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쓰러진지 3년..'자충수' 뼈아픈 삼성
아버지 가신들 모두 떠났지만
이재용 부회장 감옥행
강점 '빠른 경영' 그치고
전문경영 체제로 전환도 안해
아버지 색채 본격 지우고
'이 부회장 작품' 만들 시기
구글 등 경쟁자 비해 성과 미미
"지난 몇 개월 아무 것도 못한 결과
몇 년후 나올 것"
[한겨레]
10일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병상에 누운 지 3년이 된 날이다. 병원 밖은 새 대통령 당선으로 떠들썩하지만 삼성서울병원 20층 브이아이피(VIP) 병동은 조용하다. 이전에는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이 자주 병실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올해 2월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뒤 이 회장을 누가 찾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누운 사이 삼성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20여년동안 준비했던 3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경영권 승계 작업은 최근 6개월 만에 위기에 처했다. 수십년을 이어온 삼성그룹 비서실 조직(옛 미래전략실)은 해체됐다. 사장단 회의를 없애는 등 그룹 차원의 경영도 공식적으로는 사라졌다. 이건희 회장이 만든 삼성의 경영구조가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시작은 이를 의도하지 않았다. 2014년 5월 이 회장이 갑자기 쓰러지자 삼성은 본격적인 지배구조 개편에 시동을 걸었다. 그해 6월 삼성에버랜드의 이름을 제일모직으로 바꿨고, 삼성테크윈·삼성토탈과 삼성정밀화학 등 비주력 계열사를 각각 한화와 롯데에 매각했다. 2015년 7월에는 헤지펀드 엘리엇의 반대를 무릅쓰고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을 성사시켰다. 겉으로는 시너지 효과를 내세웠지만, 속내는 이 부회장이 외부 공격에도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단단한 토대를 만드는 것이었다. 1995년 이 회장이 이 부회장에게 증여한 60억원을 가지고 시작한 경영권 승계작업도 막바지로 달려가는 듯 했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태로 이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지주회사 체제 전환 시도는 탈이 났다. 이 부회장은 지난 2월17일 새벽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수감됐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찬성을 얻으려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 433억원 어치의 뇌물거래를 했다고 판단했다. 결국 삼성은 검토하던 지주회사 전환 계획을 4월27일 뒤집었고, 삼성전자 지분이 0.6%에 불과한 이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에 요긴하게 쓰일수 있는 40조원 어치 이상의 자사주도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삼성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미래전략실과 총수 일가의 이해관계는 달랐다. 가신들은 어떻게든 이 부회장에게 지속가능한 경영 체계를 만들어주는 게 자신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었고 그걸 3년(박근혜 정부 때) 안에 하려고 했다. 반면 이 부회장은 시간이 걸려도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는 게 미래를 위해 더 나은 길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이 부회장은 구속됐고, 미래전략실의 최지성 부회장을 비롯한 팀장들은 모두 자리를 떠났다. 이 관계자는 “이 회장의 가신들이 나간 게 3년 동안의 가장 큰 변화”라고 했다.
삼성은 이제 이건희 회장의 색채가 본격적으로 지워지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1분기(연결기준) 매출 50조5500억원, 영업이익 9조9000억원의 실적을 냈다. 영업이익률이 19.6%까지 상승한 것은 반도체와 오엘이디(OLED) 사업에서 좋은 성과를 낸 덕이다. 김영우 에스케이(SK)증권 연구원은 “3D낸드(반도체)와 오엘이디 사업은 이건희 회장이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사업이다. 초기에 적자도 나고 내부적으로 구박받은 사업인데 아버지가 밀어준 사업을 이재용 부회장이 그대로 유지한 게 좋은 실적으로 돌아왔다”고 분석했다.
삼성의 최근 3년은 경영권 승계에 신경 쓰다, 이 부회장이 자신의 작품을 만들 시간을 놓쳐버린 시기다. 경쟁 업체인 애플이나 구글 등이 인공지능·자율주행차 등 새 성장동력을 찾아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는 때였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지주회사 전환 계획도 뒤집고, 자사주를 소각하기로 하는 등 삼성전자는 원칙 없는 경영을 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든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든 사회적인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원칙을 먼저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재용 부회장이 지분율 높여 아버지와 같은 위상을 갖추는 것보다 이사회 의장 등으로 역할을 바꾸는 것이 삼성 등 한국 재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삼성그룹의 성장사를 연구한 <삼성웨이>의 저자 이경묵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삼성이 지난 몇개월 동안 아무것도 못한 것의 결과는 몇년 후 나올 것이다. 이 부회장이 감옥에 있으면서 삼성은 강점이던 소유경영인 중심의 빠른 경영도 못하고 있고, 그렇다고 ‘이재용이 없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는 예전보다 훨씬 더 나쁜 상태다”고 말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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