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엄격하게 감시하되.. 망가뜨리는 일은 없을 것"

손진석 기자 2017. 5. 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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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한국 경제 역동성 되살리겠다"]
- 4대그룹 개혁에 집중
"중·하위권 그룹은 규제보다 구조조정으로 경쟁력 높이게"
- 순환출자 해소, 우선순위 아니다
"현대차 빼곤 놀라울만큼 해소.. 시급한 문제 아닌게 됐다"
- 프랜차이즈 갑질 막을 것
"가맹점·대리점·골목상권 문제, 행정력 총동원해 해결하겠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달변가다. 하지만 18일 기자회견에서는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김 후보자는 "원래 제가 말이 좀 많지만 이제는 위치가 달라졌으니 말수를 좀 줄여야겠다"고 했다. 그는 이어 "20년간 시민단체 생활하면서 생각한 것이 많지만 이제 (공정위) 안으로 들어왔으니 직원들과 함께 고민해서 신중하고 지속 가능한 정책을 골라 추진하겠다"고 했다. 대기업 정책을 총괄하는 수장이 됐다는 무게감을 느끼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18일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전날 공정거래위원장에 내정된 그는 하루 만에 기자간담회를 열고 소통을 시작했다. 시민운동가이자 대학교수 출신인 김 후보자는 적극적으로 제스처를 취하며 재벌 개혁 방향을 설명했다. /성형주 기자

◇"재벌을 한국 경제의 소중한 자산으로" 김 후보자가 경제력 집중을 감시하고 제재하는 대상을 4대 그룹에 집중하겠다고 강조한 것은 평소 소신이다. 대기업들의 규모 차이를 무시하고 31개 정부 지정 대기업집단을 일률적인 기준으로 제재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이 자산 규모로 31개 대기업집단의 52.3%에 달할 정도로 대기업 간 양극화가 두드러졌다. 김 후보자는 "중·하위권 그룹에 대해서는 규제를 가하기보다는 구조조정을 해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4대 그룹이라는 범위는 가변적일 수 있다고 했다. 자산 규모 4위 LG(112조3000억원)와 5위 롯데(110조8000억원)는 덩치가 거의 같다. 공정위 관계자는 "롯데가 4대 그룹보다 지배구조가 복잡하고 규모도 4위 LG와 엇비슷하기 때문에 느슨하게 감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6위 포스코(78조2000억원)는 오너가 없어서 총수 일가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제재 대상은 아니기 때문에 4대 그룹에 비해서는 감시 수위가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김 후보자는 "공정위의 존재 목적은 시장의 진정한 경쟁 질서를 확립해 한국 경제의 활력, 다이내믹스(역동성)를 되살리는 것"이라며 "재벌 개혁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재벌로 경제력이 집중되면서 왜곡된 경제 생태계를 바로잡아 중소기업 경쟁력이 향상되고, 이것이 좋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재벌을 망가뜨리거나 해체하자는 것은 절대 아니며, (재벌을) 한국 경제의 소중한 자산으로 발전하도록 도와주는 게 재벌 개혁"이라고도 했다.

◇"기존 순환출자 해소 우선순위 아니다" 기존 순환출자 해소에 대해 김 후보자는 "우선순위가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순환출자란 계열사끼리 서로 출자해서 총수가 적은 지분으로도 그룹 전체를 손에 쥐는 편법적인 지배구조를 말한다. 박근혜 정부가 신규 순환출자는 이미 금지시켰고, 시민단체들은 기존 순환출자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김 후보자는 "놀라울 정도로 순환출자가 많이 해소돼 총수 일가 지배권의 유지와 승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순환출자는 현대차그룹에만 남아 있다"며 "(기존 순환출자 해소가) 시급한 일은 아닌 게 됐다"고 했다. 실제로 2013년만 하더라도 15개 그룹에 모두 9만7658개에 달한 순환출자 고리(한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에 출자한 것)가 작년에는 7개 그룹에 90개로 현저하게 감소했다. 김 후보자의 발언이 전해지자 현대차그룹은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현대차는 순환출자를 해소하면서 정몽구 회장 가족이 경영권도 유지하려면 계열사 지분 인수 등을 위해 모두 6조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속고발제 폐지는 신중 김 후보자는 프랜차이즈 본사가 대리점·가맹점들에 대해 행사하는 '갑질'을 시정하는 데도 역량을 모으겠다고 했다. 그는 "공정위가 행정력을 총동원해야 할 게 대리점, 가맹점, 골목상권 자영업자 문제"라고 했다. 다만 그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후보자는 "대리점이나 골목상권을 둘러싼 이해관계자가 워낙 많기 때문에 의욕만 앞서면 잘못된 정책이 나올 수 있다"며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전속고발제 폐지'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전속고발제는 기업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해 공정위가 고발해야만 검찰이 수사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김 후보자는 "현행대로 하지 않고 분명히 풀기는 풀 것(고발할 수 있는 주체를 확대한다는 뜻)"이라면서도 "민사소송 등 다른 구제 수단과 전속고발제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고발할 수 있는 주체의) 범위를 조율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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