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예술 - 음악] '틀린' 음악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음악이 다 ‘다를 뿐’이라고 선뜻 말하기는 힘들다. 마치 입맛이 그런 것처럼. 다들 맛없다고 고개를 젓는 식당의 음식을 먹으면서 “정말 맛있다”고 하는 사람에게 “입맛이 나와 다르군”이라고 말하긴 쉽지 않다. 아직 김치 맛을 잘 모르는 조카에게, 홍어찜을 싫어하는 손주에게 “그 녀석, 입맛이 나와는 다르군”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입맛은 변하고 자란다. 때로는 입맛이 잘 자라 그것의 달인이 되기도 한다. 소믈리에처럼.
음악도 그렇다. 입맛처럼 개인의 취향 문제지만 그렇다고 다 다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음악이나 음악회는 때로는 잘못 끓인 찌개처럼, 익기도 전에 쉬어 버린 김치처럼 그렇게 덜 익었다.
문제는 공연 전체였다. 비발디의 삶에 근거한 허구를 줄거리로 삼아 내레이션과 음악, 무대 조명과 효과, 무용이 어우러지는 공연이었으나 이 각각의 요소들은 모두 다 따로 놀았다. 줄거리는 치밀하지 않았고, 내레이션에 이어지는 음악은 그와 전혀 연관성을 갖지 않았으며, 무용은 뻔했고 요란하기만 한 (그리고 아마 엄청난 비용이 들었을) 조명과 효과는 세련되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았다. 결국 남은 것은 연주자들의 현란한 기술뿐이었으나 그 기술마저 조악하고 천편일률적인 편곡에 묻혀 버렸다.
‘비발디아노’는 음식에 비유하면 여러 가지 재료, 그것도 비싼 재료를 사용했으나 그것들을 잘 버무리지 못한 작품이었다. 충분히 숙성되지 않아 각각의 맛이 따로 노는 것 같은, 그런 작품이었다. 이 재료들 각각은 제법 맛을 낼 가능성이 있는 것이어서 이러한 부조화가 더 아쉬웠다.
요컨대 음악이나 음악회도 때론 틀린다. 거창한 타이틀과 그럴듯한 구호, 비싼 비용을 가지고서도 덜 익은, 덜 성숙한 음악이 그렇다. 음악만 그렇겠는가. 우리가 경험했던 틀린 정치도 그렇다.
나는 고개를 돌려 스스로에게 묻는다. 삶은 어떤가? 그럴듯한 구호와 ‘다르다’는 변명으로 포장한 채 나는 덜 익은, 틀린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두렵다.
정경영 한양대 교수·음악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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