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국제학술지에 등장한 한국 라면봉지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17. 5. 2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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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 사촌 '게코'의 발바닥 접착력 활용한 접착제 개발 담은 논문
"라면봉지서 접착 유지는 상당히 어려운 일".. 한국 연구진이 예시로 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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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국제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한 논문의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접착테이프로 오렌지 주스가 든 플라스크와 머그컵, 방울토마토 등을 들어 올린 모습이었는데, 사진 맨 오른쪽에 최근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던 라면이 보였다. 어떻게 세계적인 학술지에 한국 라면 사진이 실렸을까.

논문의 제1 저자는 독일 막스플랑크 지능시스템 연구소 박사과정의 송석호 연구원이다. 그는 이 논문에서 "천장에 거꾸로 매달리는 파충류를 모방해 곡면이 많은 물체라도 손가락을 갖다 대기만 하면 가볍게 집어 올릴 수 있는 접착테이프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송 연구원은 "라면 봉지는 쉽게 변형돼 접착을 유지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물체"라며 "이번에 개발한 접착테이프의 능력을 보여주는 데 안성맞춤이었다"고 말했다. 라면은 막스플랑크연구소의 박사과정에 있는 한국인 후배가 줬다고 했다. 그는 "한국 과학자들이 20여명 있다 보니 그런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송 연구원은 도마뱀의 사촌 격인 도마뱀붙이 '게코(gecko)'를 모방했다. 게코의 발바닥에는 수백만 개의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털이 나 있다. 미세 털이 딱딱한 물체와 맞닿으면 전기적으로 중성인 분자들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을 때 서로를 잡아당기는 '반데르 발스 힘'이 작용한다. 각각의 털에 작용하는 힘은 미약하지만 수백만, 수십억 개가 모이면 도마뱀붙이의 몸무게를 지탱할 만한 강력한 접착력을 발휘한다. 동전 하나에 100만 개의 털을 심으면 아이 몸무게를 지탱할 정도다.

과학자들은 2000년부터 게코의 발바닥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2006년 당시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의 김상배 연구원(현 MIT 교수)은 게코처럼 발바닥에 미세한 털이 달려 벽을 기어오를 수 있는 로봇을 개발했다. 국내에서는 공장에서 디스플레이를 집어 옮기는 로봇을 위한 게코 테이프가 개발됐다.

문제는 게코 테이프가 벽이나 천장처럼 딱딱하고 평평한 곳에서는 접착력이 세지만 식기나 과일같이 모양이 불규칙한 물체에는 밀착이 잘 되지 않아 접착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송 연구원은 "게코의 발바닥처럼 미세 털이 난 필름을 만들어 모양이 불규칙한 물체에 붙였더니 원래 접착력의 4% 정도만 쓸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공기압으로 테이프를 물체에 밀착시키는 방법을 개발했다. 필름 뒤에 공기가 들어오는 공간을 만들고 튜브를 주사기에 연결했다. 주사기로 공기를 밀어주면 테이프가 물체의 구부러진 면에 빈틈없이 달라붙었다.

송 연구원은 "공기압을 주면 게코 테이프 본연의 접착력을 곡면에서 최대 26%까지 끌어낼 수 있다"며 "항공기처럼 곡면으로 구성이 된 물체의 표면을 돌아다니면서 결함을 조사하는 로봇에도 이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접착테이프는 단 2.5㎠ 크기로 음료수 캔만 한 300g 이상을 들어올릴 수 있었다.

로봇이 사람과 같이 생활하려면 손부터 달라야 한다. 로봇의 강력한 손 힘은 공장에서 금속 부품이나 공구를 들 때는 도움이 되지만 식탁에서 컵을 건네거나 과일을 집어 줄 때는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밥 먹을 때마다 그릇을 부수고 토마토를 으깨버리면 같이 살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에 개발된 게코 테이프가 로봇의 손길을 부드럽게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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