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5·18 도청 앞 발포는 병력수송 헬기 착륙공간 확보작전"

한승하 입력 2017.05.19. 23:34

5·18 당시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가 병력수송헬기 착륙공간 확보 작전이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는 자신의 논문 '5·18 민주화운동의 재구성-계엄군의 사격행위를 중심으로'에서 1980년 5월 20일 광주역 앞 사격, 다음날 집단발포와 다수 시민이 목격한 헬기사격 모두 20사단 투입 작전의 일환이라고 19일 밝혔다.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5·18 당시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가 병력수송헬기 착륙공간 확보 작전이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는 자신의 논문 ‘5·18 민주화운동의 재구성-계엄군의 사격행위를 중심으로’에서 1980년 5월 20일 광주역 앞 사격, 다음날 집단발포와 다수 시민이 목격한 헬기사격 모두 20사단 투입 작전의 일환이라고 19일 밝혔다.

이 논문은 김 교수가 당시 육군본부 작전 조치사항과 전교사 작전 일지, 계엄사 계엄상황일지, 3공수 전투상보 등을 종합 분석해 작성했다.
80년 5.18 당시 군 헬기가 전일빌딩 주변을 비행하고 있다. 5.18기념재단 제공

김 교수는 21일 집단발포를 감행한 11공수의 주요 작전은 병력배치를 위한 헬기장 확보였으며, 계엄당국이 헬기로 실어나르려 했던 병력은 당일 오전 8시 쯤 광주시내 진입을 시도했다가 시위대에 막혀 상무대로 차를 돌린 20사단이라고 지목했다.

그는 3공수가 20일 밤 광주역 앞에서 부대단위 사격까지 감행하며 시위대를 진압하고도 뚜렷한 이유없이 전남대로 철수했던 사건 또한 20사단과 관련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또 기차를 타고 광주로 출동한 20사단 61연대의 1차 집결지 확보를 위해 3공수가 광주역 주변 시위를 진압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다수 시민이 목격한 21일 헬기사격에는 20사단 병력 수송을 위해 파견된 UH-1H 기동헬기보다는 항공정찰과 무장지원 임무를 수행하는 500MD 소형공격헬기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그는 광주역과 도청 앞 발포, 헬기사격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이 우발적이거나 자위권 발동 차원이 아니라 20사단 투입을 위한 수단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광주=한승하 기자 hsh62@segye.com

관련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