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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 엎드린 검찰.."반발 '사발통문' 1건도 없다"

태원준 기자 입력 2017.05.19. 16:22 수정 2017.05.2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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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납작 엎드렸다. 청와대의 개혁 드라이브에 '반발과 저항'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14년 전 노무현정부 출범 당시 강금실 법무장관을 앞세운 검찰개혁 시도에 검찰청별, 연수원 기수별, 직급별로 '사발통문'을 돌려가며 조직적 반발에 나섰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19일 "검찰이 아주 조용하다. 집단적인 반발 움직임이 있을 수 있어서 우리도 주시하고 있는데, 아직 사발통문 같은 것도 없는 듯하다"며 "2003년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 2003년엔 그토록 반발했던 검찰이…

노무현 대통령 취임 보름 만인 2003년 3월 10일자 국민일보 지면에는 '진화 안되는 檢亂'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강금실 법무장관의 파격적인 검찰 인사안에 조직적인 저항이 터져 나와 '검란(檢亂)'이란 표현이 동원됐다. 당시 많은 신문이 검찰의 반발을 '난(亂)'에 비유했다.

당시 기사는 이런 내용이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들 간의 대화 이후 김원치 대검 형사부장(사기 13회)이 개혁인사에 대해 강한 불만의 글을 내부 통신망에 올리는 등 검찰 고위간부들을 중심으로 강한 반발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검찰 고위간부들은 “오늘날 검찰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고 국민들로 외면받은 이유는 1차적으로 검찰 스스로에게 있지만 정치권도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 “이 모든 책임을 검찰에 떠넘기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그 무렵 다른 기사에는 이런 대목도 있었다.

<대검과 서울지검은 부장단 회의를 각각 열어 대책을 논의했고, 김각영 검찰총장은 곧바로 정부과천청사로 달려가 강금실 장관에게 심상찮은 검찰 분위기를 전달했다. 대검의 한 고위간부는 “이 같은 반발로 미뤄볼 때 ‘최악의 검란(檢亂)’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검찰 내부의 충격과 동요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 윤석열 발탁에 "충격과 공포"

간부 회의, 평검사 회의, 기수별 회의, 수석검사 회의 등이 잇따라 열리고, 내부 통신망에 성토의 글이 잇따랐던 14년 전과 달리 '조국 민정수석 임명' '돈봉투 만찬 감찰 지시' '서울중앙지검장 윤석열 발탁' 등으로 이어진 문재인정부의 검찰개혁 조치에는 이렇다 할 집단적 반발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반발'로 해석할 수 있는 유일한 모습은 이창재 법무부 차관의 갑작스러운 사의 표명이었다. 김현웅 법무장관 사퇴 이후 장관직을 대행해온 이 차관은 19일 오전 사표를 냈다. 법무장관, 검찰총장(김수남), 서울중앙지검장(이영렬)이 모두 자리에서 물러난 터에 이 차관마저 떠나면 법무부와 검찰 조직은 완벽한 지휘부 공백 상태가 된다. 

하지만 이 소식은 곧바로 발표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인사에 묻혀버렸다. 부장검사급인 그를 검찰조직 '넘버 2'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장에 기용하며 고검장급 보직이던 중앙지검장 자리를 검사장급 보직으로 격하시키자 한 검찰 간부는 “충격과 공포”라고 표현했다.

청와대가 직접 검사 인선을 발표한 것 자체가 전례 없는 일이었다. 검찰개혁의 우선 과제로 법무·검찰의 ‘머리’부터 교체하겠다는 대통령의 강한 뜻을 충분히 읽고도 남을 만한 조치였다. 더구나 고검장급이던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은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사실상 '강등'됐다.

◇ 2003년과 2017년의 검찰개혁, 무엇이 다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에 시도했던 검찰개혁은 '인사권'을 앞세운 거였다. 문 대통령도 인사 카드를 꺼내들었다. '윤석열 승진 기용'은 그 위 선배 검사들에 대한 대대적 물갈이를 예고한 것이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이용해 인적 쇄신에 나섰다는 점에서 2003년과 2017년의 검찰개혁은 같은 맥락을 갖고 있다.

차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인사권 행사에 아주 적합한 '명분'을 미리 확보했다는 점이다. '돈봉투 만찬' 사건을 '관행'으로 넘기지 않고 정면에 꺼내 들었다. 법무부와 검찰 조직 내부의 부적절한 행태가 절묘한 시점에 노출됐고, 청와대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검사들의 잘못된 행태에 상응한 조치를 취한다는 명분이 파격적인 인사로 연결되면서 2003년처럼 조직적 반발과 저항이 꿈틀댈 여지를 주지 않았다.

또 지난해 끊이지 않았던 각종 법조비리와 '우병우 사단' 논란, 국정농단 수사에서 나타난 검찰의 문제점 등 개혁의 명분이 워낙 많이 축적돼온 터라 검찰 내부에서도 '저항의 동력'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돈봉투 만찬 때문에 검찰은 지금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태가 돼버렸다. 정부로선 검찰개혁을 밀어붙일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이 조성된 셈"이라고 말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