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세월호서 살아나왔다는 이유로 죄인 취급 받은 단원고 교감 '사회적 타살'당해"

김민욱 2017. 5. 18.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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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고(故) 강민규 교감 아내, 문 대통령에 한맺힌 절규
제자 등 20여명 구조하다 지병 때문에 의식 잃고 구조돼
"사고 직후 마녀사냥식 죄인 취급..극단적 선택 내몰려"
합동분향소 영정사진 사라질 정도로 명예 무너져내려
대법원은 순직 인정 안해..청와대 등에 마지막 편지 호소
지난 4월 전남 목포 신항만에서 거치된 세월호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제 남편 고(故) 강민규(2014년 사망 당시 52세) 경기도 안산 단원고 교감은 끔찍한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살아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죄인’ 취급을 받았다. 유족도 지난 3년간 가시방석 위에서 고통스럽게 숨조차 제대로 못 쉬며 지냈다. 살아 있어도 사는 게 아니었다.”남편의 유골함조차 남겨두지 못했다. 심지어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남편의 영정 사진이 몰래 사라지기도 했다. 제자를 비롯해 20여명을 구조한 뒤 지병(고혈압·당뇨) 때문에 정신을 잃지 않았더라면, 절대 세월호에서 남편은 먼저 나왔을 리 없다. 이대로 남편의 지난 삶이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 절망스럽다.” 강 전 교감의 아내 이모(52)씨를 지난 16일 안산시 상록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강 전 교감은 2014년 4월16일 세월로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교원 12명(미수습 2명 포함) 중 인솔 책임자였다.

강 전 교감은 세월호 사고로 숨진 단원고 기간제교사 김초원(당시 26세)·이지혜(당시 31세)씨와 마찬가지로 참사 이후 3년이 지나도록 순직 인정을 받지 못했다. 강 전 교감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유에서, 김초원·이지혜 교사는 기간제교사라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제36회 스승의 날이었던 지난 15일 관련 부처에 기간제 교사의 순직 처리를 진행하라고 지시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고(故) 강민규 단원고 교감 생전모습 . [사진 유족]
기간제 교사 두 명의 순직이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질 경우 ‘사회적 타살’로 몰린 강 전 교감만 유일하게 남게 된다. 아내 이씨는 자녀들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A4용지 두장 분량의 편지를 17일 썼다.

본지는 편지 전문을 입수했다. 이씨는 “하늘에 있을 남편이 ‘난 괜찮으니 그만해라’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가라앉은 남편의 명예를 다시 떠오르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씨와의 일문문답.

Q : 문재인 대통령이 기간제 교사의 순직 인정 절차를 지시했는데. A : “(지난 정부에서) 1000일 넘도록 불가능해보였던 일이 하루 아침에 가능해졌다. 누구보다도 기간제 교사 유족의 아픔을 잘 알기 때문에 저도 기뻤다. 고 김초원 교사는 남편의 대학 후배이기도 하다. 순간 ‘우리 남편은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낱 같은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Q : 문 대통령 앞으로 편지를 썼는데. A :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남편 영정사진이 안 보이더라. 알고 보니 봉지에 쌓여 다른 곳으로 치워졌다. 세월호 희생자 이야기를 담은 ‘4·16 단원고 약전’에서도 남편 이름은 제외됐다. 이대로라면 우리 가족만 ‘단원고 강민규 교감’을 기억하게 될 상황이다. 30년 교사로서 어렵게 쌓은 명예를 되찾아주고 싶어 대통령께 편지를 쓰게 됐다. 곧 전달할 생각이다.”

Q : 순직 인정을 요청한 소송이 지난해 2월 18일 대법원에서 기각됐는데. A : “세월호 참사 3개월 뒤쯤인가 (행정자치부 산하) 순직보상심사위원회에서 남편의 죽음이 자살이었다는 이유로 순직대상에서 제외시킨 일이 있었다.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을 보려하지 않았다. 경기도교원단체총연합회(경기교총)의 도움으로 소송을 진행했는데 결국 모두 패소했다.”
고(故) 강민규 단원고 교사의 순직이 인정되지 않은 대법원 판결문. [자료 유족]

Q : 강 교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A : “남편은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침몰하는 세월호 안에서 남편은 다급하게 단원고에 상황보고를 했고, 직접 학생들을 구조했다. 남편이 쓰러지고 나서야 (해경에 의해) 구조됐다. 정신을 추스릴 새도 없이 목포해경으로 이송돼 장시간에 걸친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강압적인 조사가 이뤄졌다고 한다.”

Q : 강압적인 조사란. A : “세월호 선원이 남편 옆 칸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해경이 조사과정에서 욕설을 했다고 들었다. 남편 유품인 지갑 안에서 해경 직원 명함이 나왔다. 이들로 추정된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에서도 이 내용을 파악한 것 같은데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2014년 고(故) 강민규 단원고 교감장례모습. [사진 중앙포토]

Q : 극단으로 내몰렸다고 보는 이유가 더 있나. A : “주검 확인·수습 등으로 극심한 생존자증후군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종 학생들을 모두 구조하지 못한 답답한 현실에서 스승으로서 엄청난 무력감도 느꼈을 것이다. 남편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전에 끊었던 담배를 다시 태우고 있었다. 눈에 초점도 없었다. 하지만 어떤 치료나 보호조치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마녀사냥식으로 (그에게) 모든 잘못, 책임이 있는 냥 (죄인) 취급 받았다. ‘왜 살아 남았냐’는 가슴을 후벼파는 망발도 들었다. 그런데 (아내인) 나도 남편의 손조차 잡아주지 못했다. 유서에 ‘내게 모든 책임을 지게 해달라. (화장해 유골을 세월호) 침몰 지역에 뿌려 달라.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단원고 제자)과 함께 저승에서도 (내가) 선생을 할까’라고 적었다.”

Q : 유족의 고통이 컸을텐데. A : “사고 당시 큰 딸과 작은 딸이 20대 초반이었다. 막내 아들은 당시 예민한 10대 청소년이었다. 응원해주시는 분도 많았다. 순직 인정을 요구하는 소송을 낼 때 전국의 교사 2만1900여명이 탄원서에 동참해줬다. 하지만 생존자라는 이유만으로 죄인처럼 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집이 안산이다. 도저히 참기 힘든 말도 들었다. 인터넷에는 단순히 자살을 순직으로 왜 인정해주냐는 댓글도 넘쳐났다. 유골을 전남 진도 앞바다 사고해역에 뿌려 남편의 유골함도 없다. 지난 15일 스승의 날에 남편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의 긴박한 순간이 담긴 단원고 상황판. [사진 유족]

Q : 순직 인정이 실정법상 무리한 요구라는 시각도 있다. A : “세월호 참사는 국가적 대재앙이었다. ‘사회적 타살’로 인한 죽음을 임의로 왜곡해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단순히 남편 때문만이 아니다. 앞으로 공무 중에 비슷한 비극을 겪을 수도 있을 사람들도 생각해주면 좋겠다.” 한편 경기교총은 지난 16일 ‘단원고 고 강민규 교감도 순직으로 인정하고, 예우해야’ 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경기교총 최승학 교권·정책 과장은 “겉으로 보기엔 자살이라는 형태로 삶을 마감한 듯 하지만 실상은 수백명에 이르는 제자와 동료교사의 죽음, 그로 인한 유족들의 절규, 사회적 분노와 방치가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분석했다.

안산=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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