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안재성의 金錢史]돈 앞에서는 동포도, 종교도 없다

안재성 입력 2017.05.1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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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해상상인들, 동포 습격하는 사라센 해적과 교역
교황의 만류에도 귀닫아..목재·철·섬유·노예 등 판매
8세기 이후 사라센 해적이 창궐하면서 전 유럽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특히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탈리아의 피해가 컸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들에게 해적질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인력을 판매한 상인은 이탈리아의 해상상인들이었다.
우리는 천민자본주의, 황금만능주의 등의 용어가 유행할 정도로 돈을 숭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정확히는 돈이라 불리는 종이쪽지를 숭배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돈’과 ‘경제’란 단어에 목을 매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 한낱 종이쪽지에 지배당하고, 그 종이쪽지에 사회 전체가 얽매여 신음하는 세상에 살게 되었을까? 세계파이낸스는 [안재성의 金錢史] 시리즈를 통해 돈과 금융의 역사에 관해 짚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자본에는 국경이 없고 자본가들에게는 애국심도 고결함도 없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이익뿐이다”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세계가 더 가까워지고 수많은 글로벌기업이 존재하는 오늘날에 이 말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글로벌기업들은 오직 이익만을 쫓을 뿐 사회적인 책무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자국 정부에 정당하게 내야 하는 세금마저 어떻게든 피하려고 애를 쓴다. 우리나라의 재벌들은 애교로 보일 만큼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 각 선진국의 기업들은 전문적으로 역외탈세를 시행한다. 케이맨 제도나 벨기에 등이 조세피난처로 주로 활용된다.

아이폰을 만든 애플은 아예 “미국인은 너무 인건비가 높고 부려먹기도 힘들다”며 자국민 고용을 극도로 꺼린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처럼 이익에만 열광하고 사회적 및 도덕적인 책무는 외면하는 자본가들의 속성은 인류가 탄생하면서부터 한결같았다는 점이다. 현대뿐 아니라 프랑스 대혁명 시대에도,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랜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다.

중세 유럽에서는 자국의 동포들을 노략질하는 해적들에게 열심히 배와 무기를 만드는 원재료 및 노예를 제공했던 이탈리아 해상상인들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이슬람 세력의 급격한 확장

이슬람교는 특히 그 세력을 확대하는 방식에서 타 종교와 궤를 달리 한다. 그들은 시작부터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을 외치면서 포교보다 군사력을 앞세워 세력 범위를 넓혀 갔다.

신의 이름으로 타국을 무자비하게 침략한 그 방식은 때마침 아라비아 반도 주위의 두 거대 제국, 사산 조 페르시아와 비잔틴 제국이 서로 싸우느라 지칠 대로 지친 시기와 맞물리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 등 역사적인 명장들의 활약도 대단했다.

이미 마호메트 생전에 아라비아 반도의 3분의 2 가량을 통일한 이슬람 세력은 정통 칼리프 시대부터 무서운 속도로 영토를 확장해 나간다.

서기 633년 사산 조 페르시아를 침공해 왈라자 전투 등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다. 634년에는 비잔틴 제국까지 동시에 습격하는 무모한 짓을 저질렀음에도 연전연승의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635년 시리아의 주요 도시다마스쿠스를 함락시켰으며 636년 야르무크 전투에서 비잔틴군을 결정적으로 궤멸시켰다. 637년 페르시아의 수도 크테시폰을 함락시키고 638년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완전히 점령했다.

641년 페르시아가 멸망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642년에는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북아프리카에 발을 디뎠다. 북아프리카를 모두 휩쓴 그들은 711년 이베리아 반도로 쳐들어갔다. 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영역을 거의 다 점령한 이슬람의 파도는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르텔이 732년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간신히 막아냈다.

마호메트가 사망한 지 불과 100년만에 중동, 북아프리카, 이베리아 반도를 모두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것이었다. 이슬람교가 세계 3대 종교로 올라서게 된 원동력은 ‘신의 가르침’의 훌륭함이나 포교 노력이 아니라 ‘신을 믿지 않는 자’들을 무찌른 칼의 힘이었다.

◇전 유럽을 공포에 떨게 한 사라센 해적

다만 너무 군사력이 강하다보니 부작용도 여럿 발생했다. 이집트를 제외한 북아프리카 지방에 대규모로 생겨난 해적은 대표적인 사례다.

북아프리카는 로마 제국 시절 이집트와 함께 2대 곡창으로 불릴 만큼 비옥한 지방이었다. 비록 서로마 제국 멸망 후 오랜 기간 방치되긴 했지만 다시 재건할 만한 잠재력은 충분했다.

그러나 이슬람교도들은 꾸준히 노력해야 성과를 볼 수 있는 농업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바다를 통해 유럽의 기독교도들을 습격하고 약탈함으로써 재물을 탐하는 사욕과 ‘지하드(성전)’라는 종교 교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길을 택했다.

알제, 튀니스, 비제르타, 트리폴리 등 북아프리카의 항구 곳곳에서 해적선이 출발했다. 그들은 시칠리아 섬, 이탈리아 반도, 프랑스 등 서유럽을 메뚜기떼처럼 습격해 어마어마한 피해를 안겼다.

당시 유럽인들은 이들을 ‘사라센 해적’이라고 불렀다.

단지 바다 위의 배만 해적질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왜구가 그렇듯 사라센 해적들도 육지로 상륙해 항구도시나 해안가 마을을 침략하는 것을 즐겨 했다. 그들은 재물을 약탈하고 집에 불을 지르고 사람을 납치했다. 납치한 자는 노예로 팔아넘겼다.

서기 8세기부터 사라센 해적의 습격 기록은 너무 많아서 세기도 힘들 정도다. 해안가뿐 아니라 내륙 지방도 해적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지금도 이탈리아 해안가 곳곳에는 감시대가 여럿 솟아 있다. 바다 위에서 해적선이 나타나는지 감시하다가 주민들에게 대피하라고 알리기 위한 감시대였다.

또 사람이 살기 힘든, 매우 깊은 산골짜기에 만들어진 마을들도 꽤 많은데 대부분 해적을 피해 달아난 사람들이 살던 곳이다. 이 시기 이탈리아 반도의 해안가에서는 지금처럼 그림같은 집과 골목이 존재하긴 커녕 사람의 흔적 자체를 찾기 힘들 정도였다.

전 유럽인들은 사라센 해적에 대한 공포로 몸을 떨었다. 당시 유럽은 로마 문명의 상실이 아니라 수백년간 지속된 사라센 해적의 약탈만으로도 ‘암흑 시대’라 칭할 만 했다. 

◇사라센 해적과 교역한 이탈리아 해상상인들

해적들은 재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지만 아무래도 지리적으로 가까운 시칠리아 섬과 이탈리아 반도가 주된 노략질 대상이 됐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라센 해적의 팽창을 뒤에서 떠받친 집단이 이탈리아 해상상인들이었다. 나폴리, 아말피, 가에타, 피사, 제노바, 베네치아 등의 해상상인들은 8세기부터 북아프리카를 들락날락하면서 사라센 해적들과 교역했다.

그들이 판매한 상품은 다양했다. 식량과 의류부터 배를 만드는 목재, 돛의 원재료인 면포, 무기나 방어구 등을 만들기 위한 철 등도 팔았다. 심지어 노예까지 거래했다. 사실상 해적 집단 유지에 필요한 거의 모든 물품과 인력까지 이탈리아 해상상인들이 제공했던 것이다.

대가는 사하라 사막 건너편에서 낙타 등에 실려온 황금으로 받았다. 당시 유럽에는 금이 귀했기에 금이 쏟아져 들어온 이탈리아 해양도시들은 순식간에 부유해졌다.

그들과 교역한 해적들이 같은 이탈리아의 동포들을 습격해 죽이고 약탈하고 납치하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자신들만 안전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면 아무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물론 해적들도 좋은 교역 상대이자 만만치 않은 해상 전력을 갖춘 이탈리아 해양도시들은 별로 노리지 않았다.

참다못한 로마 교황이 여러 번 해적과의 교역을 만류하고 파문하겠다는 협박까지 해봤지만 별무소용이었다. 이탈리아 해상상인들은 동포의 고통에 눈을 감았듯 종교의 차이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금을 손에 넣기 위해 기꺼이 이교도와 교역하고 같은 크리스트교도들의 참상과 비명에는 귀를 닫았다. 돈 앞에서는 동포도, 종교도 없다는 좋은 예이리라.

더 흥미로우면서도 절망적인 사실은 이탈리아 해상상인들의 선택이 단지 그들의 부만 증대시킨 것이 아니라 그들의 유럽 사회에서의 지위까지 향상시켰다는 점이다.

당시 유럽에서 드물게 넘쳐흐르는 금을 보유하게 된 이탈리아 해양도시들의 위세는 대단했다. 여러 나라의 왕이 이탈리아의 도시에서 전쟁 자금을 빌려갔으며 어디를 가든 존귀한 대접을 받았다.

교역을 통해 번 돈으로 해군력이 점점 강해지자 그만큼 권위와 영향력도 더 높아졌다.

어느새 교황조차 이탈리아 해상상인들의 이적행위를 포기하게 됐다. 단지 사라센 해적이 너무 강성해질 때만 해적 세력에 공동 대응하자고 애원할 뿐이었다. 이것이 ‘돈의 힘’이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