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古천문학서 찾은 새 역사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2017. 5. 1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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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아의 지구 위에서 보는 인류사]

 

어떻게 보면 ‘왜곡’이란 역사 기록의 본질적 속성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어떤 대상이든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것은 20세기 전반 천재적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수식으로 증명한 바 있다. 역사를 뜻하는 한자 ‘史’는 가운데 중(中) 자가 살짝 비뚤어졌는데 붓을 들어 균형을 취하게 하는 모양을 나타내고 있다. 즉 인간은 어차피 사실을 완전히 중립적으로 볼 수는 없는데, 글로 남기면서 현실과의 균형을 잡아주는 게 역사라는 것이다. 20세기의 대표적 역사학자 E.H. 카는 좀 더 직설적으로, “역사는 해석이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다양한 입장에서 본 사실, 그 중에서 한 시대, 한 사회를 풍미하는 콘텐츠가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면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반만년, 즉 5000년이라는 얘기는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거의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다. 예를 하나 더 들자면 우리가 위대한 해양족이었다는 사실은 적어도 지난 몇 백 년 간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또 하나 더 들자면, 현재 인류의 문명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탄생한 걸로 돼 있다. 물론 이 세 가지는 주류의 담론이고, 같은 사안에 대해 다른 견해도 많아서 현재 논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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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내용의 담론이 그 시대에서 주류 의견이 될까? 이 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얘기했지만, 가장 열정적으로, 그리고 명확하게 말한 사람을 하나 꼽으라면 20세기 최고의 천재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프랑스의 철학자/인류학자 미셀 푸코(Michel Foucault)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주장은 간단하다. “지식은 권력이다!” 즉 권력을 가진 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지식이 생산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반만년의 역사’ 한반도?

​지금까지 한반도 역사를 중심으로 한 콘텐츠를 살펴온 우리는 이 주장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한반도의 해양활동 기억이 사라진 것은 통일신라에서 조선까지는 주로 중국의 파워 때문이고, 그 이후로는 주로 일본과 더 근본적으로는 서양 열강들 때문인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해양활동이 거의 과장하려는 기세로 밝혀져 있는 것도 역시 파워 게임의 산물이다. 가야보다 활동 규모가 작으면 작았지 결코 월등히 크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리스가 나중에는 ‘제국’ 칭호까지 받았다는 사실은 이미 봤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제2부에서 좀 더 나올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기후도 온난기에서 한랭기를 거쳐 다시 온난기로 들어가는 사이클을 반복하면서 그 과정에서 인류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끊임없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낸다. 특히 20세기 후반부터, 근대기 동안 형성되어 오던 역사 콘텐츠를 상당 부분 새로 써야 할 일이 자꾸 생기고 있다. 지금까지 몇 번 잠깐 언급하고 지나갔지만, 과거의 상황을 복원해낼 수 있는 과학기술적 연구 방법도 발달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고고학적 증거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의 속도는 너무 빨라서 근대기에 형성된 콘텐츠를 어릴 때부터 교육 받아왔던 우리들로서는 적응하기 힘들 정도다. 그래서 매번, 지금까지의 역사 담론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증거가 나올 때마다 학계는 찬반으로 들끓는다. 현대사회의 최강 교육수단인 미디어는 중심을 잡지 못해 이런 내용을 소개했다 저런 내용을 소개했다 하면서, 뭔가 파격적으로 새로운 내용이 나와 실어줄 때는 “이 콘텐츠는 (언론사의 의견이 아니라) 필자의 의견”이라는 단서를 달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대중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소싯적 교과서에서 배운 게 만고의 진리라고 믿는 노년층으로부터, 온라인으로 접하는, 근거가 부실한 콘텐츠에 열광하는 청소년들까지, 21세기는 정말 다양한 담론들이 평행선을 그리며 혼재하는 세상이다.

 

이 연재는 그 다양한 담론 가운데, 21세기 한민족으로서 살아가는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적 사실이라고 판단되는 콘텐츠 중 일부를 정리하는 걸 목적으로 한다. 이제부터는 구체적으로 어떤 콘텐츠를 다룰까? 일단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운, 견고한 과학적 근거가 있는 주장에서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다음 지도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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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고(古)천문학 전문가 박창범 고등교육원 교수가 그의 2002년 저서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에서 제시한 지도다. 고(古)천문학이란 고문서에 나와 있는 천체에 대한 기록을 분석해서 오랜 옛날의 천체 상태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런 방법으로 역사를 연구하는 것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역사에서 왜곡될 염려가 없는 부분을 연구한다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천문현상이 인간사회의 큰일을 암시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일식이나 월식, 기타 특이한 천문현상이 나타나면 중요한 역사서에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많았다. 따라서 지금까지 전해지는 역사서에도 천문현상에 대한 기록이 꽤 남아 있다. 천문현상에 관해서는 없었던 일을 굳이 조작해서 기록할 이유가 없으며, 나중에 그 사회의 권력자가 바뀐다 하더라도 굳이 그 부분까지 건드려 왜곡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천문학은 의외로 어떤 역사기록의 진위를 가리는 데 중요한 참고자료를 제시하기도 한다.

 

위 지도는 박창범 교수가 고(古)기록에 등장하는 일식에 대한 관측을 분석해서, 그 일식이 관측된 지점이 어디였는지 표시한 것이다. 등고선처럼 그려진 동심원 중 가운데 속한 부분이 가장 관측지로서의 확률이 높은 것이다. 지도를 보면, 아마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동공이 확장될 것이다.

 

현대에는 천문관측소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공기 좋은 산 속이나 사막 가운데 있는 경우가 많다. 오염된 공기를 피해 깨끗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관측된 자료는 인터넷으로 실시간으로 어디든 보낼 수 있으므로, 굳이 사람 많이 사는 곳에 관측소를 둘 필요가 없다. 하지만 옛날에는 대기오염이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천문관측 자료는 그 사회의 지배자가 관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의 왕궁이 있는 도성 가까운 데, 아니면 최소한 정치중심지인 대도시에 있었다. 신라시대 첨성대가 경주에 있듯이.

 

“과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고구려 정치중심지의 위치는 지금은 러시아 영토인, 아무르 강 중상류와 우랄산맥 동쪽 서(西)시베리아 평원, 이 두 군데에 있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상대 신라(통일 신라 이전)의 도성은 양자강과 장강 사이 노른자 땅의 중심부, 백제의 도성은 요동 지방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대 신라의 도성은 한반도 남부에 있었으며 일본 열도 전체가 신라의 영토였든지, 아니면 적어도 동일국가 수준으로 활발히 교류하는 지역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니까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이전, 삼국시대 혹은 사국시대 우리 조상의 강역은 한반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동아시아 및 북아시아 전역이었다는 것이다. 신라가 당나라 힘을 빌려 삼국을 통일한 후 영토가 대폭 축소되었다 해도 한반도 전체와 만주평야, 극동 러시아까지 커버하는 정도의 영토 규모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정말 놀라운 일이다.

 

박창범 박사는 이렇게 마무리한다. “이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모른다. 그것을 밝히는 일은 아마 인문사회과학자의 과제일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과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이 엄연히 과학적으로 타당성 있는 방법으로 밝혀진지 15년이 지난 지금, 아직까지 ‘인문사회과학자’, 혹은 ‘역사학 전문가’들은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sisa@sisajournal.com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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