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희망 사다리' 사법시험, 반세기 만에 역사 속으로..

박지연 2017. 5. 20.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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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 수석, 사법연수원 수석 졸업자 조사]

상고 졸업 피란민 아들이 수석 합격도

2000년대 이후엔 사교육 그늘 아래

특목고-서울대 출신 수석자들 많아져

문 대통령 “사시 없애고 로스쿨 일원화”

올해 마지막 시험 50명만 영광 누려

고시전문 서적으로 빼곡히 채워진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서점에서 19일 시민이 책을 고르고 있다. 배우한 기자bwh3140@hankooklbo.com

수많은 고학생의 성공 신화와 함께 계층 상승의 대표 사다리로 꼽히던 사법시험이 올해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탄광과 농장을 다니며 닥치는 대로 일하던 고졸 은행원이 야간 법대에 들어가 사법시험 수석 합격을 거머쥔 이야기,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의류 노점상을 하는 의붓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자란 ‘흙수저’ 소녀가장이 고시에 도전해 수석 합격한 드라마는 이제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게 됐다.

“공부께나 했다”고 자랑하는 40대 이상 장년층이 “나도 한번쯤”이라고 마음먹었던 사법고시. 법전(法典) 살 돈과 책상 앞에 달라붙을 끈기만 있으면 족했다. 출신지역, 학력 제한 없이 누구에게나 열린 문이었다. 한 법조인은 “1990년대 전만 해도 책과 필기도구만 있으면 됐다”고 했다.

그에 비해 성취는 컸다. 합격만 하면 ‘개천에서 난 용’이 됐다. 섬마을 출신 사법고시 합격자가 귀향하는 여객선에서 ‘이 섬에서 낳고 자란 ○○○이 이번에 사시에 합격했다‘는 안내 방송을 들었다는 얘기는 법조계에서 널린 알려진 얘기다. 인생역전 드라마는 대개 결혼으로 완성됐다. 결혼정보업체 선호 순위 60위 고시생은 합격하는 순간 1, 2위로 폭등하고, 맞선 기회가 폭증했다. 고시 합격 후 조강지처를 버린 얘기는 각종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 소재였다. 고생 끝 부와 명예, 그것이 사법시험 합격의 과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고학(苦學)으로 인간승리를 일궈낸 수석 합격자들의 일화는 고시생들의 로망이었다. 그 중 백미가 조재연 변호사다. 강원도 어촌에서 피란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상업계 고등학교인 덕수상고를 졸업, 한국은행에 입사했다. 하루 빨리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집안 형편 탓이었다. 어느 정도 궁핍이 가시자 방송통신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야간 법학과에 편입한 뒤 사법고시에 도전, 당당히 22회 시험에서 수석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새로운 밀레니엄이 도래한 2000년 즈음부터 사법시험은 사교육의 그늘 아래 편입되기 시작했다. 특수목적고교를 졸업하고 서울대에 진학해 사법시험 수석을 차지하는 현상이 눈에 띄게 늘었다. “사법고시도 돈을 주고 사는 시대”가 온 것이다.

변호사 A씨가 대표적이다. 외고와 명문대 졸업 뒤 고시 과외를 거쳐 시험에 합격하기까지 그는 “족히 3억원은 들었을 것”이라고 농담조로 말했다. 틀린 말도 아니다. “무엇이든 속성 과외가 가능한 게 대한민국이다. 50년 역사의 사법시험도 이미 부자들 사이에선 속성 교육의 영역”이라는 게 한 법조인의 얘기다. 어려운 판례와 복잡한 법리를 이해할 정도의 기본기와 두뇌를 갖춰야 한다지만, 혼자서 수험서적을 쌓아두고 공부해 여러 해 시행착오를 거치다 끝내 합격을 거머쥐던 풍경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이런 현상은 한국일보가 19일 역대 사법시험 수석 합격자와 사법연수원 수석 졸업자를 전수 조사한 결과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99년 이후 수석 합격 또는 졸업자 34명 중 11명(32.3%), 그러니까 3명 중 1명이 특목고 출신이었다. 이 기간 사법시험(41~58회) 수석 18명 중 4명, 사법연수원 수석 졸업 16명 중 7명이 외고 또는 과학고를 졸업했다.

정형근(60ㆍ사법연수원24기)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시서적과 먹고 잘 곳만 있으면 독학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했던 과거와 달리, 2000년대 들어 경제력이 있어야 입시 위주의 사교육을 받는 사회구조가 형성되면서 사법시험 수석 합격과 연수원 졸업도 돈의 힘을 빌리게 됐다”고 지적했다.

63년 처음 치러진 사법시험은 지난 55년간 2만명이 넘는 법조인을 배출했다. 1947~49년 조선변호사시험이 모태가 돼 1950년부터 고등고시 사법과로 불리다, 63년부터 지금의 사법시험이 됐다. 69년까지는 평균 60점 이상을 합격시키는 절대점수제로 시행되다가 법조인력 확대를 위해 사법시험령을 전면 개정하면서 70년부터는 정원제를 채택했다. 이후 합격자 수는 300명에서 500명, 1,000명으로 점차 늘었으나, 로스쿨 도입으로 2012년 500명, 2014년 200명, 지난해 100명으로 줄었다. 올해 마지막 사법시험 합격의 영광은 50명만 누리게 됐다.

사법시험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사법시험 폐지와 로스쿨 일원화 공약을 내걸었다. 문 대통령은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했지만, 시위 전력 탓에 판사 임용 대신 곧바로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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