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속에 깜빡 헤어진 반려견 "재기의 희망 안고 살아왔어요"

정반석 2017. 5. 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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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강릉시 성산면 대관령 일대,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에 작은 희망이 움트기 시작했다.

올해 관음1리에 이사 온 오상원(57)씨는 불길에 네 가족이 함께 살던 집을 잃었다.

오씨는 "졸업장 가족사진 등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역사가 끝나버린 것 같다"며 "집을 다시 짓더라도 마음의 복구는 오래 걸릴 것 같다"고 토로했다.

불길이 오씨 집을 위협한 건 6일 오후 3시30분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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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줄 매 놓았는데 기적 같아”

연기에 그을린 채 3일만에 재회

임시 주민증 받아 한 표 행사도

소방당국 “2개 산불 대부분 진화”

/불길에 갇혔던 강아지 벤츠가 실종 하루 만인 7일 오후 4시쯤 주인인 오상원씨 뒤에 나타나 탈진해 쓰러진 모습. 오상원씨 제공

강원 강릉시 성산면 대관령 일대,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에 작은 희망이 움트기 시작했다.

올해 관음1리에 이사 온 오상원(57)씨는 불길에 네 가족이 함께 살던 집을 잃었다. 2월 6일 입주한 지 정확히 석 달만이다. 공무원으로 일하다 건강 악화로 퇴직한 후 “다시 살아 보려” 외딴 산골에 왔다는 오씨는 이번 산불로 억대 빚더미에 올랐다. 아내가 시내에서 일하며 생계를 보태고 있지만 월 150만원 상당의 대출이자에다 당장 지낼 곳도 마땅치 않아 찜질방을 전전하게 됐다. 오씨는 “졸업장 가족사진 등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역사가 끝나버린 것 같다”며 “집을 다시 짓더라도 마음의 복구는 오래 걸릴 것 같다”고 토로했다.

불길이 오씨 집을 위협한 건 6일 오후 3시30분쯤. 텃밭에서 일하던 오씨는 강풍과 함께 불어온 연기에 놀라 이웃 보광리까지 나갔다가 치솟은 불길을 보게 됐다. 오씨 전화를 받고 가족들이 급히 집에서 나올 때는 이미 집 주변에 불이 옮겨 붙어 불똥까지 튀기던 위급한 상황. 뭐 하나 제대로 챙겨 나오지 못한 네 식구는 대학교 캠퍼스에 세운 차 안에서 밤을 지샜다.

그날 밤 오씨는 집 앞에 묶어 두고 나온 8개월 된 강아지 벤츠가 생각나 밤새 울먹였다. 탄광마을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초등학교를 중퇴한 뒤 막노동을 전전하다 뒤늦게 대학에 진학해 공무원의 꿈을 이뤘으나 10여년 전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다섯 차례나 목 수술을 받으며 사경을 헤매다 퇴직한 지난 날의 간난신고도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다음날 다시 찾은 집은 철골 구조물 외에는 흔적도 없이 다 타버렸고, 주변을 몇 번이나 둘러보며 “벤(벤츠의 애칭)”을 외쳤지만 대답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 오씨에게 작은 기적이 찾아왔다. 다음날 오후 4시쯤 다시 집을 찾은 오씨의 뒤에서 짤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벤츠가 며칠 전 걸어 둔 아들의 군번 줄을 목에 걸고 쫓아온 것이다. 연기에 검게 그을린 벤츠는 꼬리를 흔들다 이내 탈진해 쓰러졌다. 눈물을 흘리며 벤츠를 간호한 오씨는 “불 속에서 말 못하는 짐승이 목줄을 끊으려 사투했을 모습에 죄책감이 컸다”며 “온 주위가 불길에 휩싸인 상태에서도 용케 살아남아 다시 찾아와준 것이 고맙다”고 했다. 이어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있으니 내게도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은 그는 “투표는 무조건 해야 한다”며 9일 오후 2시40분 성산면사무소에 마련된 투표소를 딸과 함께 방문했다. 대선 후보들이 복구 지원을 약속한 게 너무 고맙다고 했다. 급히 집을 빠져 나오느라 주민등록증조차 챙기지 못한 딸은 성산면장 등의 도움으로 임시 주민등록증확인서를 발급 받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나흘간 위세를 떨친 산불은 다행히 대부분 진화됐다. 소방당국은 이날 삼척 도계읍 일대 산불은 오전 11시20분을 기해, 강릉 성산면 일대 불은 오전 6시34분쯤 진화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이번 산불로 축구장 457개 면적(327ha)이 잿더미로 변했고, 78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당국은 재발화 등에 대비하고 있다.

강릉=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강아지 벤츠가 9일 오전 건강해진 모습으로 주인 오상원씨에게 안기고 있다. 오씨의 손에 당시 벤츠가 묶여 있었던 목줄이 들려 있다. 정반석 기자
/강원도 산불로 불타기 전 오상원(57)씨가 아내, 아들, 딸과 함께 지내던 2층 집의 전경. 오상원씨 제공
/강원도 산불로 6일 오후 완전히 불 타 철제 구조와 벽돌 정도만이 남은 오상원(57)씨의 집 내부 모습. 정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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