진=뉴시스

◇'밥상토론'의 대가…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은 평소 아침 점심 저녁 때 주요 현안과 관련된 장관, 교수들을 관저로 불러 함께 식사를 하며 '밥상토론'을 벌였다." (유인태 전 의원- 국민일보 인터뷰)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1월10일 입법·사법·행정 3부요인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 자리에서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 제안 취지 설명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사진=국정홍보처 제공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밥상 토론'은 탄핵·개헌·남북정상회담 등 위기 때마다 힘을 발휘했다.

2004년 국회 탄핵으로 직무정지 상태일 때도 두 달간 9번의 공식 오찬·만찬을 가졌다.

△3월13일 문재인 전 민정수석과 오찬 △3월21일 탄핵 변론대리인단 11명 만찬 △4월11일 국무총리, 감사원장, 국정원장 등과 부부동반 만찬 △4월15일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오찬 △4월16일 김혁규 전 경남지사 오찬 △4월17일 김원기, 문희상 정치특보, 유인태 전 정무수석 오찬 △4월19일 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 오찬 △5월2일 김대환 노동장관,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 등과 노사문제 오찬 △5월5일 열린우리당 지도부 만찬 등 내각 인사들과 여당의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식사를 하며 현안을 듣고 소통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직무정지 상태에서 두문불출하며 △1월1일 비서진들과 신년 떡국 조찬 △2월2일 참모진과 생일 오찬 등 측근들과 기념일을 챙겼던 것과 비교된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개헌 정국에서도 △1월10일 3부요인 및 중앙선관위원장 오찬 △1월11일 열린우리당 지부도부 오찬 △1월17일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단 초청 오찬 등 청와대에서 식사를 하며 개헌취지를 설명했다.

토론을 통해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 전 대통령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 내외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7년 10월4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환송오찬에서 건배하고 있다. /평양=청와대 사진기자단

2007년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도 노 전 대통령의 '식사 정치'가 빛났다.

노 전 대통령은 방북 2일째 옥류관에서 가진 오찬에서 "불신의 골이 깊다"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겨냥해 불만을 표시했다. 이후 김 위원장이 남측대표단을 대하는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게 수행원들의 전언이다.

노 전 대통령은 또 김 위원장이 소극적인 태도로 회담에 임하자 "이렇게 하면 점심먹고 짐 싸고 가야 될지도 모르겠다"며 김 위원장을 압박하는 등 기싸움을 벌였다.

'밥상머리 기싸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은 '팔도 대장금 요리'라는 주제로 남쪽 각 지방의 토속 식재료를 이용한 향토 음식을 북측에 대접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메뉴는 △제주흑돼지 맥적과 누름적 △고창 풍천장어구이 △횡성·평창 너비아니 구이와 자연송이 △전주비빔밥과 토란국 △호박과편, 삼색매작과와 계절과일 △안동 가을 감국차 등이었다.

박은수 기자 utopia21@mt.co.kr, 백승관 기자 land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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