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文 대통령, 국민 갈증에 응답 잘하지만.. 박수받는 시간은 늘 짧아"

최보식 선임기자 2017. 5. 1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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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地의 선거전략가' 전병민씨]
"親朴이 보수 정당의 대표로 나서면 국민이 어떻게 볼까
이들에게 保守가 인질로 잡혀 있다는 게 정말 비극"
"문재인, 균형 감각 있을 것
홍준표, 이미지 쇄신 필요
안철수, 현실 정치에 안 맞아
유승민, 나무만 보고 숲 못 봐"

"국민이 느끼고 있던 갈증에 문재인 대통령이 응답을 잘하고 있다. 과거 군(軍) 출신인 노태우 대통령이 가방을 직접 들고 참모들과 원탁회의를 했을 때 지금 같은 평가를 받았다. YS도 집권 초에 금융실명제, 하나회 척결 등으로 지지율이 80%대로 올랐다. 그러나 이런 박수와 호응은 늘 짧았다."

내 앞에 앉은 전병민(70)씨는 한때 '음지(陰地)의 선거전략가'로 불렸다.

전병민씨는 "현 정권은 급진 좌파에 이끌려 외교 안보의 함정에 빠지지만 않으면 성공한다"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1987년 '1노(盧) 3김(金)'이 출마한 대선 때 그는 노태우 후보의 비선(祕線) 선거 조직에서 활동했다. 1992년 대선에서는 '동숭동팀'을 운영해 김영삼 당선에 일등 공신이 됐고, YS 정부의 개혁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청와대 정책수석에 임명됐지만, '송진우(宋鎭禹) 선생의 암살에 장인이 연루됐다'는 야당과 언론의 공세로 임명 사흘 만에 물러났다.

그 뒤로 선거전문 여론조사회사를 운영했다. 요즘 유행하는 선거 컨설턴트의 1세대라 할 수 있다. 박근혜 후보의 선거에도 잠깐 관여한 적이 있다. 이제 그는 정치판을 관망하는 입장이다.

"집권 초기에 박수를 받고 지지율이 오르면 권력은 오만해지게 마련이다. YS의 경우 지지율이 치솟자 '돈 있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겠다'는 식으로 거칠게 접근했다가 1995년 지방선거에서 대패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을 보면서 일단 호감을 갖게 됐다. 후보 시절 "10년, 15년 집권 준비를 해야 한다"라고 유세했듯이, 이대로 가면 진보 정권이 계속 집권할 것도 같은데?

"문 대통령이 잘하면 장기 집권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 보수 정당이 워낙 지리멸렬해졌기 때문이다. 사실 정책 면에서 보수·진보는 별 차이가 없어졌다.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지점은 외교 안보다. 이 함정에 빠지면 장기 집권의 발판 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다."

―왜 '함정'이 될 수 있는 건가?

"진보 정권은 자기가 나서면 북한을 쉽게 설득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다. 현실에서 DJ나 노무현의 대북 정책은 실패했다."

―보수 정권의 강경·압박 일변도 대북 정책으로 한반도 상황이 더 위급해진 것도 사실이다. 북한과의 대화·교류·협력은 필요하다고 본다.

"국민 상식에서 판단해야 한다. 대화·교류라는 것도 때가 있다. 급진 좌파에 끌려 서두르다 보면 함정에 빠질 것이다. 그를 안 찍은 유권자가 절반이 넘는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곁에서 성공과 실패를 지켜봤다. 균형 감각이 있을 것으로 본다."

―문재인 정부가 제일 먼저 맞게 될 고비는?

"미·중·일 정상회담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느냐가 첫 고비가 될 것이다. 가령 방미를 해서 트럼프와 불화가 빚어졌을 때 지금의 우호적 여론이 한순간에 돌아설 수 있다. 선거 공약대로 '개성공단 재개'를 하려는 것도 대북 제재에 동참한 국제사회와 충돌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 걱정스러운 대상은 형편없이 무너진 보수 정당인데?

"보수가 내부 수리와 재정비를 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실패할 확률도 높다. 국민 상식에 맞는 개혁을 해야 하는데 어려울 것이다. 친박(親朴) 의원들이 국정 농단을 한 대통령을 '애국자'인 것처럼 옹호하고 나섰을 때 젊은 세대는 얼마나 한심한 정당으로 봤겠나. 이들이 또 자유한국당의 대표가 되겠다고 나서려는 움직임을 국민이 어떻게 볼까. 한국의 보수가 이들에게 인질로 잡혀 있다는 게 정말 비극이다."

―탄핵 정국에서 보수 정당은 회생(回生)의 기회가 없었나?

"세 번의 기회를 놓쳤다. 첫 번째는 국정 농단이 드러났으면 박 대통령을 탈당시켜 '박(朴) 프레임'으로부터 빨리 벗어났어야 했다. 두 번째, 그게 실패했으면 바른정당이 탈당할 때 친박 핵심만 남겨놓고 다 나왔어야 했다. 세 번째, 대선 과정에서 유승민과의 통합에도 실패했다."

―자유한국당에는 스타 정치인이나 기대주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과감하게 '자유한국당판 적폐 세력'을 정리하고 새로운 인재를 수혈할 수 있는 개혁적인 리더가 없다. 그게 이 당의 비극이다."

―현재로는 홍준표가 거의 유일하다. 그는 비상 상황에서 갑자기 투입된 카드였다. 당초 후보도 낼 수 없는 정당의 후보로 24%를 득표한 것은 그의 개인기에 힘입었다고 볼 수 있는데?

"홍준표는 상황의 본질을 볼 줄 알고 맥을 잘 집는 본능적인 정치 감각이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 뛰어들어 선전했다."

―하지만 단기간에 표 결집을 위한 선거 전략이겠지만 지역 감정과 안보 색깔론을 이용했다. 또 보수 대표 주자로서의 품격 시비가 있었다. 이 때문에 보수 텃밭인 서울 강남에서 졌고, 청년층과 여성 유권자에게는 어필하지 못했다.

"선거에서 이미지가 중요하다. 1987년 선거 때 우리 사회에는 군(軍)에 대해 거부감이 팽배했다. 그렇지만 노태우는 '보통 사람의 시대를 열겠다'는 슬로건과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으로 군 출신 이미지를 탈색시켰다."

―홍준표는 자유한국당의 당권 도전 의사를 내비치고 있는데?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우며 보수의 재결집을 시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인이 차기 대선의 생각이 있으면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그에게 5년 뒤 다시 기회가 있다고 보나?

"진보 진영의 대선 주자군은 홍준표보다 훨씬 젊다. 지금보다 더 힘든 상황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자기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나이 든 후보가 경륜 있는 후보로 바뀔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홍준표는 현실정치를 떠나 숙성 기간을 갖는 게 옳다. 워싱턴에 가서 국제 흐름을 배우면서 '뉴 홍준표 플랜'을 구상했으면 한다."

전병민씨는 "현 정권은 급진 좌파에 이끌려 외교 안보의 함정에 빠지지만 않으면 성공한다"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 이번 대선에서 정권 교체는 순리(順理)였다. 하지만 보수 입장에서는 그 역량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 누굴 찍느냐를 놓고 보수의 고민이 있었다. 결국 보수 표가 양분돼 문재인이 압도적 표 차로 이기게 만들었다.

"1987년 '1노 3김' 선거 때 노태우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 자기가 우세하다는 양김(兩金)의 확신이 단일화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홍준표와 안철수도 비슷한 오류에 빠졌다. 패배의 목전에서 두 후보끼리 2위 다툼이 무슨 의미가 있었나."

―보수표는 한때 안철수에 쏠렸는데?

"대선 토론회에서 안철수는 정체성의 혼란을 보여줬다. 우리나라에서는 '중도'란 실체가 없다. 이번 대선에 나타난 '중도'니 '제3지대'니 하는 인사들은 좌나 우에서 튕겨 나온 명망가에 불과했다. 반기문이 사퇴했을 때 안철수가 확실하게 '보수' 스탠스를 취했으면 승기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안철수가 그렇게 우클릭을 했으면 호남표가 떨어져 나갔을 텐데?

"떨어져 나가는 호남표가 있었겠지만, 결국 얻는 표가 더 많았을 것이다. 노련한 선거전략가가 곁에 있었으면 그렇게 충고했을 거다. 안철수가 애매했기에 결국 보수 표가 막판에 다시 흔들려 홍준표에게로 갔다."

―양당 구조의 극단적 대결로 중도 정당의 필요성이 제기돼 국민의당이 탄생한 것이 아닌가?

"총선과 대선은 다르다. 대선은 중간지대 없는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었다. 호남이 기반인 국민의당은 '안철수 뒤에 박지원이 있다'는 말이 나오자 '중도'로 비치지 않았다."

―안철수는 계속 정치를 할 것 같다. 그에게 한 번 더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는가?

"안철수의 패배는 자신의 문제가 가장 컸다. 정치적 사고의 유연성과 대중 설득 능력 등에서 현실 정치와 잘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좀 더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유승민은 대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만만치 않았다. 보수 후보로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6.8%의 득표율로는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가 어렵다. 대선 토론회에서 그가 잘했다고 하지만, 나무만 보지 숲을 보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 게 아닌가 생각한다. 막판에 홍준표와 통합했어야 했다. 그의 입장에서도 보수 세력 안에서의 발언권 확보가 중요하지 않은가."

―'개혁적 보수'라는 가치와 명분도 중요하지 않은가?

"리더에게는 소신보다 유연한 사고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대선은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었지, 가치와 명분의 대결이 아니었지 않나. 쓰러져 가는 보수 앞에서 '썩은 보수' '깨끗한 보수'를 주장하는 게 한가롭게 보였다."

―보수 정당의 인물난(難)으로 결국 유승민이 대안이 될 것이라는 관측은?

"'정치는 생물(生物)'이라고 하니 두고봐야겠지만, 그가 보수의 대표 주자가 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TK 지역에서는 '배신' 이미지를 잊지 않고 있다. 앞으로 상당 기간 진행될 박 전 대통령의 재판 과정도 결코 그에게 유리한 환경이 아닐 것이다."

―옥중(獄中)의 박 전 대통령만이 이런 매듭을 끊어줄 수 있다. 하지만 기대난망이다. 2006년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를 도운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표를 그만두고 후보로 나서려고 했을 때 최병렬 전 대표가 내게 부탁했다. 경선 준비를 위해 당내 유력 인사들과 마포에 사무실을 두고 일을 했다. 3인방 중 한 명인 안봉근을 통해 보고서를 수차례 전달했지만 전혀 반영이 안 됐다. 그해 말 '더 이상 부르지 말라'며 떠났다. 내가 '1 호 탈박(脫朴)'이었던 셈이다. 그 뒤 한나라당 경선에서 MB에게 졌다."

―그걸로 인연이 끝났나?

"경선 패배 뒤 박근혜가 불러 점심을 함께했다. 헤어질 때 '먼저 서울시장 경험을 해보는 게 좋다. 대통령이 된 MB가 하는 것에 대해 매일 평가하는 일기를 써보라'는 등의 보고서를 전했는데 역시 반응이 없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이 쉽지 않을 것인데?

"정책 실현에는 먼저 국회의 벽에 막히는 법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크게 보수와 진보로 재편될 것으로 본다. 국민의당은 민주당으로, 바른정당은 자유한국당으로 통합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선에서 물러난 그의 전망에 너무 무게를 둘 것까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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