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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노무현 대통령 살아있었다면, 내가 끝난 지점이 문재인의 시작이길 바랄 것"

박진호 입력 2017.05.15. 00:02 수정 2017.05.15. 15:0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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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문재인의 '정책브레인' 성경륭 한림대 교수
노무현정부 마지막 청와대 정책실장 지낸 진보 학자
문 대통령 처음 만났을 때 시골 농부, 동네 친구 같아
사적이익보다 공적가치 추구한 것이 두 대통령의 공통점
노 대통령은 감정 흐름에 높낮이, 문 대통령은 높낮이 적어
문 대통령은 '침착한 노무현'같아, 다른 사람 의견 존중해

'선성장 후분배' 정책을 '선분배 후성장'으로 바꿔 나가야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시즌2 정책' 펴야
문재인 대통령(오른쪽 첫 번째)이 노무현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 내외와 백종천 당시 안보실장(왼쪽 두 번째), 성경륭 당시 정책실장(왼쪽 첫 번째)과 청와대 녹지원에서 환담나누는 모습.[중앙일보DB]
지난 11일 오후 강원도 춘천시 소양로3가의 한 카페.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과정에서 '정책브레인' 역할을 해온 성경륭(63) 한림대 사회과학부 교수를 기자가 단독으로 만났다. 성 교수는 노무현정부에서 국가균형발전위원장과 마지막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다. 카페로 들어서자 성 교수는 환한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성 교수가 허리에 두른 벨트였다. 성 교수는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 마크가 새겨진 벨트를 하고 있었다. 성 교수는 “집에 벨트가 이거 하나밖에 없어서…”라며 웃었다.
노무현 문재인 두 대통령의 정책브레인 역할을 한 성경륭 한림대 교수. 박진호 기자
성 교수는 문 대통령의 정책 브레인 그룹인 심천회(心天會)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성 교수는 심천회에 대해서는 "말씀 드리기 적절하지 않다"며 극구 언급을 피했다. 노무현·문재인을 동시에 정책적으로 보좌한 성 교수는 노 대통령이 살아서 문재인 대통령 당선과 취임을 봤다면 무슨 말을 했을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내(노무현)가 끝난 지점(정책)이 당신(문재인)의 시작점이 됐으면 좋겠다." 두 대통령에 대해 성 교수는 "노·대통령은 감정에 높낮이가 있었다면 문 대통령은 높낮이가 없고 차분하다"며 "말하자면 문 대통령은 '차분한 노무현'이라고 볼 수 있다"고 표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문 대통령이 당선될 것이라 예상했나. A : “당연히 예상했다. 대부분이 예상하지 않았나. 당선 이후 '통합의 대통령'이 되고 싶다. 나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도 섬기겠다.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말에서 앞으로 국정운영의 방향과 희망을 봤다.”

Q : 문 대통령 정책브레인 역할을 해왔다. A :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려면 누군가는 고민하고 생각을 모아야 한다. 바람이라는 것을 볼 수는 없지만 바람이 불면 나무가 흔들리고 피부가 그것을 느낄 수 있어서 굳이 바람이 있다고 이야기할 필요가 없듯이 바람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오히려 부담과 불편함을 주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 성경륭 당시 정책실장(오른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중앙일보DB]

Q : 문 대통령은 어떤 사람인가. A : “문 대통령은 아주 침착한 사람이다. 노 대통령 서거(2009년 5월23일) 사실을 알리는 장면을 보면 고도의 자제력, 절대적 수준의 침착함을 볼 수 있다. 평소에 수련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 모습을 보며 나라 전체를 짊어져도 되겠다고 확신했다. 생각이 다른 사람의 주장도 경청해 듣는다. 편을 가르지 않고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찾는 사람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기꺼이 나서고 당장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일도 자청한다. 모두를 품고 갈 사람이다.”

Q : 두 대통령과 인연은 언제 시작됐나. A : “문 대통령은 2002년 말에 부산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문 대통령이 노 대통령 대선 선거캠프 부산시선대위원장이었다. 당시 (문 대통령의) 첫인상은 시골에서 농사짓는 서민 느낌이었다. 복장은 수수했고 수줍어했다. 동네 친구 같았다. 노 대통령은 대선 기간이었던 2002년 6월쯤 알게 됐다. 지지율 15%일 때 독립운동한다는 생각으로 학자들 10여 명이 찾아가 만났다. 당선 이후 인수위 때부터 시작해 2008년 2월 25일 퇴임하고 봉하마을까지 같이 내려갔다."

Q : 두 대통령의 공통점은 A : “두 사람이 모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변호사이지만 사적 이익이 아닌 공적가치를 추구한 데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로선 보배 같은 존재들이다. 어려운 사람을 위한 삶을 살다 보니 사람들이 '(노무현·문재인은)나 대신 이런 일을 해주는구나'라고 생각해서 높은 자리까지 보내주는 것이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왼쪽 세 번째)의 퇴임식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과 성경륭 교수(왼쪽 두 번째). [사진 성경륭 교수]

Q : 두 대통령의 차이점은. A : “노 대통령은 굉장히 다정다감하다. 감정의 흐름에 높낮이가 있다. 열정적일 때도 있고 차분할 때도 있다. 문 대통령은 높낮이가 적다. 어떠한 순간에도 차분하고 침착하다. 노 대통령의 초대 정책실장이었던 경북대 이정우 경제통상학부 명예교수는 두 사람의 차이점에 대해 ‘문재인은 침착한 노무현’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Q : 노 대통령이 살아있었다면 문 대통령 당선증을 보고 뭐라고 말했을 것 같나. A : “내가 끝난 지점(정책)이 당신의 시작점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을 것 같다. 노 대통령은 재임 시절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고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했을 정도로 두 사람은 마음의 동지이자 영혼의 동지였다. 두 사람은 싱크로율이 굉장히 높다.”

Q : 문 대통령이 만들 나라는 어떤 나라이길 기대하나. A :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약자를 포용하는 국가였으면 한다. 현재 대한민국을 강자와 약자로 나눈다고 할 때 약자가 70~80% 된다. 청년들은 취업하기 어렵고, 비정규직은 많다. 그러니 결혼·출산은 꿈도 못꾼다. 사회적 불평등이 극심하다. ‘선성장 후분배’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지옥과 같다. ‘선분배 후성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Q : 고고도미사일(THAAD·사드)체계 배치, 한·미와 한·중 및 남북관계는. A : “앞으로 북한과 대화 협력을 할 것인가, 대결만 할 것인가, 미국하고만 친하게 지낼 것인가, 국익을 위해 중국과도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인가 등 앞으로 수없이 많은 갈등이 일어날 것이다. 출발은 생각의 차이다.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포용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단 포용적 리더십은 기본적으로 정의가 기준이다. 이 사회의 규범과 법, 다수 구성원이 생각하는 옳고 그름의 기준에 따른 정의를 기반으로 한 포용이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 시절 성경륭 당시 정책실장(오른쪽 첫 번째) 등과 담화발표장으로 걸어가는 모습.[중앙일보DB]

Q : 노 대통령 정책 중에서 문 대통령이 꼭 계승해야 할 것이 있다면. A : “지방자치분권 확대와 국가균형발전 등이다. 새 정부도 이 부분은 의지가 확고하다. 노 대통령은 참여민주주의를 발전시키려고 늘 애를 썼다. 민주주의를 선거때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일상적으로 참여하고 제안할 수 있도록 더 발전시켜야 한다.”

Q : 혁신도시를 만든 주역인데 혁신도시들의 현재 상황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A : “현재는 외형만 갖춰진 상태다. 미니 실리콘밸리를 만들어 활발하게 산학협력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참여정부의 목표였다. 지역 특성에 맞는 분야를 매치(연계)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두 정권에서 부동산 투자하듯 방치했다. 새 정부가 ‘혁신도시시즌2’ 정책을 통해 본래의 목적에 맞게 활발한 연구개발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성경륭 교수는=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부산고와 서울대(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사회학으로 박사를 받았다. 한림대 교수로 재직하던 중 2002년 제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으로 참여했다. 노무현정부 출범 초기인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초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혁신도시와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계획을 짜고, 이를 실현하는 데 참여했다. 노무현정부 마지막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뒤 한림대로 복귀했다. 최근엔 더불어민주당 포용국가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춘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