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 1년.."여성들 일상적 불안 여전한 사회"

변해정 입력 2017. 5. 1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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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여성들 불안감 확산
치안대책 잇따라 나왔으나 체감 어렵고 진척 더뎌
사회 안전망 본격 논의할 기회, 혐오 논쟁으로 변질
성평등 공약 文 정부에서 보다 진전된 논의 기대
인권·여성단체, 내일 1주기 각종 추모행사 예정

【서울=뉴시스】권현구 기자 =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에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 피해자 여성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2016.05.22. stoweon@newsis.com

【서울=뉴시스】변해정 기자 = "그동안 뭐가 바뀐 걸까?"

1년 전 사회에 큰 충격을 줬던 이른바 '강남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정부 당국에 의해 여성에 대한 신변 안전 대책이 쏟아졌지만 일상 속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위협과 불안감은 여전하다.

비뚤어진 여성 혐오에 맞서려는 움직임이 성별 대결 양상으로 비화돼 소모적인 논쟁도 계속됐다.

전문가들은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면 보다 촘촘한 사회안전망 구축과 함께 여성에 대한 성(性) 차별적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여성들 '분노의 연대' 촉발…치안 대책 잇따랐지만 효과 의문

서울 서초동 주점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에게 살해 당한 사건이 발생한 지 오는 17일로 1년이 된다.

이 사건이 회자되는 것은 단순히 개인에 대한 이례적일 정도의 추모 열풍 때문만은 아니다.

"여자들이 나를 견제하고 무시한다"는 피해 망상을 가진 남성이 화장실에 숨어 여성이 들어오기를 기다린 후 범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여론의 시선은 당초 '묻지마 범죄'의 잔혹성에서 '여성 혐오(misogyny·여혐)' 문제로 초점이 옮겨갔다. 여혐 논쟁의 시작이었다.

【서울=뉴시스】권현구 기자 = 지난 17일 강남역 부근에서 묻지마 살인을 벌인 김 모(34)씨 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19일 오후 서울 서초경찰서를 나와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2016.05.19. stoweon@newsis.com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여성들 사이에서 퍼졌고, 이 불안은 여성 안전대책의 실태를 점검하는 계기가 됐다.

수사 당국은 우리 사회에서는 다소 낯선 '혐오 범죄(Hate Crime)'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 심리면담 결과를 발표하며 당시 사건의 혐오 범죄 연관성에 선을 그었던 경찰은 경찰대 부설 치안정책연구소를 통해 혐오 범죄의 개념·유형·외국 사례에 관한 연구에 나섰다. 여성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가용 인력을 총동원한 치안 활동도 폈다.

검찰은 여성 대상 범죄에 양형기준 형량 범위 안에서 최고형을 구형하고, 구형량보다 낮은 형이 선고될 경우 적극 항소하기로 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소시오패스'로 판정된 피의자를 기소유예 처분할 때도 무조건 선처가 아닌 치료 조건을 부과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앞다퉈 화장실 개선책을 내놨다. 공중 화장실 입구에 폐쇄회로(CC)TV를 달거나 화장실 내 칸마다 경광등과 비상벨을 설치하는 식이다. 남녀 공용화장실의 분리 설치 의무화도 추진했다.

그러나 예산과 입법이 뒷받침되지 않은 급조된 대책이라 진척은 더디기만 하다. 전체 화장실의 3%에 불과한 정부와 지자체 소유 화장실만 개선될 뿐이다. 민간 건물의 경우 남녀 공용화장실을 분리 설치하도록 할 법적 강제성이 없다.

여성들이 체감하는 치안 만족도도 낮다. 강남역 살인 사건 발생 두 달여만에 제주시청 공중화장실에서 여성 성폭행 시도 사건이 발생하는 등 여성들을 극도의 불안에 빠뜨리는 강력 사건들이 잇따랐다.

중앙대 이병훈 사회학과 교수는 "여혐을 포함한 여성 문제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지만 여성을 바라보는 차별적 시각과 정책에 큰 변화가 없다"며 "여전히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시선에서 여성 이슈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페미니즘 관심 높아져…성별 대결식 논쟁도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여성운동 시민단체 회원들이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나루수산 앞 광장에서 손피켓을 들고, '여성혐오에 저항하는 모두의 1차 공동행동' 집회를 하고 있다. 이들은 집회를 통해 지난 달 17일에 있었던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은 여성혐오로 인해 벌어진 사건이며,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와 여성차별 그리고 정부가 이를 묵인하고 조장하는 것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2016.06.06. taehoonlim@newsis.com

이 사건은 여성이어서 겪는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적 문제로 받아들이면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여혐이냐 아니냐를 두고 여전히 성별 대립전 양상을 빚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안전망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할 기회가 불특정 여성 또는 남성을 향한 혐오 논쟁으로 얼룩져버렸다며 아쉬워 한다.

여혐 범죄의 존재를 인정하고 처벌 수위를 높여 사회적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성평등 공약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에 기대를 걸기도 한다.

장애여성공감 나영정 활동가는 "국가가 가해자를 정신장애인으로 특수화하면서 이 사건에 대해 뿌리 깊은 여혐에서 기인했다는 해석을 막았다"고 비판한 뒤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를 넘어 여험 사회를 평등하게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양대 박찬운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데 방점이 있는 새 정부에서는 성 평등에 관한 보다 진전있는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잊지말고 기억하자" 내일 전국서 시민행동

여성·인권단체는 사건 발생 1주기를 맞아 전국에서 공동 행동에 나선다.

【서울=뉴시스】김현섭 기자 = 11일 강남역 여성혐오범죄 희생자 1주기 추모예배 '살아남아, 다시 붙인다'에서 시민들이 붙인 포스트잇. 2017. 5.11 afero@newsis.com

'5.17강남역을기억하는하루행동'(5.17하루행동)은 17일 정오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다시 포스트잇을 들다'라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연다. 오후 3시 신촌 유플렉스 광장과 오후 5시 홍대 걷고싶은거리(홍대입구역 8번 출구)에서도 추모 행동을 이어간다.

오후 7시에는 신논현역 6번 출구 앞에서 범페미네트워크 주관으로 '우리의 두려움은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는 제목의 추모 문화제를 갖는다. 검정색 옷을 차려 입고 희생자를 추모한 후 강남역 10번 출구까지 600여m를 행진하게 된다.

추모제는 대구와 부산에서도 열린다.

범페미네트워크 안현진 활동가는 "1년간 여성으로서 또는 페미니스트로서 여혐 사회를 바꾸기 위한 활동을 벌였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여전히 여성혐오적이고, 싸우는 여성들에 대한 괴롭힘과 폭력 또한 심각하다"면서 "두렵지만 여혐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hjp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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