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막말하는 비서실장..文대통령이라면?

이상배 기자 2017. 5. 20.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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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대통령·비서실장 같은 층에서 일하는 백악관 '웨스트윙'..물리적 거리 좁혀도 '권력 간격'은 남아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the300] 대통령·비서실장 같은 층에서 일하는 백악관 '웨스트윙'…물리적 거리 좁혀도 '권력 간격'은 남아]


# "적의 전사자를 늘려서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넨 약에 중독된 갱 두목과 다를 바가 없어. 자네가 미국 대통령으로서 미군을 왕의 군대처럼 부릴 생각이라면 나부터 죽여야 할거야. 왜냐하면 난 자네에게 대항할 군대를 만들 거고 결국엔 내가 이길테니까."

백악관을 무대로 한 미국 드라마 '웨스트윙'에서 대통령 비서실장 리오 멕개리가 제드 바틀렛 대통령에게 한 말이다. 개인적으로 아끼는 군의관이 시리아군에 피격당해 숨지자 격분한 바틀렛 대통령은 시리아군에 대해 통상적인 수준 이상의 공격을 지시한다. 그러자 멕개리 실장이 대통령을 조용히 회의실 밖으로 끌고나와 이렇게 꾸짖는다.

물론 드라마 속 대사지만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작가 아론 소킨이 이런 대사를 쓴 건 미국에선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비서실장이 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애초에 그런 일부터 없을 터다. 특히 직전 정부에선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윗분의 뜻을 받들어 발표드리겠다"며 브리핑을 시작하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모습은 박근혜정부의 권위주의적 색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대통령의 기침 소리 =문재인 정부 들어 청와대가 달라지고 있다. '탈권위'를 표방한 문재인 대통령은 참모들과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산책한다. 식사는 구내식당에서 식판에 밥을 담아 청와대 직원들과 함께 한다. 관저에서 집무실까지 차량으로 출퇴근하던 전임 대통령들과 달리 참모들과 함께 걸어서 출근한다.

문 대통령은 소통 강화를 위해 참모들과의 물리적 거리도 좁혔다. 참모들이 일하는 비서동(여민관)에서 500m 떨어진 본관 집무실 대신 비서동 집무실을 주로 이용키로 했다. 문 대통령은 여민1관에서 임종석 비서실장과 전병헌 정무수석과 같은 지붕 아래 일하게 된다.

대통령과 참모 간의 공간적 근접성이 크게 높아졌지만 여전히 백악관의 수준에는 못 미친다. 백악관 웨스트윙 2층에는 대통령 집무실과 부통령실, 비서실장실, 안보보좌관실, 선임고문실, 대변인실이 따닥따닥 붙어있다. 심지어 대통령 집무실의 서재 건너편인 선임고문실에선 대통령의 기침 소리까지 들릴 정도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안보보좌관실에서도 1분 이내 대통령 집무실에 다다를 수 있다.

반면 청와대 여민1관의 경우 대통령 집무실은 3층, 비서실장실은 2층, 정무수석실은 1층으로 각각 떨어져 있다. 심지어 민정·경제·국민소통수석실 등은 여민2관과 여민3관 등 다른 건물에 분산돼 있다.

토마스 앨런 매사추세츠공대 교수에 따르면 두 사람 간의 물리적 거리가 8m 이상이면 소통 빈도는 3m 이내일 때에 비해 3분의 1 이하로 줄어든다. 또 거리가 60m 이상으로 늘어나면 소통은 사실상 사라진다. 이처럼 물리적 거리와 소통 빈도의 상관관계를 정리한 게 이른바 '앨런 곡선'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불통' 문제는 이와 무관치 않다.

오웬 스미스 미시간대 교수의 연구 결과, 직장에서 동료들끼리 동선이 30m 겹칠 때마다 협력이 약 20%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과 참모의 소통을 늘리는 건 같은 공간을 쓰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르면 2019년 '광화문 대통령' 공약이 실현되면 대통령 집무실과 참모들의 사무실이 광화문 주변 한 건물에 입주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대통령과 비서실장, 대변인이 같은 층에서 일하는 게 가능해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신임 수석비서관들과 차담회를 하기 위해 본관을 나와 경내 소공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스1 (청와대 제공)

◇세계 2위의 권위적 문화=대통령과 참모가 공간적으로 가까워도 문화적 특성이 소통의 걸림돌로 작용할 우려는 여전히 남아있다. '심기경호'를 당연시하는 우리 문화에서 상사에 대한 직언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정치적 생명과 사회적 지위를 걸어야 하는 대통령에 대한 간언은 말할 것도 없다.

권위주의적 문화 탓에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정도를 PDI(권력간격지수·Power Distance Index)라고 한다. 텍사스대의 로버트 헬름라이히, 애슐레이 메리트 교수가 전세계 조종사들의 권력간격지수를 측정한 적이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PDI가 1위 브라질에 이어 2위였다. 3위 모로코, 4위 멕시코, 5위 필리핀 순이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권위적인 문화를 갖고 있는 나라 가운데 하나라는 뜻이다.

문제는 이 순위가 국가별 항공기 추락사고 발생 빈도의 순위와 거의 같다는 점이다. 부기장이 선임자인 기장에게 항공기 안전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하지 못할 경우 그만큼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국가권력도 마찬가지다. 참모가 바로잡지 못한 대통령의 실수는 국민과 국가의 불행으로 이어진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그에 따른 대통령 탄핵이 대표적 사례다. 박 전 대통령의 뜻에 따라 본의 아니게 최순실씨를 도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작은 충성'은 결과적으로 '큰 불충'이 됐다.

임종석 실장은 취임 일성에서 "예스맨이 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면 직언하겠다"고 약속했다. 당 태종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는 '작은 불충'을 통해 태평성대라는 '큰 충성'을 이룬 위징의 모습을 임 실장에게 기대해봐도 괜찮을까.

이상배 기자 ppark14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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