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월간중앙]'재계 저승사자'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국, 부당내부거래는 기본.. 재벌 횡포 전방위 조사한다

고성표 입력 2017.05.20. 00:02 수정 2017.05.20.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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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정부 시절 청와대 하명에 따라 5대 그룹 수차례 집중조사
엘리베이터·사무실에 갇히고, 경비용역에 쫓겨나며 8년간 부당내부거래 31조 적발
교묘해진 수법 적발 위해선 강제조사권 등 제도개선 목소리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5월1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개혁과제 중 검찰개혁과 함께 가장 큰 관심을 받는 것이 바로 ‘재벌개혁’이다. 문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사에서 “재벌개혁에 앞장서겠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정경유착이라는 낱말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대선운동기간 내내 강조했던 ‘적폐청산’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지난 최순실 국정농단사태 이후 상처받은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추락한 국격을 회복하는 것이 시급한 데다, 대선이 끝난 시점이라는 점을 고려해 통합과 소통에 방점을 둔 내용이 취임사의 주를 이뤘다.

하지만 재벌개혁이라는 단어를 취임사에서 꺼내든 것은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의지를 재차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역대 대통령의 취임사와 비교해봐도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재벌개혁 문제는 이미 대선운동 기간 문 대통령이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10대 공약 가운데 상위 순번인 세 번째에 배치된 것만 봐도 재벌개혁이 문재인 정부가 얼마나 중시하는 화두인지 알 수 있다.

━ 공정위 화력 4대 재벌 개혁에 집중

재벌개혁의 방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문 대통령이 평소 재벌문제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의 재벌에 대한 인식이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지난 1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한 기조연설에서다. 이날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3차 포럼-재벌적폐 청산, 진정한 시장경제로 가는 길’에 참석한 문 후보는 강하고 확실한 어조로 재벌개혁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재벌경제가) 경제성장의 걸림돌이 되고 재벌 자신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번에 단호하게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재벌적폐를 청산해야 우리 경제를 살리고 국민 모두 잘사는 나라로 갈 수 있다. 그동안 역대 정부마다 재벌개혁을 공약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는 게 사실이다. 정부의 의지가 약한 탓도 있었고, 규제를 피해가는 재벌의 능력을 정부가 따라가지 못한 측면도 있다. 그래서 저는 이것만큼은 꼭 하겠다는 실현가능한 약속만 하고자 한다. 재벌 가운데 10대 재벌, 그중에서도 4대 재벌의 개혁에 집중할 것이다.

재벌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서는 총수 일가의 전횡을 막기 위한 집중투표제·전자투표 등을 도입하고, 재벌의 중대범죄에 대해선 ‘무관용의 원칙’을 세우겠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지주회사제도를 개선하겠다. 무늬뿐인 지주회사가 재벌의 문어발 확장의 수단이 되고 있다. 재벌개혁이야말로 기업에 새로운 성장동력이며 경제정의와 함께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다.”

━ 김상조 “공정위 강화가 아니라 정상화”
1997년 4월 1일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이 과천 제2청사에서 열린 창립 16주년기념식에서 공정위 깃발을 흔들고 있다. DJ의 하명을 받은 전 원장은 공정위 조사국을동원해 재벌기업의 부당내부거래를 집중 적발했다. [사진 중앙포토]
이날 연설을 들여다보면 평소 재벌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인식은 상당히 부정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취임식에서 재벌의 행태를 적폐로 직접 규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같은 발언으로 볼 때 그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 재벌의 행태는 청산 해야 할 주요 적폐 중 하나인 셈이다. 재벌개혁의 수단으로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는 것 중 핵심은 공정거래위원회 기능강화다. 이는 지난 4월 12일 문 후보 캠프가 내놓은 경제 비전 ‘사람경제 2017’(일명 제이노믹스)에서 구체화된 바 있다.

‘제이노믹스’가 발표된 날 문 후보는 SNS에 “제이노믹스는 사람 중심의 경제를 말한다”며 “이를 위해 ‘갑질’을 몰아내려면 공정거래위원회의 전면 개혁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공정위의 전면 개혁은 다른 말로 공정위의 대기업 전담조사 강화를 뜻한다.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후보로 거론되는 새로운대한민국위원회 부위원장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과거 조사국 수준으로 조직을 키워 (대기업) 조사 기능을 강화하고, 기업 갑질과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해결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계의 저승사자’로 불리던 공정위 조사국을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대선 투표일 직전인 6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공정위 조사국 부활문제와 관련해 “(조사국 부활은) 공정위 강화가 아니라 정상화로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그동안 공정위가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의미를 내포한 언급이다.

공정위의 재벌 봐주기 행태는 그동안 여러 차례 문제로 제기된 바 있다. 지난해 5월 공정위는 5년간 원·달러 환율을 담합한 롯데·신라면세점 등 8개 면세점에 과징금 부과 대신 ‘시정명령’을 내렸다. 당시 공정위의 결정을 두고 지나치게 가벼운 징계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같은 공정위 결정에 대해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에게 “만인은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하는데 공정위의 온정주의로 많은 불만사항이 있다”며 “환율담합을 적발하고도 고발이나 과징금 없이 시정명령만 내렸다”고 지적했다.

━ 4대강 공사 입찰담합도 솜방망이 처벌

과거 공정위는 4대강 공사 입찰담합 사건에서도 재벌 대기업들에 약한 모습을 보였다. 4대강 공사 입찰담합으로 건설사들이 올린 부당이익은 1조6630억원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규모는 1115억원에 불과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는 “상식적으로 1조5000억원이 남는 장사인데 법을 안 어기겠느냐”며 공정위를 강하게 질타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때는 공정위가 대기업 위장 계열사 72개를 적발하고도 고발은 단 1건에 그쳐 역시 “재벌 봐주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또 지난해 공정위는 2011년 이후 5년간 대기업집단 위장 계열사 22건(72개 회사)을 적발하고도 롯데 신격호 총괄회장을 고발한 것 외에 단 한 건도 검찰에 고발조치하지 않아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이 문제를 집중 거론한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위장계열사 적발은 재벌 총수 제재와 직결되므로 공정위의 경제민주화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초석”이라며 “공정위는 겉으로는 경제민주화를 말하면서 속으로는 재벌 봐주기와 청와대 코드 맞추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롯데그룹의 위장계열사를 적발하고 검찰에 고발조치까지 했다. 하지만 롯데 측이 취소소송을 제기하면서 신청한 집행정지가 법원에 인용되기도 해 공정위가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과징금 규모, 검찰 고발조치 여부와 관련해 비판이 나올 때마다 공정위 측은 “과징금을 많이 부과하거나 무리한 고발조치를 했을 경우 법원에서 패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이해를 구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는 공정위의 조사가 치밀하지 못하고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사실 재벌 기업에 대한 공정위의 부실한 조사는 정권(청와대)과 공정거래위원장 등 조직 수뇌부의 의지의 문제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게다가 거대 로펌을 등에 업은 재벌을 상대하기에는 현 공정위의 조직 자체가 날 선 칼을 휘두르기 어 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재벌 기업 조사를 전담해 대규모 기획조사나 직권조사를 벌이는 별도의 조사국이 있었다. 공정위 조사국을 업계에서는 ‘재계의저승사자’로 부르기도 했다. 대기업의 부당거래 조사는 물론 과징금 부과까지 떠맡았다. 검찰로 치면 과거 대검 중수부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조직이었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2년 만들어진 공정위 조사국은 IMF 직후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노무현 정부 초기까지 조사국 소속으로 재벌기업에 대한 현장 조사를 전담해온 전직 공정위 관료 출신 A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지난 4월 12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문재인의 경제비전' 발표를 선언했다. 문 후보는 이날 국가재정지출 증가율을 연 7%(현행 3.5%)로 확대하고 미래성장기반에 투자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다. 공정거래위원회 개혁을 통한 '갑질' 철폐, 국민연금 공공투자 등도 약속했다. 김상조 교수(왼쪽)는 공정위 개혁의 핵심 인사다. 오종택 기자
━ 청와대 다녀온 직후 비상 건 전윤철 위원장 “원래 경제기획원 소속이었다가 1994년 공정거래위원회로 독립한 후 차관급이던 공정거래위원장이 장관급으로 격상됐다. 그리고 IMF 사태가 터진 후 DJ 정부 들어 본격적으로 재벌기업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다. 당시 조사국은 총괄과, 1과, 2과 체제로 돼 있었는데, 조사관들은 기업의 재무제표는 수 분 내에 다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어야 했다. 기본회계는 물론이고 기업 전반의 자금 흐름, 국제시장 상황 등을 꿰고 있지 않으면 제대로 된 조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김대중 정부는 IMF 조기 탈출을 목표로 산업 대부분에서 통폐합과 구조조정을 강하게 추진했다. 특히 재벌개혁은 화두였다. DJ는 대통령으로 취임도 하기 전인 1998년 1월 중순 이건희(삼성)·정몽구(현대)·구본무(LG)·최종현(SK) 회장을 불러 지배주주와 경영진 책임 부과, 재무구조 개선, 주력업종 중점육성 등 개혁 추진을 강하게 요구했다. 그만큼 재벌개혁은 시급한 문제였고, 강한 드라이브가 걸렸다.

DJ 취임 직후인 1998년 3월 초 당시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은 청와대 보고를 다녀온 직후 공정위 전 국장을 긴급 소집했다고 한다. 공정위 고위관료 출신인 B씨는 “청와대를 다녀온 전 원장이 국장들을 소집해 당장 재벌기업들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면서 공정위 전체가 난리가 났었다. 대통령의 직접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했다. 어떤 기업을 조사 대상으로 선정하느냐부터가 문제였다. 조사의 실효성과 형평성 문제 때문이었다. 사실 어느 기업이 선정됐다는 얘기만 밖으로 새도 당장 로비 대상이 될 정도라 조심스럽게 기업 조사를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당시 공정위 조사국 직원들은 꼬박 두 달 동안 밤을 새워가며 재벌기업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각 기업으로부터 조사표를 받아 분석에 들어갔다. 그리고 5월 8일 전격 조사에 들어갔다. 다시 B씨의 증언.

“부당내부거래를 찾는 것이 핵심이었다. 당시 부당내부거래는 대부분 자금의 직접적인 부당지원이 많았다. 조사국 과별로 현대·삼성·LG 등 재벌기업을 하나씩 맡아 조사가 시작됐다. 큰 조사일 경우 현장투입 인원만 팀당 10명씩 됐다. 어느날인가 전경련 모 고위간부가 공정위에 쫓아와 항의하고 난리가 나기도 했다. 조사국이 이전에도 간간이 기업에 대한 직권조사를 한 적도 있지만 부당내부거래 사건이 대대적으로 터지기 전까지는 기업 관계자들이 달력 한 장도 안 갖고 올 정도로 무시하던 부서였다. 하지만 이때부터 분위기가 확 바뀌기 시작했다.” 사실 공정위 조사국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주로 비고시 출신, 나이 든 직원들이 발령 나는 비인기 부서였다고 한다. 그에 비해 고시 출신 에이스 사무관들이 주로 포진해 있던 독점국은 인기 부서였다. 하지만 독점국은 당시 재벌의 불법·탈법 거래 등과 관련해 그다지 두드러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DJ의 재벌개혁 전위부대로서 공정위 조사국의 활동이 시작된 후 성과가 하나둘 나오면서 조사국의 위상은 확 바뀌게 된다.

당시 조사국은 재벌기업들의 로비를 사전에 최대한 차단하기 위해 나름의 업무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한다. 일일보고와 주간보고가 그것이다. 전직 공정위 관계자 A씨의 증언.

“조사를 갔다온 후 매일 그 결과를 보고했다. 또 일일보고 내용의 핵심을 다시 주간 단위로 정리해 보고했다. 조사 내용에 따라 재벌 총수를 겨냥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었기 때문에 큰 위험이 뒤따랐다. 따라서 로비 등에 노출돼 조사에 영향을 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날마다 조사한 내용을 보고하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조사 과정에서 조사관들은 기업의 비밀스러운 부분을 일부 목격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기업들은 하드카피로 된 세금계산서철을 갖고 있었는데, 여기에 각종 비위 정황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 가필돼 있었다는 것이다.

“세금계산서철에 보면 증빙 부분에 검찰청·경찰청 등 기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비밀계좌도 엄청 많이 봤다. 대부분 기업이 로비하고 접대한 정황이었다. 조사 초기에 기업들은 부당내부거래를 추적하는 우리의 조사 의도를 정확히 알지 못했 다. 만약 자금력과 광고력으로 기업이 우리의 조사를 방해하는 등의 상황이 벌어지면 우리가 본 여러 가지 자료를 토대로 검찰에 알리는 식으로 돌파하려고 준비한 적도 있었다.” (전직 공정위 조사국 조사관 B씨) 조사는 일사천리였다. 조사가 진행되는 도중 부당내부거래가 너무 많이 잡혀 기업 조사담당 조사관들끼리 그 차이를 조정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1차 조사로는 부족했다고 판단한 공정위 조사국은 2차 조사에 들어갔다. 주로 5대 재벌기업이 타깃이었다.

이후 공정위 조사국은 5대 재벌기업만 네 번에 걸쳐 집중 반복조사를 했다. 지금은 기업의 현장조사에 불과 2~3일 정도인 반면 당시에는 기업당 2주의 시간을 갖고 속속들이 조사를 진행해나갔다. 공정위 조사국은 외환위기 직후부터 2005년까지 8년 동안 17차례의 대대적 직권조사를 통해 30대 대기업집단의 부당내부거래 금액 31조원을 밝혀내 38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당시 조사관들은 조사 과정에서 기업들의 방해 시도도 여러 차례 겪었다.

“경비용역들이 달려들어 조사관들을 번쩍 들어 사무실 밖으로 쫓아내기도 했다. 또 밖에서 우리가 뻔히 보고 있는데도 대놓고 서류를 파기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문제가 될 만한 건물의 특정 층에 엘리베이터가 아예 서지 않도록 사전에 조정해놓기도 했다. 한 번은 조사를 나갔다 사무실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돼 식사도 못하고 쫄쫄 굶는 경우도 있었다. 조사방해가 심각해지자 과태료도 이전보다 대폭 상향하는 조치를 취했다. 기업의 조사방해를 돌파하기 위해 공정위 조사관들의 압수수색권 부여를 요청하기도 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전 공정위 조사국 조사관 A씨)

공정위 조사국의 공격적인 조사가 계속되자 재계에서는 “공정위가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고 현장조사를 하면서 기업 활동을 방해한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DJ 정부에서부터 노무현 정부 초기까지 공정위 조사국은 재계의 반발과 제한 된 권한이라는 현실적 한계 속에서도 부당내부거래 등을 집중적으로 파헤치며 큰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중반기인 2005년 12월 조사국은 폐지됐다. 전경련을 비롯한 재계의 불만이 컸고, 이들의 로비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말이 파다했지만, 시장 상황과 시대 흐름의 변화에 맞춘 조직개편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노무현 정부 때 조사국 폐지와 관련해 취재 과정에서 또 다른 속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공정위 외부의 압력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조사국 폐지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2004년 공정위 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자체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모 대학 교수들이 조직개편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공정위에서 없어져야 할 부서로 조사국 세 과가 최우선 순위로 꼽혔다는 것이다. 내부적으로도 부서 간 견제와 시기가 많았던 것 같다. 사실 공정위 자체가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을 때가 많다. 감사원·국세청·검찰 등 사정 기관이 대부분 공정위 활동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조사국 폐지는 재벌에 대한 과징금 규모가 대폭 줄어드는 결과로 나타났다. 조사국 폐지 이후 7년간은 과징금 규모가 1330억원으로 이전 비슷한 기간에 비해 3분의 1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조사국 폐지 후 현재 공정위에서 대기업을 담당 하는 조직은 경쟁정책국·시장감시국·카르텔조사국·기업거래정책국·소비자정책국 등으로 나뉘어 있다. 대기업 담합사건은 카르텔조사국, 부당내부거래는 시장감시국에서 맡는 식이다. 겉으로는 역할을 세분화하고 전문화한 것처럼 보이 지만 재벌문제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힘은 확연히 줄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 인력 없어 과부하에 시달리는 공정위 ‘경제민주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던 박근혜 정부 초기에도 조사국 부활을 검토한 바 있다. 당시 노대래 공정거래 위원장은 인사청문회에서 “현행 조직과 인력으로 대기업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등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대기업을 필요 이상으로 압박한다는 재계의 의견 등이 반영되면서 조사국 부활은 무산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 이후 더이상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고 공약으로만 그침으로써 재벌개혁에 대한 동력 자체 가 상실된 탓도 컸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공정위 조사국 부활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DJ 정부 때와는 재벌 대기업의 대내외적 상황이 변한 부분이 적지 않아 20여 년 전과 똑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기획·직권조사를 통해 재벌에 대한 상당한 견제와 압박 수단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공정위 내부에서는 일단 조사국 부활 등 공정위의 역할과 위상 강화에 큰 기대를 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현 인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내부의 목소리도 많다. 공정위 한 관계자는 “2013년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와 신규 순환출자 금지 등으로 재벌 대기업 관련 업무는 크게 늘었지만 조직과 인력 등은 보강되지 않았다”며 “조사국 부활과 함께 인력 확충 문제가 해결되면 재벌 대기업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감시 역할이 더 원활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조사국 부활이 추진될 때도 공정위는 “전체 인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지만 청와대와 안전행정부(현 행정자치부)는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지난해 공정위는 3885건의 사건을 처리했다. 한정된 조사인력으로 4000건 가까운 사건을 처리하는 데 큰 무리가 따랐다는 불만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담합사건의 경우 평균 처리기간이 3년이나 걸릴 정도로 과부하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정위 내부에서는 조직 확대개편 없이 조사국만 신설하는 것은 안 된다는 분위기다. 인력증원 없이 조직만 만들면 한정된 조사인력을 이동시키는 것에 불과해 업무의 과부하라는 악순환이계속되리라는 우려 때문이다.

더구나 현재는 기업들의 불법·탈법이 더 교묘해져 적발하는 것도 쉽지 않다. 공정위 한 관계자는 “DJ 시절만 해도 공정위 조사국이 조사를 나가면 ‘어려운 계열사를 살리기 위해 지원한 것이 왜 위법이냐’며 오히려 스스로 부당내부거래를 털어놓는 일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쪽으로 방향과 수법이 바뀌고 다양해져 위법행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따라서 공정위 강화를 위해서는 그에 따른 충분한 조사권한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직 조사국 관계자 A씨도 “부당내부거래를 중심으로 재벌 조사가 집중적으로 진행되던 당시와 달리 지금은 재벌의 부당행위 수법이 상당히 정교해지고 교묘해진 측면이 있어 적발해 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조사를 전담하는 전담조직과 인력이 부활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부당행위를 예방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이어 “과거에는 재벌들이 자금·자산을 통한 부당내부거래를 주로 해왔다면 현재는 다양한 방식의 상품용역거래를 통한 부당거래로 행태가 바뀐 만큼 더욱 전문화되고 치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공정위의 조사권한은 크지 않다. 미국의 경우 담합사건은 법무부 소관이라 당연히 강제수사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연방거래위원회(FTC)도 예비조사 이후 확보된 자료가 미흡할 경우 실시하는 본조사는 강제집행명령을 신청할 수 있어 강제조사의 성격을 띤다.

EU나 독일·일본 등 다른 선진국의 경우에도 강제조사권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금융위원회나 국세청 등 다른 감독당국도 조사의 실효성 제고와 사전예방 차원에서 압수수색권을 도입하고 있다.

━ “재벌개혁 의지 없으면 캠프에서 나올 것”
2011년 5월 4대 정유사 담합심사를 위해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가 열렸다. 그 후 공정위는 43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으나 정유사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해체면을 구겼다. 공정위의 부실한 조사 때문이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사진 중앙포토]
공정위는 재벌 대기업의 계열사 간 부당지원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1999년부터 금융거래정보를 금융기관에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일몰시한이 연장되었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재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담합에 한해 증거인멸을 막기 위해 압수수색권을 부여하려고 했으나 무산되기도 했다.

국회 입법을 통한 공정거래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다. 지난해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담합, 부당지원행위, 일감 몰아주기 등의 조사에 한해 검사가 청구한 영장을 발급받아 압수수색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제윤경 의원은 “담합 사건 조사의 경우 필요한 증거를 적기에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데, 공정위에 강제조사권이 없기 때문에 기업들이 조사를 방해하거나 거부하면 공정위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제 의원은 “과거에 공정위가 ‘재벌의 저승사자’로 불리던 시절에는 막강한 조사국도 있었고, 금융거래 정보요구권도 있었는데 지금은 재계 요구로 다 없어져 ‘이빨 빠진 고양이’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지적하며 “강력한 재벌 개혁을 위해서는 다른 선진국처럼 공정위에 강제조사권도 부여하고, 재벌문제를 전담할 수 있는 ‘기업집단국’도 신설해 강력한 경제검찰의 위상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공정위 조사국의 조사 대상을 너무 부여하고, 재벌문제를 전담할 수 있는 ‘기업집단국’도 신설해 강력한 경제검찰의 위상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공정위 조사국의 조사 대상을 너무 넓게 잡기보다 가능한 한 좁혀서 집중조사를 통해 개혁의 방향과 내용을 현실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은 대선운동 기간 소위 4대 재벌을 우선 개혁 대상으로 삼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지난 1월 당시 문 후보는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포럼에서 “삼성·현대차·LG·SK 등 4대 재벌개혁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2015년 기준 30대 재벌의 자산총액 중 4대 재벌이 차지하는 비중은 51.6%(범 4대 65.2%)로 대기업에서도 양극화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가장 문제가 큰 4대 재벌만 확실히 잡아도 재벌개혁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 다. 또 조사국의 역할과 조사범위도 확대돼야 한다는 논의도 있다. 조사국이 과거처럼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부당내부거래를 캐내는 것뿐만 아니라 납품단가 후려치기나 기술 탈취와 같은 대기업의 횡포를 감시하는 영역까지 확대돼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의 의지다. 이와 관련, 문재인 캠프에서 재벌 개혁과 관련 핵심 역할을 해온 김상조 교수는 지난 3월 중순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문재인 후보는 재벌개혁 의지를 확고하게 갖고 있다”고 평한 뒤 “만약 문 후보가 재벌개혁에 뜻이 없다고 판단되면 그것을 바꾸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래도 안 되겠다고 생각되면 그땐 캠프를 나올 것”이라고 언급했다.

당시 김 교수는 재벌개혁과 관련해 문 대통령에게 구체적 수치 등을 파워포인트와 풀 텍스트를 준비해 자세히 설명했다고 한다. 또 설명으로만 끝나지 않고 질문과 답변 등 다양한의견을 교환하며 재벌개혁의 구체적 방향과 방식에 대해 상당부분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 대통령이 재벌개혁 대상으로 4대 재벌을 설정한 것도 김 교수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 김상조 위원장 부담스러운 재계

일단은 공정위 조사국 부활 등 규제기관 강화와 정상화를 통한 재벌 규제와 감시가 강조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재벌개혁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인식이다. 문 대통령은 장기적으로 시장의 압력을 통한 재벌개혁 이 행정기관을 통한 감시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즉, 시장에서 활동하는 주주·채권자·노동자·소비자 등의 이해관계자들의 권리가 정상적으로 형성돼야 근본적 개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재벌개혁에 대해 재계는 긴장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정부와 재계의 주된 소통창구 역할을 했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사실상 문재인 정부 아래서는 과거의 역할을 하기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전경련이 적폐청산의 주된 대상이 되면서 정부와 소통 채널에서 제외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전경련 패싱’이란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재계 사정에 밝은 한 경제지 전문기자 C씨는 “취임사에서 문 대통령이 직접 꺼낸 재벌개혁이라는 단어의 위력이 대기업들에 굉장한 압박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며 “더구나 재벌문제를 가장 깊이 있게 알고 있는 김상조 교수가 공정거래위원장으로서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여 재계 관계자들이 상당히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라고 말했다.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