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으로 본 '의료농단' 전말..청와대에 무슨 일이

김만배 기자 2017. 5. 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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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살롱<168>]김영재 원장 등 '의료농단' 피고인들 1심 판결문으로 사건 재구성

[머니투데이 김만배 기자, 이태성 기자, 양성희 기자, 한정수 기자, 김종훈 기자] [[서초동살롱<168>]김영재 원장 등 '의료농단' 피고인들 1심 판결문으로 사건 재구성]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정기양 전 대통령 자문의, 이임순 순천향대 교수, 박채윤씨, 김영재 원장./ 사진=뉴스1


국정농단 사건에서 뻗어나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의료농단' 사건이 지난 18일 1심 선고로 일단락됐습니다. 그간 재판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어떤 의료행위가 있었는지, 청와대 의료진에게 최순실씨가 어떤 존재였는지 등이 밝혀졌습니다. 이런 내용은 의료농단 사건 관계자들의 판결문에 자세히 적혀있는데요. 이번엔 성형외과 의사 김영재 원장 부부와 김상만 전 대통령 자문의(전 녹십자아이메드 원장), 정기양 전 대통령 자문의(세브란스병원 피부과 교수), 이임순 순천향대 교수의 판결문 48쪽을 살펴보면서 박 전 대통령의 청와대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살펴보겠습니다.

정기양 교수, 임상시험도 안 끝난 '김영재 실'로 박근혜 전 대통령 시술 시도…박 전 대통령 '어이없다' 반응

우선 2012년 12월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정기양 교수가 동료의 소개로 김영재 원장을 만난 때입니다. 정기양 교수는 김영재 원장이 개발한 의료용 실과 그 실을 이용한 '뉴 영스 리프트' 시술에 대해 알게 돼 큰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본인은 물론 지인들까지 김영재 원장에게 시술을 받게 하고, 그 장면을 참관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나중엔 세브란스병원에서 임상시험을 하기로 하고 실을 받아다 자신의 환자에게 시술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이후 정기양 교수는 이병석 세브란스병원장이 초대 대통령 주치의를 맡게 되면서 청와대에 발을 들입니다. 피부과 전공이었던 정기양 교수는 대통령 자문의 역할을 맡아 박 전 대통령에게 보톡스와 필러 주입 시술 등을 합니다. 박 전 대통령은 두 사람에게 얼굴이 처지는 문제, 눈 밑 지방이 비대칭적으로 튀어나오는 문제도 해결해달라고 합니다.

두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의 피부미용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이병석 원장은 정기양 교수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피부미용을 어떻게 해드릴지 고민 좀 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께는 꼭 비밀이 유지돼야 합니다"라는 문자까지 보내는데요.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김영재 원장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2013년 7~8월로 예정된 박 전 대통령의 여름휴가 기간 동안 리프트 시술을 해주기로 계획합니다.

정기양 교수는 김영재 원장 부부에게 이 계획을 알리면서 실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아내 박채윤씨는 아직 임상시험도 끝나지 않았다며 완강히 거절합니다. 정기양 교수가 계속 요구하자 박채윤씨는 연구용으로 줬던 실까지 전부 회수합니다. 박 전 대통령의 휴가가 다가오자 이병석 원장은 "저쪽(청와대)에서 기다리고 있어 빨리 답을 줘야할 것 같습니다"라고 재촉합니다. 정기양 교수가 난처한 상황이 된 것이죠. 결국 두 사람은 실을 구하지 못해 시술을 할 수 없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일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13년 김영재 원장 부부가 '보안손님'으로 처음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박 전 대통령은 "왜 주치의가 실을 달라고 했는데 안 주셨어요? 왜 실을 빼앗아 갔어요?"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박채윤씨가 "시술이 간단하지 않다"고 하자 박 전 대통령은 정기양 교수가 뉴 영스 리프트 시술을 얼마나 해봤는지를 질문했다고 합니다. 박채윤씨가 "경험이 없다"고 하자 박 전 대통령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고 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입가에 '멍 주사' 맞고 혈액도 반출돼…재판부 "비선진료 조장"

여기서 김영재 원장 부부가 어떻게 2013년 청와대에 들어가 박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났는지 궁금하실 텐데요. 아쉽게도 그 부분은 판결문에 설명돼 있지 않습니다. 다만 박채윤씨의 법정 진술을 통해 경위가 일부 드러난 바 있습니다.

박채윤씨는 지난달 24일 법정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때도 청와대를 출입했고, 영부인이었던 김윤옥 여사를 청와대 밖에서 진료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청와대 행정관이 박 전 대통령을 만나러 오라고 하면서 "옛 정권 때문에 들었다"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청와대 측에서 김영재 원장 부부를 기억해뒀다가 박 전 대통령 진료를 위해 부른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때쯤부터 지난해 9월까지 김영재 원장 부부는 박 전 대통령에게 간단한 미용시술을 해줬습니다. 세월호 사건 후인 2014년 5월엔 박 전 대통령의 입가에 멍을 없애주는 히알라제 주사를 놓기도 했습니다. 이 일은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후 언론보도로 알려져 논란이 된 적이 있죠.

김상만 전 원장 관련 내용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김상만 전 원장은 박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이었을 때부터 진료를 했습니다. 김 전 원장이 박 전 대통령을 진료하고 기록부에 최순실씨와 언니 최순득씨, 그리고 '길라임' 이름을 기재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에 휩싸인 바 있습니다.

김상만 전 원장은 나중에 대통령 자문의가 되긴 했습니다만, 그 전까지는 '보안손님'으로 청와대를 드나들었습니다. 그는 주치의인 이병석 원장 몰래 자신이 가져온 영양주사 등을 박 전 대통령에게 놓고, 2급 국가기밀인 박 전 대통령의 혈액을 두 차례나 외부로 반출했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재판부는 "김상만 전 원장이 공식 진료절차를 따르지 않아 비선진료를 조장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임순 교수, 의료농단 개입 들통나자 "왜 저를 고생시키시나"

이병석 원장은 2014년 9월 업무 부담을 이유로 대통령 주치의 직을 수행하기 어렵다며 사의를 밝힙니다. 이후 서창석 서울대학교병원장이 대통령 주치의로 임명되는데요. 그 배경엔 최순실씨와 이임순 교수가 있습니다.

이임순 교수는 2004년부터 최순실씨와 딸 정유라씨를 진료하면서 최순실씨와 박 전 대통령이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알고 친분을 쌓았습니다. 그러던 중 2014년 6~7월 사이 최순실씨가 서울대학교병원 산부인과 의사에 대해 물었고, 이 교수는 학회활동을 함께 한 서창석 원장의 이름을 댔습니다. 이후 서창석 원장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대통령 주치의 면접을 본다"는 전화를 받고 주치의에 임명됩니다. 이 일로 이임순 교수는 최순실씨의 영향력을 실감했다고 합니다.

2015년 5월 이임순 교수는 김영재 원장과 엮이게 됩니다. 당시 최순실씨는 김영재 원장의 수술용 실을 서울대병원에 납품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면서 이임순 교수에게 박채윤씨의 연락처를 건넸습니다. 이임순 교수는 "대통령이 관심이 많은 제품이라고 한다"며 서창석 원장에게 연락처를 전달했습니다. 덕택에 박채윤씨는 김영재 원장의 실을 서울대병원에 납품할 수 있게 됐고, 김영재 원장은 서울대병원 외래진료의사로 위촉됐습니다.

지난해 말 국정농단 사건으로 김영재 원장 부부가 특혜를 받은 사실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이임순 교수도 자연히 문제가 됐습니다. 서창석 교수가 언론 인터뷰에서 사실을 말하자 이임순 교수는 서창석 교수에게 "지금 그 얘기를 하면 안 된다", "왜 저를 고생시키나. 제가 누구를 소개했다구요? 착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이임순 교수는 국회 청문회에서 "김영재 원장 부부를 서창석 원장에게 소개해준 적 없다"고 진술합니다. 이 진술은 법정에서 거짓으로 판명됐고, 이임순 교수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여기까지가 판결문을 위주로 재구성해본 의료농단 사건의 전말입니다. 박 전 대통령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공식 의료진까지 쥐락펴락한 최순실씨의 위세와 당시 청와대 의료 체계의 허점이 드러난 사건입니다. 이같은 비선의료 행위가 추가로 드러날 가능성도 있는데요.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청와대에서 기 치료·운동치료와 관련해 비상식적인 일이 있었다고 이영선 청와대 경호관의 재판에서 밝혔습니다. 특검은 박 전 대통령을 오는 31일 법정에 불러 직접 신문할 계획입니다. 박 전 대통령이 이날 법정에 나온다면 이 내용에 대해서도 확인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만배 기자 mbkim@mt.co.kr, 이태성 기자 lts320@mt.co.kr, 양성희 기자 yang@mt.co.kr, 한정수 기자 jeongsuhan@, 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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