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 읽기] 문재인 대통령이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우선 투표율이 예상외로 높지 않았다. 이번 대선이 촛불정국에 의해서 촉발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투표율이 더 높았어야 했다. ‘정치적 효능감’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정치 행위가 정치권 혹은 정부에 의해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을 의미한다. 촛불에 의해 정권이 물러난 것이나 마찬가지니 당연히 정치적 효능감은 높아졌을 터고, 이는 적극적인 정치 참여로 이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이번 투표율은 77.2%로 지난 18대 대선보다 불과 1.4%포인트밖에 높지 않았다.
높은 투표율을 기록할 것이라 예측한 근거는 또 있다. 사전투표다. 사전투표제는 이번에 처음으로 대선에 적용됐다. 그래서 그런지 26%가 넘는 유권자가 사전투표를 했다.
중앙선관위는 총 투표율이 80%를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중앙선관위가 이런 판단을 한 것이 그렇다고 높은 사전투표율 때문만은 아니다. 정부는 이번 대선 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고, 일반적인 보궐선거와 같이 투표 가능 시간을 저녁 8시까지로 정했다. 이 정도의 편의를 제공했고, 거기다가 극대화된 정치적 효능감까지 감안하면 투표율이 80%는 훌쩍 넘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예측은 빗나갔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승리에 상당히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지지층의 외연 확장성이 높은 후보는 투표율이 높을 때 유리하고, 지지층의 외연 확장성이 낮은 대신 지지층의 충성도가 높은 후보는 투표율이 낮을 때 유리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지층의 확장성은 낮지만 충성도 높은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경우에 속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투표율 덕을 봤다.
투표율이 이렇듯 낮은 데는 이른바 이번 대선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샤이’ 현상과도 관련이 있다고 판단한다. 샤이 보수 유권자들은 이른바 ‘촛불 든 보수’라 할 수 있다. 합리적 보수라고도 할 수 있는 이들은, 선거 기간 동안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았다. 이들은 이른바 부동표라는 이름으로, 또는 샤이 보수라 불렸다. 투표율이 높았다면 이들 부동층이 투표에 참여했다 볼 수 있고, 그렇다면 판세가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샤이 보수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투표율이 그리 높게 나오지 않았다.
여기서 재미있는 현상이 발견된다. 샤이 보수의 상당수는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나간 경험이 있는 합리성을 띤 보수다. 이들은 보수라고 해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잘못했으니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받아들이고, 그런 측면에서 정치적 효능감이 높아질 수 있었다. 이런 경우 정치에 대한 관심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미디어를 통해 정치 관련 정보를 습득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이런 정치 정보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하게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론이다.
하지만 이번엔 정치적 효능감이 높아지고 그래서 미디어를 통해 정치 정보를 습득하는 데 열심인 것까지는 맞지만, 이들이 미디어를 통해 얻은 정보가 ‘문재인 대세론’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문재인 대세론은 높아진 정치적 효능감과 이를 바탕으로 한 적극적 정치 참여를 오히려 방해하는 결과를 낳았다. 다시 말해 높아진 정치적 효능감을 바탕으로 활발하게 접한 정치 정보가 오히려 이들의 정치 참여를 막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들은 역설적으로 문재인 대세론을 스스로 입증하는 꼴이 됐다.
또 다른 문재인 대통령의 승리 요인은 보수의 분열이다. 보수적 성향의 유권자가 선택할 수 있는 후보는 홍준표, 안철수 그리고 유승민 후보였는데, 이들 세 명으로 표가 갈려 결국은 문재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특히 안철수, 홍준표 두 후보에게 표가 갈렸다는 사실은 반문재인 정서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들 수 있는 승리 요인은 호남과 호남 출신 유권자들의 전략 투표다. 이 부분은 대선 이후의 정국을 예상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호남에서 문재인 후보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1위를 했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 호남 유권자들의 사표방지 심리가 발동해서 ‘되는 사람 밀어주자’는 방향으로 투표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전략투표다. 두 번째는 호남 지역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국민의당 의원들 조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향후 정국을 전망하는 데 중요하다. 당 조직이 잘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다음번 총선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바닥 민심의 호응을 얻는 데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상황이 이러면 국민의당 의원 입장에선 심각하게 더불어민주당으로의 복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호남 민심이 문재인 후보를 선택한 이상 자신의 지역 기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탈당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지역에 기반을 뒀다가 그 기반이 흔들리는 정당은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연명하기 힘든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바른정당보다 국민의당의 미래가 훨씬 불투명해졌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의당에 가장 먼저 손짓을 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선 119석의 더불어민주당 의석에다 40석의 국민의당 의석을 합하면 국회에서 과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훨씬 원활한 국정 운영을 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국민의당이 와해되면 더불어민주당 정권은 행정부와 국회를 모두 장악하는 셈이 되고, 그럴 경우 굳이 협치를 하거나 통합정부를 만들지 않아도 국정을 이끌 수 있다.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인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가 꼭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언론 등에서는 압승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본인들 스스로가 이렇게 생각하면 안된다는 사실이다.
이번 대선은 투표율 77.2%고, 여기서 대통령 득표율은 41.1%다. 이를 전체 유권자 대비로 환산하면, 전체 유권자의 31.7%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 15대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는 40.3%의 지지로 당선됐는데, 얼핏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보다 높은 지지로 당선된 것 같지만 15대 대선 투표율이 80.7%였던 것을 감안하면, 당시 김대중 후보는 전체 유권자의 32.52%의 지지를 받은 것이다. 13대 노태우 후보는 36.6%의 득표로 당선됐고 당시 투표율이 89.2%였던 점을 감안하면 전체 유권자 대비 32.6%의 지지를 받았다. 14대 김영삼 후보는 전체 유권자의 34.398%의 지지를 받았고, 16대 노무현 후보는 전체 유권자의 34.2%의 지지를 받았다. 17대 이명박 후보는 전체 유권자의 30.68%, 지난 18대 박근혜 후보는 전체 유권자의 39.11%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왜 전체 유권자 대비 지지율을 계산하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민주주의에서 투표를 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고, 동시에 투표를 하지 않는 것도 민주주의에서는 하나의 권리이자 정치적 의견 표출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표를 하지 않을 경우 벌금을 물리는 일부 국가가 개인의 권리 침해라는 비난을 받는 것이다. 또한 바로 이런 이유로 전체 유권자 중 몇 %의 지지를 받았느냐 하는 부분도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이런 계산을 하면,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겸손해야 하는 이유가 도출된다.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국민도 섬기겠다고 천명했다.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런 초심을 잃지 않으면, 비록 전체 유권자의 31.7%의 지지로 출발했지만 퇴임 시에는 전체 유권자들의 70% 이상의 지지를 받으며,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처럼 퇴장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부디 대한민국에서 첫 번째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길 바란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08호 (2017.05.17~05.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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