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神이 되려다 데이터敎 신자로 전락한 인간?

장대익 서울대 교수·진화학 및 과학철학 전공 입력 2017.05.2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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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최신작.. 인류 미래에 대한 비판적 고찰
人本主義 끝나고 데이터 숭배, "편의적 과학인용은 한계" 지적도

호모 데우스

유발 하라리 지음 | 김명주 옮김

김영사 | 630쪽 | 2만2000원

아이와 부모의 가장 큰 갈등이 요즘은 학업 문제가 아니다. 인터넷, 게임, 소셜 미디어로부터 아이들을 떼어놓기가 가장 힘들다고들 한다. 어디 아이들뿐이겠는가? 스마트폰을 보며 '혼밥'을 하는 어른들도 점점 늘어간다.

조금만 더 멀리 가보자. 함께 입사한 신입사원이 알고 보니 뇌기능이 강화된 사이보그였다. 그와 똑같은 인사고과를 받았다면 항의하겠는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맞춤형 아기를 가질 수 있다면, 큰 키 유전자를 배아에 삽입하는 데 동의하겠는가?

이런 풍경은 호모 사피엔스로서는 처음이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의 시작' '초지능의 출현' '특이점의 도래'라는 말을 한다. 4차 산업혁명을 운운하는 이들은 여전히 인간 중심적이다. 다양한 기술들을 촘촘히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 인류를 지속적으로 먹여 살리자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반면 초지능이나 특이점을 주장하는 이들은 기계의 우위를 예상한다. 하지만 이런 유의 미래 담론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이 빠져 있고, 역사가 결여되어 있으며, 주로 기술의 발전에 치우쳐 있다는 것.

/김성규 기자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가 최근 5년 사이에 세계 지식계를 강타한 이유는 바로 이 미래 담론을 인류의 빅히스토리와 그럴 듯하게 연결했기 때문이다. 거기서 그는 호모 사피엔스가 신, 인권, 국가, 돈에 대한 집단신화를 창조함으로써 지구의 정복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이번에는 인류의 미래다. 인류의 신화들이 혁명적인 신기술과 짝을 이룰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의 관심은 지난 300년 전에 탄생하여 현재 초절정 상태에 있는 인본주의(人本主義)다. 이것은 인류를 숭배하는 상상의 질서(또는 상호주관적 실재)로서, 유신(有神) 종교에서 신이 맡던 역할, 불교와 도교에서 자연법이 맡던 역할을 인류에게 요구해왔다.

문제는 이 인본주의가 과학기술의 획기적 발전으로 고삐가 풀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브레이크도 없다. 급기야 불멸, 행복, 신성(神性)을 21세기 인류의 중심 의제로 만들어버렸다. 결국 인류를 초인간(superman)으로 만들려는 공장 플랜이 가동된 것이다. 그런데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된 인류의 몸과 마음을 감히 어떻게 불멸과 행복을 위해 재설계하겠다는 말인가? 그는 이 플랜이 인간도 동물이나 기계처럼 하나의 알고리즘(정보처리장치)일 뿐이라는 과학적 사고에서 출발했다고 말한다.

기술의 도움으로 더 건강하고 오래, 더 행복하게, 능력을 향상시키며 살고 싶다는 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이 대목에서 중대한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 신기술들이 인간에게서 권한을 박탈하고 비(非)인간 알고리즘들의 권한을 강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을 인본주의와 '데이터교(敎)'의 만남으로 설명하는데, 데이터교는 "우주가 데이터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떤 현상이나 실체의 가치는 데이터 처리에 기여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다"는 믿음이다. 그는 이 과업이 완수되면 호모 사피엔스는 용도 폐기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18세기의 인본주의가 신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인간을 밀어 넣었다면, 21세기의 데이터교는 데이터가 그 인간을 밀어낼 것이라는 예측이다. 가령, '페이스북 천사'는 지난여름에 당신이 한 일쯤은 알고 있고,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간담이 서늘한가? 물론 우리가 창조한 신념 체계가 되레 우리 자신을 옥죌 수 있다는 스토리는 별로 새롭지 않다. 철학자 헤겔은 주인을 배반한 하인의 이야기를, 생물학자 도킨스는 유전자의 명령에 항거하는 밈(meme)의 작동을 설파했다(하라리가 이 둘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 다만 하라리는 헤겔식의 철학적 주장이나 도킨스식의 과학적 주장보다는 역사를 기술하는 데에 치중하고 있다.

장대익 서울대 교수·진화학 및 과학철학 전공

그가 다룬 몇 가지 중심 주제들에 대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혹독한 비판을 할 수도 있다. 가령, 네안데르탈인의 멸절 이유에 대한 그의 설명이 사피엔스의 인지적 우월성을 전제하고 있다거나, 허구가 어떻게 인간의 실제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어떠한 인과적 설명도 시도하고 있지 않다는 비판 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저자가 과학자처럼 경험의 세계로 끝까지 파고들지는 않은 채, 역사학자로서 과학을 그저 자신의 스토리에 맞게 적절히 활용하는 선에서 그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양한 영역의 지식을 씨줄과 날줄로 꿰어 하나의 큰 그림으로 그리는 능력은 가히 천재적이랄 수 있다.

주의할 것 두 가지. 첫째 이 책은 예언서가 아니다. 매우 그럴 듯한 시나리오들을 그려놓았을 뿐이다.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그중 무언가를 선택하고 미래를 바꾸는 일일 것이다. 아니면 아주 다른 그림을 잘 그리거나. 둘째 이 책은 '호모 데우스(신이 된 인간)'라는 제목과 달리, 신이 되려 하지만 그런 욕망을 추구하면 할수록 신(新)기술의 신하로 전락할 수도 있는 역설적 존재를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