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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를 헤매는 쿠르디의 친구들] (上) 매일 스러져가는 난민들..지금 지중해는 죽음의 바다가 됐습니다

입력 2017.05.19. 21:0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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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난민보트에서 구조된 아기가 고사리 같은 손을 말아쥔 채 창백한 얼굴로 두 눈을 감고 있다. 이 아기는 끝내 사망했다. 김연식씨는 독일 출신 동료가 보여준 이 사진을 보고 그 길로 민간 난민구조단체 ‘시와치(Sea-Watch)호’ 항해사로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시와치 제공

다 같이 우는 밤이었습니다. 훌쩍훌쩍 울고, 펑펑 울고, 몰래 울고, 고개 돌려 눈물을 훔쳤습니다. 4월21일은 버거우리만치 바빴습니다. 난민 410명을 구조해 이탈리아 해군 함정까지 태워다 줬습니다. 하루 구조를 정리하는 저녁 자리였습니다. 구조대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날 찍은 사진을 넘겨 보는데, 어쩌다 그 사진에서 멈췄습니다. 다들 말 없이 굳은 몸으로 사진을 봅니다.

■ 지중해 난민 구조현장의 밤

기억합니다. 오전 11시쯤이었죠. 불이 난 조난선이었습니다. 길이 9m쯤 되는 작은 배에 난민 410명이 빽빽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커다란 세월호의 승선 인원이 476명이었는데, 손바닥만 한 배에 410명이라니요. 보는 순간 말문이 막혔습니다. 과장 없이 사람들이 콩나물시루의 콩나물처럼 끼어 앉아 있었습니다. ‘사람’이 말입니다. 저희 ‘시와치(Sea-Watch)호’와 ‘국경없는 의사회’ 등 지중해 민간 난민구조단체 선박 두 척이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양쪽에서 각각 난민을 구조했습니다. 불길이 점점 커져 연기가 번지자 난민들이 술렁입니다.

“괜찮으니 자리에 앉아요. 일단 앉아요.” 구조대원은 난민들을 진정시키려 애씁니다. 적정 승선 인원을 훨씬 넘긴 배는 겨우 균형을 잡고 있습니다. 갑자기 여럿이 움직이거나 물에 뛰어들면 배가 한쪽으로 뒤집힐 겁니다. 연기 속에 앉아 있어야 하는 난민의 공포를 이해하지만 이게 최선입니다. 불 곁에 있는 이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죽거나 다치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현장을 지휘하는 일등 항해사입니다. 다수를 위해 저는 그리 지시합니다. 일단 배가 뒤집히지 않기만을 바라지요. 무섭게 냉정해야 합니다. 혹시 나중에 화상환자가 생기면 저는 마음이 많이 불편할 테지만요.

딸을 먼저 구조해 달라고 아이를 높이 치켜든 아버지의 절박한 눈빛.

머릿속이 복잡해서 서둘러 다가가는데 한 아버지가 여아를 높이 치켜듭니다. 딸을 먼저 구조해달라는 신호입니다. 아기의 눈빛은 슬픕니다. 그보다 아버지의 눈빛은 간절합니다. 내게 중요한 건 다수의 안전인데 여아의 눈빛이, 그보다 아버지의 눈빛이 저를 붙잡습니다. 아마 아버지는 알 겁니다. 딸을 먼저 보냈다가 잘못되면 서로 다른 곳으로 구조돼 헤어질 수도 있다는 걸 말이죠. 그 다급한 때에 생이별을 감수하면서도 아이를 높이 치켜든 건, 딸의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기 때문일 겁니다. 생사의 아수라장에도 부모의 사랑은 살아 있습니다. 깊은 밤, 리비아 연안의 구조선에서 몰래 눈물 흘립니다.

■ 죽음의 바다, 지중해

반쯤 가라앉고 있는 난민보트에 시와치 구조대원이 접근하고 있다.

지중해 난민 구조 현장입니다. 민간 난민구조단체 ‘시와치호’는 밤새 리비아 연안을 수색합니다. 밤 기온 13도, 파도는 잔잔합니다. 멀리 수평선 너머 검은 하늘에 트리폴리, 자위아, 주와라 등 리비아 대도시의 불빛이 비칩니다. 죽음의 바다에도 짧게나마 평화가 찾아옵니다.

리비아는 긴 내전으로 인해 해안경비대의 감시가 허물어졌습니다. 이를 틈타 북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 등에서 난민들이 대거 몰려들고 있습니다. 전쟁을 겪는 시리아, 무정부 상태의 소말리아 난민이 적지 않습니다. 난민들은 위태로운 보트를 타고 유럽으로 갑니다. 가장 가까운 유럽 땅 이탈리아까지는 270해리. 속초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작고 낡은 보트를 타고 가는 셈입니다. 가당치 않습니다. 구멍 난 낙하산에 여럿이 매달려 뛰어내리는 지경이랄까요.

지중해는 죽음의 바다가 됐습니다. 2016년 한 해에만 난민 30만여명이 지중해를 건넜습니다. 국제이주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이 중 5000여명이 익사하거나 실종됐습니다. 자, 통계는 치워둡시다. 난민이 얼마나 발생했는지, 얼마나 숨지고 실종됐는지 뉴스로 들어 이미 압니다. 저는 너무 많이 알기만 합니다.

사망자 수가 5000이든 5만이든 머릿속 숫자에 ‘0’ 하나 더할 뿐, 더 슬퍼하거나 분노하거나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많이 안들, 통계를 낸들 무슨 소용입니까. 밀입국업자에게 난민은 곧 돈이라고 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난민 목숨이 뉴스의 숫자에 불과하다면, 그 숫자가 가슴에 울림을 주지 않는다면 대체 우리는 밀입국업자와 다를 게 뭐랍니까.

전 세계가 난민을 버렸습니다. 유럽연합은 한 해에 15만명이나 구조한 이탈리아 마레 노스트럼(Operation Mare Nostrum) 작전을 2014년 10월 중단했습니다. 2015년에는 모로코 접경지역에 난민을 막는 5m 높이 장벽이 섰습니다. 각국 정부는 구조작전을 접고 해안선을 순찰하는 쪽으로 선회했습니다. 명백한 죽음이 그제와 어제, 오늘 발생했고, 내일과 모레 있을 게 빤하지만 꿈쩍도 안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상황이 지금 이 바다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 해 5000여명이 자연재해가 아닌 인간의 결정 탓에 익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록해야 할까요. 분명한 것은 이탈리아와 영국, 프랑스 등 모든 나라,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이 침묵의 동조자라는 겁니다.

■ 내 마음을 두드리는 사진 한 장

지중해 난민구조선에서 봉사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지난겨울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국제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Greenpeace)’의 환경감시선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독일 출신 동료가 사진을 한 장 보여줬습니다. 제 마음을 두드리는 사진이었습니다.

보트는 달립니다. 어디로 급히 가는 건지 뒤로 뿜는 물살이 거셉니다. 보트에 쪼그려 앉은 남자는 품 안의 아기를 내려다봅니다. 물에 젖은 아기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허공을 향한 얼굴, 살포시 감은 눈, 꼭 말아 쥔 고사리 같은 손. 입술은 힘없이 벌어졌고 발바닥은 창백합니다. 꺼질 듯한 촛불, 그러나 애써 살아보겠다고 안에서 사투하는 게 보입니다. ‘어서 아이를 감싸안아라. 물기를 닦아라. 장갑과 티셔츠를 벗고 네 체온으로 아이를 덥혀라.’ 당장 화면으로 뛰어들어 아기를 뺏어 안고 싶었습니다.

동료는 “이 단체에서 배를 몰 자원봉사자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배를 몰 수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 삯 없이 배를 몰 사람은 드뭅니다. 뭐에 홀린 것처럼 홈페이지에 접속해 지원서를 썼습니다.

■ 세상을 바꾸는 건 언제나 시민이었다

시와치는 중단된 마레 노스트럼 작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2014년 설립되었습니다. 독일 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작은 배를 구입하고 자원봉사자를 모았습니다. 설립 첫 해 6개월간 2000여명, 이듬해인 2015년에 5000여명, 2016년에는 2만여명을 구조하는 데 협력했습니다. 시와치 자원봉사자들은 냉혹한 지중해의 현실을 맨몸으로 마주합니다. 매일같이 조난 보트를 발견하는데, 상당수가 전복 직전의 긴박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구명조끼와 구급약, 담요 등 구호품과 자원봉사자는 부족하기만 합니다. 저는 이 단체에서 일등 항해사로 자원봉사하는 동시에, 오는 6월25일까지 진행되는 다음 스토리펀딩 ‘지중해를 헤매는 쿠르디의 친구들’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인들이 지중해 난민에게 직접 도움을 줄 수 있는 가교를 만들기 위해섭니다.

펀딩을 시작하니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왜 난민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물론 난민이 생기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지요. 전쟁과 가난, 박해, 치안 공백 등 설명하기 복잡합니다. 맞습니다.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정치력은 늘 느리고 말만 많습니다. 세계 정세를 살피자면 수년 안에 그럴싸한 난민 대책이 나올 거라 기대하기 힘듭니다.

세상을 바꾸는 건 늘 자발적인 시민의 참여입니다. 우리 민주주의만 봐도 광장과 거리에 나선 시민이 세운 것 아닙니까. 당장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건 결국 발 빠른 시민입니다. 설립자들과 후원자들, 자원봉사자들이 여기 모인 까닭입니다.

■ 시신들의 바다를 항해할 수 있겠어?

구조된 아기 사진에 잔뜩 달아오른 저는 곧장 컴퓨터를 켰습니다. 쿵쾅쿵쾅 심장이 고동칩니다. 마우스 버튼이 부숴져라 꾹꾹 눌러가며 지원서를 찾았습니다. 이 심정이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의기에 불타올라 지원서를 쓰려는데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 허를 찌릅니다. 말문이 막히고 손가락은 자판을 떠돕니다. “죽음을 목도한 경험이 있나요?” “공황 상태에 빠진 경험이 있나요?” “목말라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에게 정당한 까닭으로 물을 주지 않고 버틸 수 있나요?” “극심한 스트레스를 어떻게 극복하나요?” “난민 시신을 여럿 볼 수 있습니다. 맨손으로 시신을 수습할 수 있나요?”

이게 무슨 말입니까. 죽음, 시신, 공황, 스트레스라니요. 제가 난민 구하는 일을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한 걸까요. 빈 지원서를 앞에 두고 오랫동안 손톱만 물어뜯었습니다. 여차저차 지원서를 보내고 정신을 가다듬으니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거지?’ 싶습니다.

결국 저는 지난 4월12일 인천공항을 떠나 몰타로 떠났습니다. 아침에 눈뜨니 난생처음 보는 외국인들이 옆에서 쿨쿨 자고 있습니다. 구조선이 돌아오면 저와 함께 떠날 다음번 구조팀 대원들입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김연식 그린피스 항해사

▶김연식씨는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Greenpeace)’와 난민구조단체 ‘시와치(Sea-Watch)’의 선박에서 항해합니다. 북극과 아마존, 파타고니아, 솔로몬제도 등 전 세계 이슈 현장에서 먹고 자고 숨 쉽니다. 인천일보에서 3년간 기자로 일했으며, <스물아홉 용기가 필요한 나이>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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