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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평생 1년 7개월하고도 15일을 화장실에서 보낸다고 한다. 시간으로 따지면 1만4160시간이고 하루 5시간씩 공부를 한다면 무려 7년이 넘는 세월인 셈이다. 한 가지에 집중했다면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시간이다. 요즘은 화장실을 쾌적하게 꾸며 놓고 풀리지 않던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기도 하니 '화장실 철학자'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화장실 철학자>
 <화장실 철학자>
ⓒ 제3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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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철학자>(제3의 공간)는 철학의 기원부터 현대철학자에 이르기까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재미를 더해 풀어낸 책이다. 철학에 유머를 곁들인 책이라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총 95개의 '응강'이라는 강의를 읽고 나면 익숙한 이름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부터 철학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에게는 좀 낯선 비트겐슈타인이나 카를 포퍼까지 그들이 펼친 이론의 요점을 알 수 있게 된다.

'철학이 일상 생활을 하는데 무슨 도움이 될까'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철학이라는 것이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만을 추구하는 학문은 아니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왜 사는지 무엇이 더 나은 삶인지를 고민하는 모든 출발점이 철학적 사고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문학적 사고나 철학적 사고를 하지 않는다면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 것이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틀이나 다수의 행복을 추구하고 약자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마음을 모으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노숙자들에게 값비싼 한 끼 식사를 대접하는 대신 인문학 강의를 듣게 했더니 그들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사회 구성원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디딤돌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은가. 인간이 빵만으로는 살 수 없으며 음악과 예술과 인문학적 철학적 사유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한 이유다.

<화장실 철학자>에서는 참과 거짓, 존재와 목적, 견해와 관점, 쾌락과 선택, 현실과 인식, 이성과 경험, 이상과 도덕, 허무주의와 종교, 단어와 언어, 지식과 패러다임을 통해 철학자들과 이론의 이모저모를 소개한다.

아쉬운 건 대부분의 철학책이 소홀히 한 여성철학자들을 그저 간단한 소개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여성철학자들은 마녀 사냥을 당하거나 페미니스트라며 무시를 당했다고 한다. 플라톤 철학을 가르치는 학교의 존경받는 교장이던 히파티아는 종교가 내포하는 위험에 대해 많은 글을 썼다가 기독교 광신도들에 의해 끔찍한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히파티아는 플라톤 철학을 가르치는 학교의 존경받는 교장이었다. 종교가 내포하고 있는 위험에 대한 글을 많이 썼고 , 인간은 신과는 달리 복잡한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정신적 수용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고 보았다. "생각할 권리를 수호하라. 왜냐하면 틀리게 생각하는 것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라는 말도 남겼다. 그러나 히파티아는 기독교 광신도들에 의해 굴 껍질로 살갗을 도려내고 사지가 절단당하는 고통을 겪으며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106쪽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세상에 알린 한나 아렌트, <의도>(intention)라는 작품으로 '행동이론'에 관한 최고의 저술 대열에 합류했다는 앤스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페미니즘 관련 저서인 <제 2의 성>(Le Deuxieme Sexe)을 저술한 시몬 드 보부아르, 젠더 수행성 이론을 정립했다는 미국의 여성철학자 주디스 버틀러 등은 철학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 여성철학자들이지만 남성철학자들은 그들을 페미니스트 범주에 가두려 했고 철학자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니 아쉬운 일이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철학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고 해도 인간은 철학적 사고와 삶의 방식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들을 하루를 반추하는 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외적 상황이나 상대적 박탈감으로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힘들어 하는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인간은 누구나 자기만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있고, 가치의 우선순위는 사람마다 다르며 존재 이유도 저마다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인 동시에 만족을 모르는 존재이다. 높은 도덕적 이상을 붙들고 나아가기도 하고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본능과 쾌락의 질주를 하며 삶의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분명한 사실은 그럼에도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고 자신을 돌아보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바쁜 현대인들에게 가장 진실한 자기 자신의 마음과 만나는 시간이 된다면 '생각하는 동물'로 자신의 삶을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으로 채워갈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자신의 생각이 현재의 학문적 인식에 뒤처지는 것이 아닌지, 혹은 현재의 시대정신과 일치하는지를 끊임없이 비교해야 한다. 또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났을 때는 거기에 맞게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 261쪽.

덧붙이는 글 | 화장실 철학자/ 애덤 플래처. 루카스N.P 에거 지음. 강희진 옮김/ 제3의 공간/ 14,000원



화장실 철학자 - 그곳에서 만난 제일 쉬운 철학 강의

애덤 플레처 & 루카스 N. P. 에거 지음, 강희진 옮김, 제3의공간(2017)


태그:#여성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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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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