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탄핵-정권교체 '숨은 의인' 입열다

김의겸 2017. 5. 16.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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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겸의 우충좌돌
태블릿피시 폭로 도운
건물관리인 노광일씨
'정권 바뀐뒤 보도' 조건
한겨레와 2차례 인터뷰

"손석희 믿었고 방송 파급력 커
JTBC 적극협조..사무실 열어줘"

노사모 초기 회원·한겨레 창간독자
월급 140만원 중 민언련 등에 10만원 후원
출퇴근때 매고다니는 가방엔 '세월호 리본'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늘에 계신 노짱이 내게 기회 준 듯"

[한겨레]

촛불→탄핵→정권교체로 이어지는 격변에는 최순실의 태블릿 피시(PC)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태블릿 피시를 찾아내 보도한 건 <제이티비시>(JTBC) 기자들이었다. 하지만 태블릿 피시가 세상에 나오는 데는 ‘숨은 의인’이 있었다. 그가 없었다면 아무리 유능한 기자들이더라도 태블릿 피시를 입수하지 못했을 거고 보도도 없었다. 그의 이름은 노광일(60). 서울 청담동에 있는 4층짜리 건물의 관리인이다. 대개는 경비원으로 불린다. 한 달 봉급 140만원을 받아 생활하고 아이들 키우는 이름 없는 존재다. 이 건물 4층에 최순실과 고영태가 운영하던 ‘더블루케이’가 입주해있었다. 그리고 그 사무실 책상에 태블릿 피시가 들어있었다.

일찍이 소설가 이병주는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했다. 언론 보도가 쨍하고 햇빛에 드러난 정사(正史)라면, 그의 이야기는 은은하게 달빛에 젖은 야사(野史)일 수 있다. 하지만 그와 태블릿 피시에 얽힌 이야기는,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민초라도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음을 여실히 증명한다. 그래서 이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그를 야사로 묻어둬서는 안 되고, 정사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태블릿 피시를 둘러싸고 번진 온갖 음모론이 얼마나 악의적인 허구인지를 밝히기 위해서라도 그의 증언은 유효하다.

<한겨레>의 김의겸과 방준호 기자는 2016년 11월 초와 2017년 2월 초 두 차례에 걸쳐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으나, 기자들이 “정권이 바뀐 뒤 보도를 내보내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말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근무하시면서 최순실 등을 직접 봤나?

“물론이다. 최순실은 항상 벤츠를 타고 왔다. 그냥 돈 많은 강남 아줌마인줄만 알았다가 보도가 나가면서 알게 됐다. 고영태, 박헌영 등 더블루케이를 드나든 사람은 내 사무실 앞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항상 봐 오던 사람들이다. 정동춘 K스포츠재단 이사장도 제네시스를 타고 몇 번 온 게 기억난다.”

-JTBC 기자가 사무실에 찾아온 게 10월18일이다. 여기 지하 2층의 관리 사무실로 왔나?

“맞다. 그날 아침 어느 기자가 찾아와서 문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자기 신분을 안 밝혔다. 그냥 ‘4층에 있던 분들 이사 가셨냐? 어디로 이사를 갔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그건 왜 묻냐. 나는 모른다. 부동산에 가서 물어봐라’고 말했다. 기자가 ‘어디 부동산이냐?’고 묻길래 ‘나도 모른다. 어디 이 근처일 테니 돌아다니면서 한번 찾아봐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기자가 밖으로 나가더라.

한 1시간쯤 지났나. 다시 그 기자가 찾아왔다. ‘4층 사람들 연락처라도 좀 알려달라’고 하는 거다. 그래서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알려주냐’고 했더니, ‘JTBC 기자’라며 자기 신분증을 보여줬다. 김필준 기자였다. 그래서 내가 ‘그러면 진작 말하지 왜 이제야 말 하느냐, 처음부터 JTBC라고 했으면 내가 협조했을 텐데…’라고 했다.

김필준 기자를 내 사무실로 들여서는 ‘뭘 도와드릴까?’ 했더니 ‘더블루케이가 이사를 가면서 남기고 간 게 없느냐’고 묻더라. 이사 가면서 버리고 간 파일 등 잡동사니들이 좀 있었다. 그래서 내가 혹시 취재 단서라도 될지 모르겠다며 그것들은 보여줬다. 또 더블루케이 사람들의 연락처 차량번호 같은 것도 다 알려줬다.”

더블루케이가 입주해 있던 서울 강남구 청담동 4층짜리 건물

-4층 더블루케이 빈 사무실에는 어떻게 올라가게 됐나?

“그렇게 이것저것 보여주는데 김필준 기자가 ‘혹시 4층 사무실 좀 들어가볼 수 있을까요?’라고 묻더라. 그래서 ‘뭐 없을 텐데...책상 하나 달랑 남아있는데...그래도 올라 가 봅시다’하고 같이 여기 지하 2층 사무실에서 4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문을 열어주고 ‘한번 찾아봐라’고 했더니, 역시 기자는 다르더라. 벽장을 타다닥 열어보고는 아무것도 없으니 고영태가 쓰던 책상 쪽으로 가서 서랍을 열어봤다. 먼저 위 서랍을 열어보니 몇 가지 서류가 있었다. 펜싱 관련 기획서, 배드민턴 사업 구상 같은 것들이 있었다. 김 기자가 그걸 스마트폰으로 찍고 원래 자리에 뒀다. 왼쪽 서랍을 여니 거기에 문제의 태블릿 피시가 나왔다. 오른쪽 서랍을 여니 캐논 카메라가 남겨져 있었다. 태블릿 피시를 열어보려고 했는데 전원이 나가 있고, 충전할 것도 없었다. 김 기자가 ‘가져가도 되겠느냐’고 물어서 ‘물론이다. 필요하다면 가져가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 책상에 태블릿 피시가 있을 줄은 노광일씨도 몰랐던 거다.

“당연하다. 이사 가면서 다 버리고 간 거라, 그런 게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블루케이가 9월3일 이사를 갔다. 여직원이 삼성동 쪽으로 간다고 하더라. 이사를 가면서 세 가지를 놔두고 갔다. 책상, 책받침대, 재활용품거치대. 그래서 여직원에게 문자를 했다. ‘이전시 누락됐네요. 알고 계시나요. 어떻게 할지 알려주심 감사하겠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직원이 ‘안녕하세요 식사는 하셨는지요. 다른 건 버려주셔도 되고요. 원목 책상은 수거하러 갈 테니 그냥 놔두시면 됩니다’라는 답신을 보냈어요. 그래서 원목 책상만 그냥 놔둔 거죠.”

-더블루케이 사무실 문이 열려있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아니다. 9월3일 이사간 직후부터 항상 닫혀있었다. 부동산에서 사람을 데리고 사무실을 보러올 때도 내가 항상 문을 열어줬다. 이 문은 비밀번호를 눌러야 열 수 있고,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문에는 ADT 캡스 보안장치가 있어서 보안카드를 대야 한다. (보안카드를 보여주며) 이거다. 이걸 안 대고 문을 열었다가는 당장 보안업체 직원들이 출동한다. 내가 김필준 기자를 데리고 4층으로 올라가서 내 손으로 비밀번호를 누르고 보안카드를 대서 문을 열어줬다.”

굳게 잠겨 있는 더블루케이 사무실 문. 건물 관리인 노광일씨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열어줬다.

JTBC 김필준 기자는 이후 태블릿 피시를 들고 근처에 있는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에 가서 구식 충전기 연결선을 사서 꽂아보니 파일들이 보여서 방송사 VJ(비디오 저널리스트)와 그 내용을 촬영한 뒤에 저녁 무렵 다시 더블루케이 사무실로 돌아가서 태블릿 피시를 원 위치에 놓아 둔다. 김필준 기자가 암호로 잠겨있는 태블릿 피시를 쉽게 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암호와 최순실 태블릿 피시의 암호가 똑같이 L자 모양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 번에 태블릿피시를 열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암호를 풀지 못했다면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흐름은 또 달라졌을 것이다.

-김필준 기자가 태블릿 피시를 들고 다시 돌아왔을 때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

“나도 궁금해서 ‘뭐 혹시 좋은 정보라도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생각보다 좋은 정보가 많다’고 하더라. 그래서 ‘다행이다. 보도를 잘 좀 해달라’고 했다.”

-18일 저녁에 JTBC와 한겨레 경향이 더블루케이 보도를 내보냈으니, 다음 날인 19일부터는 다른 언론사 기자들이 몰려왔을 텐데.

“그렇다. 조선일보를 비롯해 많은 기자들이 찾아왔다. 와서는 4층 더블루케이 사무실 열쇠가 없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없다. 왜 그런 걸 나한테 묻느냐고 잡아뗐다.”

-JTBC가 태블릿 피시를 가져간 것은 언제인가?

“이틀 뒤인 10월20일 김필준 기자가 다시 와서는 태블릿 피시를 누가 가져가거나 이 안에 있는 자료를 다 폐기할 수도 있으니 자기가 가져가서 보관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러라고 했다. 그날 김 기자가 자신의 핸드폰에 있는 사진들을 보여주며 누군지 아느냐고 물었는데, 그걸 보면서 고영태 박헌영을 확인해 줬다. 최순실이 가족들과 찍은 사진도 있었다. 아마 태블릿 피시에 있던 걸 다운받은 것 같더라.”

문에는 ADT 캡스 보안장치가 있는데 노광일씨가 이것도 보안카드를 대고 문을 열어줬다.

이후 JTBC는 10월24일 저녁 7시 무렵 태블릿 피시를 검찰에 제출한다. 그리고 10여분 뒤 태블릿 피시와 관련된 보도를 대대적으로 내보내기 시작한다.

다시 이야기를 되돌려 보자. 2016년 10월18일은 참 공교로운 날이었다. 최순실이 감춰놓은 더블루케이 사무실에 JTBC뿐만 아니라 경향신문, 한겨레 기자도 같은 날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취재 경로는 완전히 서로 달랐는데도 세 언론사는 며칠 전부터 따로따로 더블루케이를 추적하고 있었다. 이날 밤 세 언론사는 몇 분의 시차를 두고 더블루케이 관련 기사를 대대적으로 내보내기 시작한다.

발단은 <경향신문>이 10월18일 아침에 1면 머리기사로 독일에 있는 비덱스포츠 관련 기사를 실은 것이었다. 한겨레는 10월16일부터 비덱스포츠와 더블루케이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10월18일 <경향신문> 기사를 본 데다, 정현식 전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의 가족으로부터 결정적 제보를 받고 더블루케이 취재에 나섰다. JTBC 취재팀은 이 신문을 보고 독일의 비덱스포츠와 한국의 더블루케이가 사실상 동일한 회사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파악하고 기자를 보냈다. 이보다 앞서 JTBC 취재팀이 밝힌 바에 따르면, JTBC는 10월12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소속인 국민의당 송기석 의원실을 통해 “그랜드코리아레저(GKL) 펜싱팀과 관련해 더블루케이가 이상하다”는 말을 듣고 더블루케이를 알고 있는 상태였다. <경향신문>의 취재경로는 알려지지 않았다.

-10월18일 JTBC 김필준 기자 말고도 경향신문과 한겨레 기자도 이 건물에 왔다.

“그랬다. 온 순서는 JTBC, 경향신문, 한겨레 순서로 기자들이 찾아왔다. 경향신문 기자는 JTBC 기자보다 30분 정도 늦게 왔다. 한겨레 기자는 오후에 왔다.”

-왜 JTBC만 도왔나?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손석희 사장을 믿은 거다. 두 번째는 신문보다는 방송의 파급효과가 더 크다고 생각한 거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나서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온갖 뉴스를 다 봐왔다. 내가 도와줄 기회가 오니 자연스럽게 나선 것이다.”

-검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검찰도 왜 JTBC를 도와줬는지 집중적으로 묻더라. 내가 뒤로 무슨 대가라도 받고 도와준 것 아니냐고 꼬치꼬치 캐묻더라. 아니라고 했다. 내가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협조한 거라고 진술했다. 그랬더니 검찰도 더는 안 묻더라. 나중에 김필준 기자가 ‘식사라도 한번 하자’고 했지만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제가 식사 같은 걸 바라고 도와준 게 아니다. 기자들이 보도만 정확히 해주시면 그걸로 저는 만족합니다 그랬죠.”

-하지만 사무실 문을 열어주고, 남의 태블릿 피시를 가져가도록 한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었는데.

“내가 그래도 방송통신대 행정학과를 나왔다. 그 정도는 안다. 사무실 문을 열어줄 때부터 고민을 했다. 더블루케이하고는 아직 임대차 계약기간이 남아있었다. 2017년 1월13일에야 계약기간이 끝났다. 문을 열어주려면 더블루케이 쪽에 전화로 물어보고 열어줘야 맞다. 그런데 ‘기자가 찾아왔는데 문 좀 열어줘도 될까요?’라고 물으면 누가 허락을 하겠느냐. 난 조그만 단서라도 나와서 취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어줬다. 태블릿 피시도 그런 마음으로 가져가도록 했다.

처음에는 사실 둘러대려고 했다. 내가 없는 사이에 기자가 몰래 보안카드를 가져가고 비밀번호 알아내서 문을 열고 들어간 것이다. 훔쳐간 거다. 이렇게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검찰 수사관들이 이미 내가 김필준 기자하고 같이 4층 사무실로 올라가는 장면의 cctv를 확보하고 있더라. 어쩔 수 없이 검찰청사로 가서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

-더블루케이 쪽에서는 책임 추궁이 없었나?

“더블루케이에 류상영 이사란 분이 있다. 10월24일 저녁 JTBC 보도가 나간 직후에 류상영 이사 한테서 전화가 왔다. ‘문 열어줬느냐’고 묻더라. 그래서 ‘아니, 그런 일 없다’고 부인을 했다. 며칠 뒤 다시 전화가 와서 ‘진짜 안 열어줬냐’고 물어서 다시 부인했다.

12월8일 JTBC가 태블릿 피시 입수 경위를 보도하는 날, 내가 류상영 이사에게 전화해서 사실대로 얘기했다. 내가 문 열어주고 태블릿 피시 가져가도록 했다고. 그랬더니 류 이사가 ‘훔쳐간 걸로 하면 증거능력이 없다. 차라리 끝까지 훔친 걸로 해주지 그랬느냐’고 하더니 ‘이젠 할 수 없죠’고 체념하더라.”

JTBC는 12월8일 “더블루케이에서 태블릿 피시를 입수하는 데 있어 관리인의 역할이 컸다. 신변 보호를 위해 노출을 피해왔는데, 본인이 음성변조만 해주면 증언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며 노광일씨의 증언을 내보냈다.

더블루케이가 이사가고 난 뒤 비어있는 사무실. 태블릿 피시가 나온 고영태의 책상은 여전히 남아있다.

-건물 주인은?

“회사를 그만두려고 했다.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나온 다음날 건물주인 사장님에게 사실대로 얘기했다. 제가 태블릿 피시 가져가는 데 협조했습니다.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임차인과의 법적인 문제도 제가 책임지고 처리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했더니 사장님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큰일 했다.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열심히 근무해라’고 말씀해주시더라. 눈물 나게 고마웠다.”

이쯤 되면 노광일씨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해고를 당하고 법적인 책임을 질 수 있는 상황인데도 그는 진실을 알리는 데 대단히 적극적으로 협조했기 때문이다. 기자 생활을 26~7년 해왔는데, 이런 협조자를 만나 본 적도 없고 그런 경우가 있었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궁금하다. 나이는 어떻게 되고 고향은 어디인가?

“1957년 생이다. 올해가 환갑이다. 고향은 전남 함평이다.”

-한겨레 창간 독자였고, 경향신문 배가 운동을 한 걸 보니, 언론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조아세를 기억하시는가.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시민모임’의 준말로 조선일보 절독운동을 벌이는 단체인데, 내가 초기에 적극적으로 활동한 사람 가운데 하나다. 2003년 2004년에는 지하철역 여기저기를 다니며 조아세 유인물을 뿌렸다. 한겨레 경향신문이 호외를 찍으면 그걸 들고 서울역 고속버스 터미널 같은 데를 돌면서 시민들에게 나눠 주고는 했다. 지금은 그저 몇 군데 후원하는 정도다. 뉴스타파, 민언련, 팩트TV. 국민TV 등등에 한 만 원씩 돈을 내고 있다. 이런 단체에 내는 돈을 다 합치면 한 10만원쯤 된다. 내가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 그걸 모아서 내는 거다. 글을 쓸 재주도 없고, 돈도 없으니 이렇게라도 독립언론을 돕고 싶어서 하는 거다.”

-한 달에 봉급을 얼마나 받는데 10만원씩 내나?

“4대 보험 해주고 한 달에 140만원씩 받는다. 명절이면 조금 더 챙겨주신다.”

-언제부터 언론에 관심이 있었나.

“1971년 7대 대통령 선거 때가 내가 중 2였다. 아버지가 ‘김대중이 되어야 한다’고 얘기를 하시길래 이장 집에 가서 모르는 한자는 옥편을 찾아가면서 신문을 하루 종일 읽었다. 그때는 신문 들어오는 집이 이장 집밖에 없었다. 그러다 중학교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서 신문 배달을 하면서 방송통신고를 다녔다. 그때가 1974년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 때다. 신문을 돌리면서 신문을 열심히 읽었다. 그 뒤 호텔에서 웨이터 생활을 하면서 방송통신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제약회사에 영업사원으로 들어갔다. 55살이 정년인데 그때까지 27년을 다녔다. 진급은 못했다. 내가 윗사람들한테 아부를 잘 못해서.”

건물 관리인 노광일씨의 책상 위에 놓여져 있는 노무현 재단 달력. 펼쳐진 2월 달력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2002년 대통령 취임식 사진이 실려 있다.

그가 출퇴근할 때 매고 다니는 가방에는 노란 리본이 달려있었다. 세월호의 그 노란 리본이다. 또 그의 책상에는 노무현재단 달력도 있었다. 펼쳐진 2월 달력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대통령 취임식 사진이 실려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시는 것 같다.

“노사모 초창기 멤버다. 2002년 대선 때는 참 열심히 뛰었다. 내가 제약회사에서 한 일이 약국의 약사들에게 약을 파는 영업사원이었다. 그런데 그 약사들을 상대로 국민참여경선 신청서를 모으고 후원금을 걷었다. 내가 모은 국민참여경선 신청서가 한 200장 됐다. 그랬더니 회사 전무가 ‘너 그렇게 하면 노무현이 뭐 복지부장관이라도 시켜준다고 하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참 우연이다. 최순실의 사무실이 있는 곳에, 그것도 결정적 증거인 태블릿 피시가 있는 곳에 선생님 같은 분이 근무하고 있었다는 것이.

“나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나한테 일어났을까하고. 아마도 하늘에 계신 우리 노짱님(노무현 대통령)이 이걸 하라고 기회를 주신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글·사진 김의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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