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역사학자 꿈꾸던 피란민의 아들..유신반대 시위하다 구속

김기철,오수현 2017. 5. 10.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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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노무현 서거후 정치의 길..재수끝에 운명처럼 靑 입성

■ 출생부터 사법시험 합격까지…정치권 입문부터 대통령 당선까지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은 2012년 총선에 출마하기 전까지 한번도 '정치인'이나 '대통령'을 목표로 살지 않았다. 2003년 2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의 부름을 받고 속옷과 양말이 든 비닐 봉투 하나 달랑 손에 들고 청와대로 들어갔고 5년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기회가 있었지만 정치인의 길은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의 불행한 죽음은 그를 역사의 무대로 호출했다. 돌이켜 보면, 문재인은 한번도 '운명'을 주도적으로 선택하지 않았지만 주어진 '운명' 앞에서는 한번도 도피하지 않았다. 문 당선인은 자신의 삶에 대해 "저는 일관되게 늘 정면으로 맞서는, 그리고 피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고 자평했다.

흥남부두 피란민의 아들

문 당선인은 1953년 1월 24일 경상남도 거제군 명진리 허름한 시골 농가에서 태어났다. 거제는 전쟁을 피해 북한에서 내려온 그의 부모가 정착한 곳이었다.

문 당선인의 부모는 1950년 12월 23일 흥남부두에서 출발하는 '메러디스 빅토리아호'에 몸을 싣고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영화 '국제시장'에 나온 바로 그 배다.

2016년 12월 19일 문 당선인은 서울역 앞 연세빌딩에서 열린 현봉학 박사 동상 제막식에 참석했다. 한국전쟁 당시 미 10군단 앨먼드 장군의 고문이었던 현 박사는 '흥남철수작전' 때 메러디스 빅토리아호에 있던 무기를 버리고 피란민을 태우도록 설득했다. 제막식 축사에서 문 당선인은 "현 박사님의 위대한 용기가 없었다면 저는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문 당선인은 어린 시절을 피란민들이 모여 살던 부산 영도에서 보냈다. 영도는 고갈산 아래 산복도로를 중심으로 비탈진 언덕에 얼기설기 판잣집이 들어선 대표적인 달동네였다. 문 당선인은 어릴 때 수영보다 잠수나 물질을 더 먼저 배웠다. 집에서 점심을 주지 않아 바다에서 고동이라도 따서 점심을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문 당선인은 "자립심과 독립심을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가난이 내게 준 선물이다. '돈이라는 게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라는 지금의 내 가치관은 오히려 가난 때문에 내 속에 자리 잡은 것"이라고 회고했다.

역사학자가 되고 싶던 독서광

어릴 적 문 당선인의 아버지는 통영 마산 여수 목포 등지를 다니며 장사를 했다. 장사를 마치고 한 달에 한 번씩 돌아오는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플루타르크의 영웅전' 같은 책을 사왔다. 공부 잘하는 아들은 아버지의 자랑이었다.

문 당선인은 부산지역 최고 명문인 경남중과 경남고에 입학했다. 가난한 집안 아이들이 모여 살던 초등학교와는 달리 부유층 자제들이 많이 다니던 경남중·고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그는 난생처음 경제적 불평등이 주는 세상의 불공평함을 깨닫고 정신적 방황을 겪었다고 한다.

이 같은 사춘기 시절 방황은 독서열로 이어졌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고, 학교 도서관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책을 읽었다. '사상계'를 읽으며 사회의식에 눈을 뜬 것도 그 시기였다. "그때 김대중 대통령을 글로 처음 접했어요. 당시 노동문제연구소장으로 노동문제에 대해 글을 쓰셨는데 '노동 삼권 보장' 같은 주장을 하셨어요."

문 당선인은 원래 역사학자가 꿈이었다. 그러나 부모님과 담임 선생님의 뜻대로 서울대 상대에 응시했으나 낙방했다. 그는 재수 끝에 1972년 경희대 법학과 4년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문 당선인의 경남고 동기 가운데 잘된 친구들이 많다. 박맹우 자유한국당 의원, 서병수 부산시장, 박종웅 전 의원, 최철국 전 의원이 정치권에서 활동한 동기들이다. 건축가 승효상, 연출가 이윤택 같은 문화·예술계 인사들도 고교 동기다.

최루탄 맞으며 꽃피운 사랑

문 당선인이 대학에 입학한 1972년은 유신헌법이 선포된 해다. 문 당선인은 1975년 4월 인혁당 사건 관계자들이 사형을 당한 뒤 사법살인에 항의하는 대규모 학내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됐다.

문 당선인이 부인인 김정숙 여사를 만나 연애를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문 당선인은 3학년 때인 1974년 학교 축제 때 파트너로 김 여사를 만났다. 그 뒤 그냥 인사 정도 나누는 사이로 지냈다. 그러던 1975년 4월 문 당선인은 유신 반대 시위에 나섰다가 최루탄에 쓰러졌다. 운명처럼 김 여사가 쓰러진 문 당선인을 발견해서 옮겼고 그렇게 연애는 시작됐다. 이후 김 여사는 문 당선인이 구속되고 강제 징집되고 사시에 합격할 때까지 기다려 결혼했다.

문 당선인은 1975년 강제 징집된 뒤 특전사령부 제1공수여단에 배치됐다. 문 당선인은 군대에 와보니 "내가 군인 체질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저서를 통해 밝힐 정도로 군 생활에 잘 적응했다. 문 당선인은 1976년 8월 미군이 희생됐던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때 미루나무 제거 작전에 나서기도 했다. 타임지는 최근 문 당선인을 다룬 기사에서 그를 '도끼만행 사건 때 미루나무 제거 작전에 나섰던 군인'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는 미군에서 미루나무 토막을 기념으로 받았다. 거기에는 '국난극복휘장'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유치장에서 통보받은 사시 2차 합격

1978년 2월, 31개월 만기 제대한 직후 아버지가 급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이후 문 당선인은 사법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장남으로 집안을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전남 해남 대흥사로 들어가 사시공부에 매달렸고, 1979년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다. 하지만 10·16부마항쟁이 일어난 것을 보고 학교로 복학해 복학생 대표로 시위의 한복판에 섰고 결국 1980년 5월 확대계엄 조치가 발동되면서 또다시 구속됐다. 문 당선인은 그동안 준비했던 것이 아쉬워 1980년 4월 학내 시위 와중에 2차 시험을 치렀는데, 경찰서 유치장에서 2차 사법시험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경찰서장은 축하차 면회를 온 학생처장과 법대 동창회장을 유치장 안으로 들여보내 조촐한 소주 파티를 열 수 있게 해줬다. 경찰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盧와 운명적인 만남과 이별

문 당선인의 사법연수원 동기들은 작고한 조영래 변호사와 박원순 서울시장, 박시환 전 대법관,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 이귀남 전 법무장관, 박병대 대법관, 박정규 전 민정수석, 조배숙 의원, 박은수·고승덕 전 의원 등 면면이 화려했다. 쟁쟁한 동기들 사이에서 문 당선인은 차석으로 연수원을 마쳤다. 하지만 시위 전력 때문에 판사 임용에서 탈락하고 부산으로 내려가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부산에서 노무현 변호사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됐다. 두 사람은 1982년 8월 문 당선인의 사법시험 동기인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소개로 처음 만났다. 문 당선인은 당시 만남에 대해 "소탈하고 솔직하며 친근했다"고 떠올린다.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변호사 노무현 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를 열었고 부산의 대표적인 재야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노 전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하면서 잠시 떨어진 둘은 2002년 노 전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하면서 다시 힘을 합쳤다. 대선 정국에서는 부산선거대책위원회 본부장을 맡았고, 참여정부 시절에는 초대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 등을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문 당선인은 청와대 시절 누구보다 대쪽 같았다. 청와대에 찾아온 고교 후배가 인사차 들러 "경남고 몇 회입니다"라고 하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아앉았다고 한다. 그리고 대통령의 지근거리에서 국정 전반을 보좌하다 보니 늘 격무에 시달렸다. 청와대 생활 1년을 지내는 동안 과로로 인해 무려 10개의 이가 빠질 정도였다.

2009년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을 때 서거 소식을 직접 발표했다.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 때 백원우 전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소리를 질렀으나 문 당선인은 이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이 장면이 문 당선인을 '슬픔과 분노를 절제할 줄 아는 품격 있는 사람'으로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하지만 그 절제했던 슬픔과 분노가 운명처럼 그를 정치인으로 이끌었다. 문 당선인은 저서 '운명'에서 "당신(노 전 대통령)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한 번의 실패, 그리고 재도전

그는 2012년 대통령 선거에 나섰다가 박근혜 후보에게 패했다. 하지만 한 번의 실패는 그를 품이 더 넓은 정치인으로 키우는 밑거름이 됐다.

2016년 4·13 총선을 앞두고 당시 문재인 대표와 민주당은 위기에 봉착했다. 안철수 민주당 전 대표가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했고, 이어 김한길·박지원·천정배 의원 등이 줄줄이 탈당해 국민의당에 합류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민주당의 뿌리인 호남의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문 당선인은 이때 이 위기를 새로운 인재 영입으로 돌파했다. 문 당선인을 변화시킨 가장 큰 계기는 세월호 사건이었다.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미안함이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고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오던 '권력의지'를 강화시켰다.

※ 당선인 40문 40답

1. 생년월일=1953년 1월 24일(양력)

2. 출생지=경남 거제

3. 키·몸무게·신발사이즈·혈액형=172㎝·67㎏·260㎜·B형

4. 종교=천주교(세례명 디모테오)

5. 출신학교=부산 남항초-경남중-경남고-경희대 법학과

6. 가족 관계=부인 김정숙 여사 사이에 1남(준용 씨) 1녀(다혜 씨)

7. 부모와 형제자매=아버지 고 문용형 씨와 어머니 강한옥 여사 사이 2남 3녀의 둘째이자 장남

8. 좌우명=어려울수록 원칙으로 돌아가라

9. 어린 시절 꿈=역사학자

10. 학창 시절 별명=문제아. 획일적이고 억압적이었던 당시 교육 분위기와 맞지 않아 부딪히면서 이름을 따 '문제아'라는 별명이 생겼다

11. 취미=등산. 세 번의 히말라야 트레킹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12. 꼭 가보고 싶은 곳=함경남도 흥남. 부모님께서 6·25 당시 피란 오기 전에 사셨던 곳이다

13. 하루 수면 시간=7시간

14.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생선회와 해산물, 특별히 가리는 음식은 없다

15. 내 인생의 책=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 저)

16. 좋아하는 노래=꿈꾸는 백마강

17. 주량과 술버릇=주량은 소주 한 병이고 특별한 술버릇은 없다

18. 자신의 외모에 점수를 준다면=대학 시절 프랑스 영화배우 '알랭 들롱'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좀 들었고, 그 덕분에 소개팅에서 아내를 만났다

19. 담배=2004년 청와대 민정수석을 그만두고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을 가면서 끊었다

20. 한 달 용돈=책 몇 권 사고 사람들을 만날 때 밥값이나 술값 낼 수 있는 정도다

21. 가장 아끼는 물건=법무법인 '부산'을 개업할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개업 선물로 보내준 괘종시계다. '증 노무현' 글씨가 새겨져 있다

22. 좋아하는 한자성어=再造山河

23. 좋아하는 영어 단어=Dream(꿈)

24. 스트레스 해소법=산책. 밭일을 하거나 나무를 심거나 마당에서 풀을 뽑는 단순 노동도 한다

25. 가장 기뻤던 일=사법시험 합격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

26. 가장 후회되는 일=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잘된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것

27. 자신에게 타임머신이 있다면=선친이 살아계셨을 때로 돌아가고 싶다. 큰아들이 사시에 합격한 모습을 보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28. 자신의 장점=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것

29. 자신의 단점=과도한 진지와 결벽주의

30. 가장 존경하는 사람=다산 정약용 선생. 민본주의와 실용주의를 이끌어낸 분

31. 가장 따르고 싶은 현대 정치인=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 진보적이면서도 통합적인 리더십이 존경스럽다

32. 좋아하는 연예인=이은미·송강호

33. 감명 깊게 본 영화='광해, 왕이 된 남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대책 없이 울어본 것도 처음이었다. 영화 곳곳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 많아 감정 수습이 안 됐다

34. 화났을 때의 행동=많이 화가 나면 혼자서 생각에 잠긴다

35. 생일에는 무엇을 하나=가족들과 오붓한 저녁식사

36. 프러포즈는=아내가 먼저 했다. 친구들과 있는데 아내가 와서 갑자기 "재인이 너 나랑 결혼할 거야 말 거야? 빨리 말해!"라고 해서 깜짝 놀라 "알았어"라고 했다

37. 결혼할 때의 제일 고민=결혼하기로 했을 때 가난한 백수여서 셋방 구할 것이 걱정이었다

38. 대통령이 된 후에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 있다면=광화문에서 국민과 막걸리 한잔 하고, 주말에는 아내와 같이 시장에 가서 장을 보는 소박한 삶

39. 은퇴 후의 삶을 그려본다면=자동차 여행

40. 신체의 비밀=임플란트와 발가락이다. 참여정부 시절 치아가 10개나 빠져서 임플란트를 했다. 발가락이 정말 못생겼는데 2012년 대선 때 전국을 돌아다니느라 굳은살이 생기고 발톱이 빠져 더 엉망이 됐다

[김기철 기자 /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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