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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그런데 정작 주인공인 교사들에겐 이날이 반갑지 않은 날이 된 지 오래다. 20여년 전만 해도 사제의 정이 넘쳤다. 선생님께 감사 편지 쓰기, 꽃 달아드리기, 병중이거나 퇴직한 선생님 찾아 뵙기 등 다양한 사은 행사가 열렸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날은 스승과 제자 모두가 ‘외면하고 싶은 날’이 됐다. 1990년대 후반부터 촌지 수수 등 비리를 우려해 학교마다 앞다퉈 휴업을 해왔다. 교사들도 아예 “오해받기 싫다”며 휴업을 반겼다. 특히 올해는 청탁금지법(김영란 법) 시행 이후 첫 스승의 날이라 학교 현장 풍경은 더욱 썰렁해질 전망이다. 일체의 선물은 물론 종이 카네이션도 안 되고 받을 경우도 학생 대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하니.

교사들의 권위 추락은 우려스럽다. 최근 5년간 교권 침해 사례는 2만3576건으로 연평균 4700건을 넘는다. 폭행과 성희롱 등 교권 침해 사례가 증가하면서 교원치유지원센터에 도움을 청하는 교사들도 늘고 있다. 블로그나 트위터에서 ‘선생님’의 연관 단어를 검색하면 ‘연금’, ‘임용고시’ 다음으로 ‘교권 추락’이 많아진 것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달라진 세태 탓에 졸업한 제자 만나기를 꺼리는 교사도 적지 않다. 시도교육청의 ‘스승 찾기’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은 늘고 있지만 연락처 공개를 원하지 않는 교사들이 있다는 것이다. 사생활 노출을 우려한 데다 ‘불순한’ 의도로 연락하는 제자들도 적지 않아서라고 하니 씁쓸하다.

스승의 날은 공교롭게도 세종대왕 탄신일이다. 세종대왕처럼 훌륭한 미래 동량을 키우자는 취지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마운 은사 가슴에 꽃 한 송이 달아 드리지 못하는 세태는 분명 문제다. 한국교총이 때마침 “(김영란법이) 만연한 부정부패를 끊자는 사회적 합의이지만 학교현장에선 다소 경직돼 있다”며 “최소한의 감사 표시인 꽃 한 송이 정도는 허용해야 한다”고 정부에 건의했다고 한다. 새 정부는 주요 교육정책을 펴는 것 못지않게 무너진 교권을 세우고 사제 간의 정을 되돌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박태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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