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쓰러진지 3년..'자충수' 뼈아픈 삼성

이완 2017. 5. 1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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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법 승계 서두르다 탈
아버지 가신들 모두 떠났지만
이재용 부회장 감옥행
강점 '빠른 경영' 그치고
전문경영 체제로 전환도 안해

아버지 색채 본격 지우고
'이 부회장 작품' 만들 시기
구글 등 경쟁자 비해 성과 미미

"지난 몇 개월 아무 것도 못한 결과
몇 년후 나올 것"

[한겨레]

10일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병상에 누운 지 3년이 된 날이다. 병원 밖은 새 대통령 당선으로 떠들썩하지만 삼성서울병원 20층 브이아이피(VIP) 병동은 조용하다. 이전에는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이 자주 병실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올해 2월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뒤 이 회장을 누가 찾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누운 사이 삼성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20여년동안 준비했던 3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경영권 승계 작업은 최근 6개월 만에 위기에 처했다. 수십년을 이어온 삼성그룹 비서실 조직(옛 미래전략실)은 해체됐다. 사장단 회의를 없애는 등 그룹 차원의 경영도 공식적으로는 사라졌다. 이건희 회장이 만든 삼성의 경영구조가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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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이를 의도하지 않았다. 2014년 5월 이 회장이 갑자기 쓰러지자 삼성은 본격적인 지배구조 개편에 시동을 걸었다. 그해 6월 삼성에버랜드의 이름을 제일모직으로 바꿨고, 삼성테크윈·삼성토탈과 삼성정밀화학 등 비주력 계열사를 각각 한화와 롯데에 매각했다. 2015년 7월에는 헤지펀드 엘리엇의 반대를 무릅쓰고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을 성사시켰다. 겉으로는 시너지 효과를 내세웠지만, 속내는 이 부회장이 외부 공격에도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단단한 토대를 만드는 것이었다. 1995년 이 회장이 이 부회장에게 증여한 60억원을 가지고 시작한 경영권 승계작업도 막바지로 달려가는 듯 했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태로 이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지주회사 체제 전환 시도는 탈이 났다. 이 부회장은 지난 2월17일 새벽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수감됐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찬성을 얻으려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 433억원 어치의 뇌물거래를 했다고 판단했다. 결국 삼성은 검토하던 지주회사 전환 계획을 4월27일 뒤집었고, 삼성전자 지분이 0.6%에 불과한 이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에 요긴하게 쓰일수 있는 40조원 어치 이상의 자사주도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삼성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미래전략실과 총수 일가의 이해관계는 달랐다. 가신들은 어떻게든 이 부회장에게 지속가능한 경영 체계를 만들어주는 게 자신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었고 그걸 3년(박근혜 정부 때) 안에 하려고 했다. 반면 이 부회장은 시간이 걸려도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는 게 미래를 위해 더 나은 길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이 부회장은 구속됐고, 미래전략실의 최지성 부회장을 비롯한 팀장들은 모두 자리를 떠났다. 이 관계자는 “이 회장의 가신들이 나간 게 3년 동안의 가장 큰 변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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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이제 이건희 회장의 색채가 본격적으로 지워지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1분기(연결기준) 매출 50조5500억원, 영업이익 9조9000억원의 실적을 냈다. 영업이익률이 19.6%까지 상승한 것은 반도체와 오엘이디(OLED) 사업에서 좋은 성과를 낸 덕이다. 김영우 에스케이(SK)증권 연구원은 “3D낸드(반도체)와 오엘이디 사업은 이건희 회장이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사업이다. 초기에 적자도 나고 내부적으로 구박받은 사업인데 아버지가 밀어준 사업을 이재용 부회장이 그대로 유지한 게 좋은 실적으로 돌아왔다”고 분석했다.

삼성의 최근 3년은 경영권 승계에 신경 쓰다, 이 부회장이 자신의 작품을 만들 시간을 놓쳐버린 시기다. 경쟁 업체인 애플이나 구글 등이 인공지능·자율주행차 등 새 성장동력을 찾아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는 때였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지주회사 전환 계획도 뒤집고, 자사주를 소각하기로 하는 등 삼성전자는 원칙 없는 경영을 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든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든 사회적인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원칙을 먼저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재용 부회장이 지분율 높여 아버지와 같은 위상을 갖추는 것보다 이사회 의장 등으로 역할을 바꾸는 것이 삼성 등 한국 재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삼성그룹의 성장사를 연구한 <삼성웨이>의 저자 이경묵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삼성이 지난 몇개월 동안 아무것도 못한 것의 결과는 몇년 후 나올 것이다. 이 부회장이 감옥에 있으면서 삼성은 강점이던 소유경영인 중심의 빠른 경영도 못하고 있고, 그렇다고 ‘이재용이 없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는 예전보다 훨씬 더 나쁜 상태다”고 말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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