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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안재성의 金錢史] 은행은 사기꾼일까?

안재성 입력 2017.05.19. 17:39 수정 2017.05.19. 17:4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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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경제의 핵심 역할..권력 등에 업고 각종 사기 자행
지속적인 금융 개혁 통해 현대적인 은행 시스템 정립
은행은 국가경제에서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하기에 정부로부터 여러 특혜를 받고 있다. 이 점을 악용해 사기와 비리를 일삼는 은행가들도 흔했다. 때문에 은행가의 탐욕을 막기 위해 여러 규제가 생겨나 오늘날의 시스템이 정립됐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천민자본주의, 황금만능주의 등의 용어가 유행할 정도로 돈을 숭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정확히는 돈이라 불리는 종이쪽지를 숭배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돈’과 ‘경제’란 단어에 목을 매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 한낱 종이쪽지에 지배당하고, 그 종이쪽지에 사회 전체가 얽매여 신음하는 세상에 살게 되었을까? 세계파이낸스는 [안재성의 金錢史] 시리즈를 통해 돈과 금융의 역사에 관해 짚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은행을 향해 ‘사기꾼’이니 ‘도둑놈’이니 하는 비판이 종종 가해지곤 한다. 이는 단지 ‘편하게 앉아서 찾아오는 소비자에게 대출을 해주고 이자를 받아먹는 듯한’ 겉모습에 대한 비판만이 아니다.

실제로 은행의 예대마진 시스템은 사실상 사기에 가깝다. “우리 서로 필요할 때 돈을 빌려주자. 단 너에게 적용하는 이자율은 나보다 조금 높게 하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느껴질까? 아마 당장 “사기꾼”이라는 욕이 튀어나올 것이다.

그런데 은행은 이 방식이 사업의 근간이다. 은행의 주력 사업은 예금을 받아 그 돈으로 대출을 해주는 것이다. 이 때 예금 이자율보다 대출 이자율이 높게 책정되는데 이 차액을 예대마진이라고 한다. 예대마진은 은행의 핵심 수익원이다.

여기서 교활한 부분은 실제로는 은행이 돈을 빌리는 것이면서 ‘예금’이라는 가면을 씌워놓은 것이다. 예금은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이자를 붙여 돌려주기에 빚과 성질이 똑같다. 때문에 회계장부에서는 은행이 수집한 예금을 ‘예수부채’라고 표현한다.  

은행도 일반 기업처럼 경영이 악화될 경우 채무초과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이 때 ‘채무’의 개념에 은행채뿐 아니라 예금도 포함된다. 은행이 보유한 자산으로 예금의 원리금을 상환할 수 없다면 채무초과로 분류된다.

아이러니컬한 점은 이렇게 사기나 다름없는 은행 시스템이 과거에 비하면 크게 진일보하고 소비자들에게 유리하게 변화된 것이라는 점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은행가가 현대의 은행을 본다면 “돈을 맡아 보관해주는 은행이 보관료를 받아야지, 거꾸로 예금자에게 이자를 지불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격분할 것이다.

근대의 은행가는 “이렇게 규제가 심해서는 도저히 은행을 경영할 수 없다. 은행도 먹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할 것이다.

지금부터 은행의 탄생과 발전사에 대해 알아보자.

◇보관료로 수입 올리던 은행, 대출에 눈 뜨다 

최초의 은행은 르네상스 문명이 막 태동하던 13세기 즈음 생겨났다. 처음에 은행의 주된 업무는 상인들의 돈, 즉 금화를 맡아 보관해주는 금 보관소이자 여러 나라의 화폐를 바꿔주는 환전상이었다.

은행을 뜻하는 영어 ‘BANK’의 어원은 이탈리아어 ‘방꼬’인데 이는 탁자를 뜻한다. 이 당시 은행가들이 주로 길가에 탁자를 놓고 일하던 광경에서 비롯됐다.

은행은 금화를 보관한 뒤 요즘의 통장에 해당하는 증명서를 발급해줬다. 그리고 금화를 맡아 잘 보관해주는 대가로 보관료를 받았다. 당시 은행가들은 “금화는 도둑과 강도가 노리기 제일 쉬운 목표이니 엄중하게 경비해서 지켜야 한다”며 “그 비용을 수수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이처럼 최초의 은행에서 주 수입원은 예금에 대한 보관료이지, 예대마진이 아니었다. 현대적인 개념의 은행과는 거리가 먼, 사실상 창고업자였다. 참고로 스위스의 여러 은행은 지금도 보관료를 받고 있다.

근대식 은행의 기초를 닦은 것은 피렌체의 메디치 가였다. 메디치 가는 피렌체뿐 아니라 유럽 곳곳에 은행 지점을 세워 고객들과 거래했으며 금융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이들의 주 수입원 역시 금화 보관료와 환전 수수료였다.

그런데 르네상스 시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면서 은행가들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돈을 맡긴 고객들이 잘 찾아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스웨덴의 중앙은행인 리크스방크는 세계 최초로 부분 지급준비금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은행이 고객이 맡긴 돈 중 일부만 금고에 넣어둔 채 나머지는 대출이나 투자 등으로 돌려도 된다는 뜻이다.

즉, 지급준비율을 5%로 설정할 경우 1억원의 예금을 수취해도 500만원만 금고에 넣어두거나 중앙은행에 보관하면 된다. 나머지 9500만원은 전부 대출해줄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지급준비율은 수시입출식예금 7%, 정기예금 2%다. 수시입출식예금은 고객이 언제든 인출할 수 있는 상품인데도 지급준비율이 겨우 7%다.

우리나라만 은행에 특별히 유리한 것이 아니라 전세계가 비슷하다. 때문에 소비자들이 한꺼번에 은행으로 몰려가 예금을 인출하려 하면 은행은 순식간에 파산 위기로 몰린다. 이를 ‘뱅크런’이라고 한다.

다만 평시에는 7%라는 너무나 낮아 보이는 지급준비율로도 은행 업무가 순탄하게 돌아간다. 이는 그만큼 고객들이 한 번 맡긴 돈을 잘 찾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 및 근대의 은행 주요 고객은 상인이었는데 이들 역시 보관 중인 금화를 그리 자주 인출하지는 않았다.

여기서 은행가는 고객의 예금을 대출로 돌리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특히 당시는 연 20~30% 정도는 양심적인 대부업자라고 불릴 만큼 고금리 사회였다. 예금을 더 많이 끌어들일수록 더 많이 대출해줄 수 있다. 대출 이자가 보관료보다 훨씬 더 쏠쏠하다.

이 부분에 착안한 은행가들은 경쟁적으로 예금을 수취하기 시작했다. 보관료가 점점 내려가더니 제로로 변했다. 급기야 예금에 보관료를 받는 게 아니라 거꾸로 이자를 지불하겠다는 은행까지 등장했다. 은행의 주 수입원이 보관료에서 예대마진으로 이동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발생한다. 위에 서술했듯이 당시 은행업의 본질은 창고업이었다. 창고업자가 고객이 맡긴 돈을 함부로 다른 이에게 빌려줘도 되는 걸까?

◇경제의 핵심 역할 내세워 수많은 특혜 누린 은행  

여기에 대답은 당연히 ‘아니오’다. 그런데 정치가가 이를 허용해줬다. 은행이 이런 특혜를 누릴 수 있게 된 배경은 그 정도로 은행의 역할이 중대해서였다.

경제를 기계에 비유하면 금융은 기계가 잘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윤활유에 해당한다. 그 금융의 시초이자 중심이 은행이다. 오죽하면 ‘1금융’이라 칭하겠는가. 그만큼 은행은 중요한 기관이었다. 

세계 경제의 역사는 은행의 탄생 전과 탄생 후로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은행은 경제 발전에 어마어마한 공헌을 했다.

피렌체의 은행에 금화를 맡긴 뒤 유럽 곳곳의 지점에서 언제든 돈을 찾아쓸 수 있다. 베네치아의 은행에 예금하면 당시 베네치아가 진출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나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지점에서 금화를 인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는 실로 획기적인 발전이었다. 더 이상 상인들은 수북한 금화를 끌어안은 채 강도나 해적을 두려워하면서 여행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은행이 발급해준 증명서 한 장만 달랑 들고 가면 된다. 덕분에 은행이 탄생한 뒤 상업이 눈부시게 발전한다.

은행의 주 수입원이 보관료에서 예대마진으로 이동하자 한 가지 더 긍정적인 역할이 생겨났다. ‘장롱 예금’을 현실의 경제로 끌어낸 것이다.

오늘날 대기업들이 수백조의 사내유보금을 쌓아둔 채 투자하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돈은 대출, 투자, 소비 등으로 끊임없이 순환해야지, 한 곳에 고이면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내유보금도 그럴진대 아예 은행이 아닌 집안에 보관하는 ‘장롱 예금’은 더 나쁘다. 로마 제국 후기의 경제 악화에는 ‘장롱 예금’도 단단히 한몫했다.

그런데 은행이 ‘장롱 예금’을 현실로 끌어내준 것이다. 부자들은 늘 돈이 남는데 이 돈을 집안 금고에 넣어두는 것보다 은행에 예금하고 이자를 받는 것이 더 이득이다.

따라서 이자 지급 후 은행 예금이 급증하기 시작했으며 그만큼 대출도 늘어났다. 돈이 돌면서 상업이 더 활성화되고 국가경제가 발전했다.

정부가 자연히 은행 편을 들 수밖에 없게 된 현상이다. 또 당시 자본가는 곧 은행가를 뜻할 만큼 은행가가 대자본가란 이유도 있었다. 돈이 많을수록 정치 후원을 통해 정치가와 가까워지지 마련이다.

여기서 은행이 정직하게 사업했다면 좋았으련만 은행가의 탐욕은 그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정치권력의 비호를 등에 업게 되자 온갖 사기행위를 저질렀다.

예대마진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하거나 특수관계인에게 저금리로 대출해주는 정도는 흔한 일이었다.

특히 악질적인 대형 비리는 이익에만 몰입해 자신의 능력을 초과하는 대출을 실행하거나 고객의 예금을 엉뚱한 곳에 투자해서 날리는 행위였다.  

요한 팔름스트루흐가 설립한 스톡홀름스 방코는 수취한 예금 이상으로 대출을 실행하면서 예금자가 인출을 요구하면 금화 대신 약속어음을 발행해줬다. 어느날 어음 액면가만큼의 금화가 은행에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스톡홀름스 방코는 파산하고 팔름스트루흐는 구속됐다.

프랑스의 대형 은행 레카미에 은행은 ‘나폴레옹 전쟁’ 당시 고이율에만 정신이 팔려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스페인 채권에 고객의 예금을 대규모로 투자했다. 스페인 채권의 담보인 멕시코에서 스페인으로 실어올 예정인 금괴와 은괴였는데 전부 프랑스 및 스페인과 전쟁 중이던 영국 해군에게 걸려 몰수당했다. 물론 레카미에 은행도 파산했다.

근대 유럽 각국의 정부가 재정난 돌파의 카드로 지폐 발행을 택하자 은행이 이 업무를 맡았다. 그런데 여기서도 정부 관료와 협잡해 지불 능력을 넘어서는 수량의 지폐를 마구잡이로 발행하는 경우가 흔했다. 그럴 때마다 은행이 대거 쓰러지고 국가 전체가 ‘금융 공황’에 빠지곤 했다.

지난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역시 결국 은행가의 지나친 탐욕이 문제였다. 이처럼 은행은 자신의 탐욕으로 일을 그르치고도 파산 위기에 몰리면 뻔뻔하게 공적자금을 요구하곤 한다.

그래도 은행의 역할이 워낙 중대하기에 정부는 계속 은행을 살려줬다. 때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돼서 파산시키더라도 곧 다른 은행을 만들었다. 대신 은행 인허가 제도 확립, 금융감독 강화, 은행 지배구조 개선, 최고경영자(CEO)의 권한 축소, 대주주의 특수관계인에 대한 대출 금지, 리스크관리 강화 요구 등 수많은 규제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은행가의 탐욕이 정부의 견제를 받으면서 현대적인 은행 시스템이 정립된다. 여전히 문제점이 많지만 과거보다는 크게 진일보한 시스템이다. 

다소 삐뚤어진 시선으로 보자면 현대의 은행 시스템은 “예대마진 등 사기에 가까운 방식으로 이익을 올리는 건 봐주겠다. 다만 적당히 해라”고 정부가 눈감아주는 제도라 할 수 있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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