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강진 원인 아직도 미궁..원전 괜찮을까?

입력 2017. 5. 16.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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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원자력발전]
노후 원전 및 한수원의 무책임한 태도도 원전 안전성 위협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한국은 현재 세계에서 여섯째로 많은 25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운영 중인 자타공인 ‘원자력 강국’이다. 세계적으로도 원전 기술력을 인정받아 해외로 원전을 수출하기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원전에 대한 불안과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한반도 내 지진 문제가 대두되는 가운데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의 은폐와 비리가 끊이지 않으면서 ‘탈원전’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추세다.


(사진) 지난해 9월12일 경주에서 강진이 발생한 다음 날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지진대응중앙사고수습본부 관계자들이 지진 관련 피해 상황 등을 점검하는 모습./한국경제신문.
 
원자력발전소(원전) 사고 결과는 참혹하기 그지없다. 주변 도시를 사람이 살 수 없는 폐허로 만들어 버린다.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일본의 후쿠시마가 대표적인 예다.

여전히 높은 방사능이 검출되면서 사람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간 해외에서 발생했던 주요 원전 사고의 공통점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갑작스러운 내부 시스템의 고장이나 관리 직원들의 순간적인 실수 또는 지진 등의 자연재해가 원인이 됐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원전 역시 100%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 원전의 안전성을 위협하는 요소는 크게 네 가지로 압축된다. △자연재해 △원전 밀집도 △노후 원전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무책임한 관리·감독 등이 꼽힌다.

현재 국내 원전은 지난해 12월 상업 운전을 시작한 신고리 3호기를 포함해 25기가 가동 중이다. 원전 숫자로는 세계 6위 수준이다.

원전을 건설하는 기술력 측면은 러시아와 프랑스에 이어 세계 3위로 평가받는다. 이를 바탕으로 최근에는 해외로 활발하게 원전을 수출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다만 최근 한반도가 지진에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원전을 바라보는 국민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경주를 덮친 리히터 규모 5.8의 강진 이후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라는 공식이 깨졌다.

과연 한국의 원전은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것일까. 원전업계에 따르면 한국 대부분의 원전들은 주변의 지진 활성 단층을 조사한 뒤 건설됐다.

활성 단층은 최근에 움직였거나 또는 미래에 움직일 확률이 있는 단층으로,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단층을 말한다.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5호기와 6호기도 기존에 확보된 활성 단층 자료를 토대로 건설됐다. 

하지만 문제는 최근 발생한 두 개의 큰 지진이 원전 전문가들조차 강도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고 진원지인 단층을 아직까지 파악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첫째는 동일본 대지진이다.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은 규모 8.0의 지진을 견딜 수 있게 설계됐는데 예상하지 못한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하며 파괴됐다.

◆지진, 원전의 최대 위험 부상

지난해 9월 발생한 경주 지진도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다. 한국에서 지진 관측을 실시하기 시작한 1978년 이후 가장 강력한 리히터 규모 5.8의 지진이 경주를 덮쳤다. 이에 따라 한반도가 더 이상 지진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이진한 고려대 지구환경학과 교수는 “경주 지진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모르는 단층에서 지진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어떤 단층에서 지진이 발생했는지 현재까지도 전혀 모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다만 그는 활성 단층이 길면 길수록 큰 지진이 발생하게 되는데, 한국은 긴 활성 단층이 한 번에 움직이고 있지 않아 큰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전 사고에 대한 불안감이 가시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해 경주 지진 후 여진이 계속되면서 원전이 고장 난 횟수 또한 늘면서 이런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국내 원전 사고 및 고장 건수는 총 23건으로 나타나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로는 무려 4배 가까이 늘었다.

이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후보들이 일제히 ‘탈원전’ 공약을 제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공포가 커진 상황에서 언제까지 원자력발전에 의존해야 하느냐는 민심을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지진으로 인한 원전 위험에 대해 국내 유일의 원전 사업자인 한수원은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는 태도다. “후쿠시마 사건 이후 전체 원전에 대해 스트레스테스트를 진행해 예측하지 못한 재난이 왔을 때 대비가 가능한지 점검했고 강진에도 충분히 견딜 수 있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또 “원전들은 일단 지진 충격이 올 때 자동 정지하고 비상 발전기나 수소 배출 장치 등 이중삼중의 안전장치가 돼 있다”고 강조한다.

한수원에 따르면 한국의 원전은 규모 6.5를 견딜 수 있도록 내진 설계가 적용됐다. 신고리 3, 4호기와 신한울 1, 2호기의 원자로 등 원전 안전장치 관련 주요 계통은 규모 7.0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경주 지진으로 인해 한때 가동 중단했다가 재개한 월성 1호기는 규모 6.5의 지진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지만 규모 7.0 지진까지 견딜 수 있도록 보강됐다.

하지만 ‘탈원전’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 정도로는 원전이 지진의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담보 받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후쿠시마 사태를 눈앞에서 목도한 영향이 크다. 당장 내일이라도 예측 불가능한 규모의 지진이 한반도 그리고 원전 바로 옆에서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설명이다.



김유창 동의대 산업안전공학과 교수는 “후쿠시마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규모 9.0의 지진이 와서 대응에 실패했다”면서 “경주 지역의 지진 단층 조사가 아직 제대로 안된 상황에서 원전이 지진으로부터 안전하다고 하는 것은 섣부르다. 얼마나 큰 지진이 향후 일어날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고 했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원전의 안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설계상으로만 본다면 한수원의 주장처럼 지진에도 원전이 안전하지만 높은 강도의 지진이 왔을 때 실제로 원전에 테스트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최근 원전 철판에 구멍이 난 것으로 알려졌는데 설계대로라면 이 역시 발생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원전 밀집도 세계 최고

원전 밀집도가 높은 것도 안전성을 취약하게 하는 요인이다. 한국은 국토 면적당 원전 단지별 밀집도, 반경 30km 이내 인구수 모두 세계 1위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고리 원전과 월성 원전 반경 30km 안에 거주하는 인구가 현재까지 대략 419만 명으로 추산된다. 후쿠시마 원전 인근의 인구수는 약 17만 명이었는데 이보다 약 25배 많은 수치다.

향후 원전 밀집도는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현재 건설 중인 원전 5기를 포함해 총 11기의 원전이 추가로 만들어지게 된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탈원전을 강조한 만큼 이 같은 원전 건설 계획이 백지화될 가능성도 물론 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원전이 밀집된 것은 크게 위험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원전업계 종사자는 “한 원전과 인접한 원전이 어떻게 연결돼 있느냐가 문제인데, 사실 기술적으로 연결이 안 됐다. 발전소를 식히기 위한 해수를 공유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딱히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원전 밀집 지역에서 사고가 발생할 때 신속한 대피가 불가능해 후쿠시마 사고보다 더 큰 재앙이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는 시뮬레이션 결과로 이미 입증됐다.
최근 환경운동연합과 원자력안전연구소는 방사선 누출과 같은 중대 사고를 발생 30분 후에 통보하는 것을 가정해 대피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살펴봤다.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반경 20km 내에 있는 부산시·울산시·경남 양산시 등 3개 지역의 인구 170만 명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그 결과 고리 원전에서 ‘중대 사고’가 발생할 때 시민 170만 명이 방사선 비상 계획 구역인 반경 20km 밖으로 대피하는 데 22시간, 꼬박 하루가 소요됐다.

대피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차량 정체 때문이다. 특히 시뮬레이션에서는 부산~울산 고속도로로 연결되는 해운대 터널과 부산 만덕터널 입구로 차량이 몰려 정체가 심했다. 원전 사고가 발생하고 시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고속도로가 꽉 막힌 영화 ‘판도라’의 한 장면은 결코 허구가 아니었던 셈이다.

이처럼 원전 밀집도, 원전 주변 인구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인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한수원의 방재 대책, 사고 대책, 대응 훈련 등의 대비책은 매우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 소장은 “국내 원전 방재 대책은 인명 대피에 대한 부분이 전혀 반영돼 있지 않아 대피 시나리오가 전무하다”며 “원자력안전기술원이 방사성물질 확산 시뮬레이션은 했지만 지자체·시민에게 알리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원전 당국이나 정부가 적극적으로 원전 관련 정보를 알려 시민이 빨리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후 원전은 사고 위험도 커

노후 원전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가동한 지 30년이 넘은 원전을 노후 원전이라고 부르는데 모두 7기가 운영 중이다. 고리 1호기가 6월 폐로를 결정하면서 향후 총 6기의 노후 원전이 가동된다.

노후 원전에 대한 시민단체의 주장은 이렇다. “원자로는 큰 고장이 나야만 손상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진행되는 마모를 피할 수 없다. 예컨대 오래된 원자로 내에 페인트가 벗겨지는 것은 별일이 아니지만 벗겨진 페인트가 냉매 펌프로 들어가면 심각한 사고가 날 수 있다.”

노후 원전으로 인한 아찔한 순간은 이미 국내에서 여러 차례 발생했다. 대표적인 게 2012년 고리 1호기의 전원 공급이 중단된 사고다. 원전은 발전을 중단하더라도 원자로에 열이 남아 있다. 따라서 냉각수를 계속 공급해 줘야 한다.


(사진) 시민단체들의 거센 반발 끝에 산업통상자원부는 2015년 6월 고리 1호기 원전의 폐쇄 결정을 내렸고 오는 6월부터 해체에 들어간다./한국경제신문.

당시 사고는 냉각수를 공급하기 위한 외부 전원 공급이 끊기고 이런 경우에 대비한 비상용 발전기조차 가동되지 않아 일어났다. 쓰나미로 전원 공급이 끊기면서 장시간 냉각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과 비슷한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또 다른 노후 원전인 고리 3호기도 불안하다. 최근 점검 결과 격납 건물 내 6mm 두께 철판에서 부식된 곳이 127곳이나 발생했다. 방사능과 압력 등을 견뎌야 하는 철판에서 광범위한 부식이 잇따라 나타나면서 노후 원전 안전에 대한 의구심도 높아지는 모양새다.

앞서 지난해에는 한빛 1·2호기에서도 철판 부식이 나타났고 1988년 준공돼 노후 원전 진입을 앞둔 한울 1호기에서도 부식이 발견됐다.



신규 원전이라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은 “기술적으로는 새로 생긴 원전이 안전하다. 하지만 일본 후쿠시마 사례는 이런 원전이 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며 “신규 노후 할 것 없이 100% 안전한 원전이 없기 때문에 더욱 불안한 것”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원전 사고가 수습 가능하다면 불안하지 않다. 원전 사고는 일단 일어나면 수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등 해외 여러 사례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했다”고 말했다.

◆원전 당국에 대한 불신  

원전을 관리·감독하는 한수원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도 원전에 대한 우려를 부추기는 요소다. 한수원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비리’와 ‘은폐’다.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 단지를 갖고 있는 만큼 무엇보다 원전 안전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한수원은 투명하지 못한 원전 운영과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한수원이 관리해 원전을 더욱 믿을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건은 2012년 드러난 ‘원전 부품 납품 비리’ 사건이다. 내부 직원들이 원전 부품 납품업자와 짜고 품질보증서를 위조하거나 자재 빼돌리기, 낙찰자 내정 등 다양한 수법을 통해 미검증 부품을 납품 받아온 것으로 조사됐다.

안전이 가장 중시되는 원전에서 이를 구성하는 부품의 중요성은 더할 나위 없는데 한수원은 이를 무시한 것이다. 이후 한수원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임직원 청렴 교육을 강화하고 비리 방지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여 지난해 최우수 청렴 공공기관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번 찍힌 ‘비리’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있다.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은폐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고리 원전 1호기 전력 공급 중단 사고 역시 은폐한 정황이 드러나 당시 재임 중이던 김종신 사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최근에도 원전에서 잇따라 철판 부식 사고가 일어났지만 안일하게 대처해 비난을 받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불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수원은 “방사선 누출이 없어 안전하다”며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해명을 내놓았을 뿐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수원은 사건사고 은폐와 정보 비공개 사례가 유독 많은데, 이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더 불안에 떠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처럼 곳곳에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발전 원가가 싸기 때문이다. 현재 발전원별 연료비 단가는 변동은 있지만 ㎾h당 원자력이 5원, 유연탄이 50원, 액화천연가스(LNG)가 80원 수준이다. 신재생에너지는 이보다 더 비싸다. 이에 따라 전체 전력의 약 30%를 원전에 의존하고 있다.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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