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한 번의 산불, 그 고통은 언제까지? ②

조재근 기자 2017. 5. 1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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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취재파일] 한 번의 산불, 그 고통은 언제까지? ①

산불이 나면 단순히 풀과 나무만 불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불탄 그 숲과 계곡에서 살고 있던 수많은 미생물과 곤충과 식물, 버섯, 파충류와 양서류, 조류, 포유류 역시 죽거나 도망가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힘겹게 살아남은 동물들은 불탄 숲을 떠나 낯선 곳에서 또 다른 생존경쟁을 해야 하고, 나무가 불탄 산에는 여름철 장마에 산사태가 생길 위험도 커집니다.
산불로 훼손된 숲
산불로 훼손된 산림 생태계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되기까지는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까요? 국립산림과학원이 지난 1996년과 2000년 강원도에서 일어난 대형 산불 피해지역을 조사한 결과를 참고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1996년 강원도 고성에선 여의도 면적의 13배인 3천 762 헥타를 산림이 불탔고, 2000년엔 강원도 고성과 강릉, 삼척 등 동해안 일대에서 여의도 면적의 82배에 달하는 2만 3천 794헥타르의 울창한 숲이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막대한 주택 피해는 제외하고 말입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이 일대를 지난 2016년까지 꾸준히 모니터링 한 결과 숲 생태계가 산불 이전 수준까지 되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어류가 3년, 수서 무척추동물은 9년, 개미류는 13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또 조류는 19년, 나무는 30년, 야생동물은 35년이 지나야 산불 이전의 수준으로 회복됐습니다. 복원을 위해 가장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토양인데, 무려 100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한 번의 대형 산불은 인간뿐 아니라 자연 생태계에도 어마어마한 재앙인 것입니다.
 
이 번 삼척과 강릉 산불의 원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자연 발화의 조건에 맞지 않고, 주변에 벼락이 떨어진 것도 아니고, 고압선이 끊어지면서 불꽃이 일어난 것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단 하나 인간에 의한 발화입니다. 누군가에 의한 방화든, 단순한 방심에 의한 실화든 최초 불꽃은 인간의 행위에 의해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산림청이 지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의 원인을 분석해봤습니다. 10년간 해마다 평균 290여 건의 산불이 발생했는데 가장 큰 산불 원인은 입산자 실화로 평균 비율로는 34% 정도를 차지했습니다. 이어서 논밭두렁 소각이 21% 정도, 쓰레기 소각이 14%, 담뱃불 실화가 6.7% 등을 차지했습니다. 성묘객 실화나 어린이 불장난까지 포함하면 거의 대부분의 산불이 사람의 실수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조금만 더 조심하고 주의 깊게 관리했다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산불인 겁니다. 지난 5월 6일 삼척과 강릉에서 일어난 산불도 사람에 의한 실화일 가능성이 높고 보면 단 한 번의 부주의로 치러야 하는 희생이 너무도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산림청은 통상 5월 15일 기점으로 산불 조심 기간을 해제하곤 했습니다. 이맘때면 수목이 푸르게 자라 산불 위험성이 거의 없다고 보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번 삼척과 강릉 산불이 지금까지의 이런 일반적인 상식을 깨버렸습니다. 나무에 잎이 나고 풀이 돋아도 바닥에 지난 가을의 낙엽과 마른 풀이 남아있기 때문에 바람을 만나면 작은 불씨가 산불로 번질 수 있는 겁니다. 특히 강원 동해안에는 산불이 번지는 속도가 활엽수보다 상대적으로 빠른 소나무가 많은데, 소나무에 있는 송진에 강한 휘발성 물질이 있어서 강풍을 만날 경우 더욱 빠르게 불길이 번지게 됩니다. 또 숲이 불타면서 발생하는 고온에 상승 기류가 생기고, 불어오는 강풍을 만나 불티가 수백 미터씩 날아가는 비화(飛火)현상도 산불의 확산을 더욱 빠르게 하기도 합니다. 산림청은 그래서 올해는 당초 15일까지였던 산불조심 기간을 경북과 충청, 경기, 강원, 서울, 인천 등 중부지역에서는 31일까지 늦추기로 했고 강원 동해안의 자치단체도 발을 맞춰 산불 근무를 이달 말까지 연장했습니다.
 
산불은 재앙입니다. 단 한 번의 실수 탓으로 돌리기엔 피해와 후유증이 너무 넓고 크고 깊습니다. 고통스럽고 잔인합니다. 그래서 산불 조심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고 어릴 때부터 입이 닳도록 외치는 이유일 것입니다. 

조재근 기자jkch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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