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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소고기 대신 귀뚜라미 구워먹으면.. 지구를 살릴 수 있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입력 2017.05.2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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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정벌레·애벌레·메뚜기.. '미래 먹거리'로 떠오르는 곤충
그래픽=김충민 기자

이달 초 영국 에든버러대의 피터 알렉산더 교수는 국제학술지 '글로벌 식품 보안'에 한 해에 영국 면적의 70배에 해당하는 땅을 농사에서 해방시킬 방법이 있다고 발표했다. 전 세계 경작지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영국판 봉이 김선달이 내놓은 묘안은 바로 소고기 대신 귀뚜라미를 굽고, 돼지고기 대신 애벌레를 튀기자는 것이다.

곤충이 지구온난화를 막고 인류를 먹여살릴 대안의 식품으로 부상하고 있다. 벌레라면 질색인 사람들에게 짓궂은 농담처럼 들릴지 몰라도 이미 전 세계에서 20억명이 곤충을 식품으로 즐기고 있다. 알렉산더 교수는 "기존에 육류의 대안으로 제시된 합성 육류는 아직은 닭고기보다 환경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곤충은 당장 효과를 낼 수 있는 단백질"이라고 밝혔다.

◇에너지 적게 들고 온실가스 배출도 낮아

세상이 곤충에 주목하는 것은 생산성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바헤닝언대의 판 하위스 교수에 따르면 닭은 몸무게 1㎏을 불리기 위해 사료를 2.5㎏ 먹여야 한다. 돼지는 5㎏, 소는 10㎏은 먹어야 1㎏을 찌울 수 있다. 귀뚜라미는 1.7㎏이면 충분하다. 게다가 닭과 돼지는 절반 정도만 먹을 수 있지만 귀뚜라미는 80% 이상을 먹을 수 있다.

물도 적게 든다. 몸무게 1㎏을 찌우는 데 소는 4만3000L까지 물을 줘야 하지만, 귀뚜라미는 8L면 된다. 이 때문에 4인 가족이 1주일에 한 번씩만 고기를 곤충으로 대체하면 연간 65만L 물을 아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고기 1㎏을 얻는 데 필요한 땅도 귀뚜라미가 소 사육지의 7.5%에 그친다. 현재 농작물을 경작하는 땅의 두 배가 가축을 기르는 데 쓰인다. 농작물의 3분의 1도 가축 사료로 들어간다. 고기를 곤충으로 바꾸면 그 많은 땅과 물을 아낄 수 있다.

특히 최근 문제가 되는 가축의 온실가스 배출을 막을 수 있다. 가축은 분뇨와 트림, 방귀 등으로 메탄 같은 온실가스를 직접 배출한다. 사료 생산 과정에도 화석연료가 들어가 간접적으로 온실가스가 나온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인류가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18%가 가축에게서 나온다. 자동차 등 교통수단이 배출하는 양은 그보다 적은 14%이다. 곤충은 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소고기 1㎏을 만드는 데 온실가스 2850g이 배출되지만, 귀뚜라미는 1.57g에 그치기 때문이다.

◇가축 사료에서 식품으로 발전 중

곤충이 고효율 단백질원이라는 데에는 누구나 동의하지만 곤충을 극도로 꺼리는 서구에서 식품으로 먹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 때문에 서구 국가들은 처음에는 가축의 사료를 곤충으로 대체하는 데 집중했다. 유럽연합(EU)은 닭 배설물로 키운 집파리 구더기를 압착, 건조해 돼지 사료로 쓰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빌앤드멀린다재단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곤충 사료 공장을 지원했다.

하지만 효과는 뭐니뭐니 해도 식품 쪽이 확실하다. 최근 서구에서도 식용 곤충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5월 북미식용곤충연합이 출범했다. 회원사를 보면 대부분 과거 미끼용으로 곤충을 기르던 농가들이었다. 이들이 최근 몇 년 사이 식품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미국 프로야구팀 시애틀 매리너스는 이번 시즌부터 멕시코인들이 즐겨먹는 메뚜기 튀김을 구장에서 선보여 큰 인기를 얻었다.

식용 곤충을 보급하려면 먼저 대량생산 체계를 갖춰야 한다. 빅 크리켓 팜이라는 미끼용 귀뚜라미 제조사의 케빈 바쿠버 최고경영자(CEO)는 워싱턴 포스트지 인터뷰에서 "대형 식품 유통사와 얘기를 나눴는데 곤충 단백질이 한 해 300톤 정도가 필요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는 귀뚜리미 6억마리에 해당한다. 미국 최초의 귀뚜라미 농장인 암스트롱 크리켓 팜이 한 해 생산하는 양의 절반에 해당한다. 거래처 한 곳의 수요를 맞추는 데 그 정도 규모가 필요하다면 생산량을 지금보다 몇 배로 늘려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래픽=김충민 기자

◇환자용 건강식으로 먼저 인기 끌어

과연 지구온난화를 막자고 불고기와 삼겹살을 메뚜기와 애벌레로 바꿀 수 있을까. 영국 에든버러대 피터 알렉산더 교수는 "한때 기피하던 음식이 시간이 지나면서 인기 있는 음식이 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가 토마토와 로브스터(바닷가재)다. 토마토는 18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식용으로 재배하기 전까지는 기피식물이었다. 독초인 맨드레이크와 닮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로브스터가 그랬다. 영국 청교도들이 미국 동북부에 발을 디딘 17세기에는 워낙 로브스터가 흔해 원주민들이 먹지 않고 거름으로 썼다고 한다.

영국 세필드대의 존 하우스 연구원은 최근 논문에서 스시가 곤충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스시는 처음에는 고급 일식당에서 소수만 즐기던 음식이었지만, 대량생산으로 가격이 떨어지면서 이제는 미국인 대부분이 즐기는 대중음식이 됐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식용 곤충이 몸에 좋다는 점을 먼저 공략하고 있다. 농촌진흥청과 세브란스병원은 2015년 갈색거저리 유충을 이용한 암환자용 식단을 개발해 공동으로 특허를 출원했다.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 황재삼 연구관은 "환자는 체력 유지와 상처 회복에 필수 아미노산이 함유된 양질의 단백질 식품이 필요하다"며 "갈색거저리는 여기에 최적인 식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실험한 결과 곤충식을 먹은 환자들은 일반식 환자에 비해 체중 손실이 덜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식용 곤충 산업화에 들어갔다. 국내에서는 예전부터 먹던 누에번데기, 벼메뚜기, 백강잠(누에 건조품)만 식품 원료로 등록돼 있었다. 여기에 그동안 과학연구로 개발된 식용 곤충 4종이 지난해 추가로 등록됐다. 지난해 3월 갈색거저리 애벌레와 쌍별귀뚜라미, 12월 장수풍뎅이 애벌레와 흰점박이꽃무지 애벌레가 한국인의 식품 원료로 공인받았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곤충산업 규모는 2009년 1500억원대에서 2015년 3000억원대로 증가했다. 2020년에는 1조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