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낭떠러지 비상구' 추락사 .. 남편 잃은 아내의 눈물
법엔 안전 위한 계단 설치 의무 없고
문 잠그면 되레 300만원 과태료
"추락사 이어지는데 .. 법 고쳐야"
“○○아빠, 오늘로 당신이 세상을 떠난 지 보름여가 지났네. 우리가 함께한 28년 동안 당신은 참 다정한 남편이고, 좋은 아빠였어. 그런 당신을 이렇게 허망하게 보내다니….”
강원도 춘천에 사는 이모(54·여)씨는 지난달 30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집에서 술을 한잔하고 친구들과 노래 한 곡 부르겠다며 노래방으로 간 남편 김모(58)씨가 건물 2층에서 추락했고 나흘 만인 지난 3일 오후 숨을 거뒀다. 사인은 ‘뇌간 마비에 의한 심폐 정지’. 당시 노래방에서 화장실을 찾던 남편은 통로 끝에 있는 문을 지나 또 다른 문이 나오자 아무 의심 없이 그 문을 열었고, 3m 정도 아래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씨는 답답한 마음에 관련 법을 찾아봤다. 하지만 낭떠러지 비상구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에 또 한 번 경악했다.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보면 다중이용업소는 화재 발생에 대비해 비상통로에 발코니(가로 75㎝, 세로 150㎝, 높이 100㎝ 이상)나 부속실(가로 75㎝, 세로 150㎝ 이상)을 설치하고, 피난 사다리나 완강기 등 피난 기구를 설치하면 그만이다. 안전을 위한 계단 등을 설치할 의무는 없다. 더욱이 대피 통로인 이 문을 잠그면 오히려 30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돼 있다.
이 같은 구조적 안전불감증 때문에 낭떠러지 비상구 추락 사고는 전국 곳곳에서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 2015년 6월 경기도 안산시의 한 건물 4층에서는 비상구 아래로 20대 남성 두 명이 떨어져 한 명이 숨지고 또 다른 한 명이 크게 다쳤다. 지난해 6월엔 부산시 동구의 한 2층 노래방에서 A씨(22·여)가 방화문을 열었다가 3.8m 아래 1층 바닥으로 떨어져 머리와 팔 등에 골절상을 입었다. A씨는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신 뒤 노래방을 찾았고, 화장실을 찾던 중 사고를 당했다. 이곳 역시 1층과 연결되는 접이식 사다리 외에는 문을 열면 아무것도 없는 낭떠러지였다.
사고가 잇따르자 정부는 지난해 10월 법을 개정해 비상구 문 개방 시 경보음이 울리는 경보장치와 추락 방지를 위한 안전로프를 설치하고 비상구 추락 방지 스티커를 부착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하지만 이 조항은 신설되는 다중이용업소만 의무적으로 적용된다. 김씨가 사고를 당한 노래방의 경우 2013년에 문을 연 업소라 현재로선 권고 대상일 뿐이다.
이씨는 법 기준 강화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국민신문고에 보낼 예정이다. 이씨는 “아직도 남편이 없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다. 항상 빨래를 함께 널어주던 남편이 저녁이면 웃으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다”며 눈물을 훔쳤다.
춘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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