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일베'들이 슬픈 개구리 '페페'를 죽였다

문현웅 기자 2017. 5. 8.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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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페 더 프로그./조선일보DB

‘슬픈 개구리’ 등의 이름으로 한국에도 알려진 개구리 캐릭터 ‘페페 더 프로그’ 원작자가 페페에게 공식적으로 ‘사망’ 판정을 내렸다. 페페가 더 이상 극우주의의 상징으로 오용(誤用)되지 않도록 고심 끝에 해체를 결심했다 한다.

페페의 원작자 맷 퓨리(Matt Furie)는 최근 만화출판사 판타그래픽스가 최근 주최한 ‘프리 코믹 북 데이’ 행사에서 페페의 장례식을 다룬 1페이지짜리 만화를 배포해 공식적으로 사망을 선언했다.

맷 퓨리가 그린 페페 더 프로그의 장례식./인터넷 캡쳐

그는 페페가 최근 미국 네티즌 사이에서 극우주의의 상징으로 남용되는 상황을 막을 수 없자 아예 캐릭터를 죽여 없앨 결심을 했다 한다.

페페는 2005년 퓨리의 만화 ‘보이스 클럽’(Boy’s Club)에 처음 등장했다. 오묘한 생김새 덕택에 2008년 즈음부터 영어권 커뮤니티 사이트인 ‘4chan’에서 잉여와 찌질이와 오타쿠들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나름 인기를 누려 왔다.

그러다 13명이 죽고 7명이 다친 2015년 10월 ‘움프콰 칼리지 총기 난사 사건’을 계기로 ‘테러리즘’ 이미지가 박히게 된다. 범인이 범행 예고 글과 페페의 사진을 함께 4chan에 함께 올렸던 것이다.

움프콰 칼리지 총기 난사 사건 직전 범인이 4chan에 올린 게시글./조선일보DB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와 엮이며 이미지가 더 꼬인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극우 국가주의적 우파 세력 네티즌들이 페페와 트럼프를 합성한 그림을 다수 만들어내 유포한 것이다. 인기 캐릭터에 트럼프의 이미지를 덧씌워 지지층을 넓히려는 시도였다 한다.

트럼프 개구리./조선일보DB

여하간 트럼프와 얽힌 탓에 페페는 극우 이미지까지 뒤집어쓰게 됐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도중 힐러리 클린턴 공식 웹사이트는 페페를 네오 나치의 상징이라고 공개 비난했다. 유대인 권익단체 중 하나인 ADL(Anti-Defamation League)에서도 같은 해 10월 페페를 나치식 경례와 같은 수준의 상징으로 공식 지정했다.

정작 원작자인 맷 퓨리는 이런 상황을 전혀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는 텀블러에 진짜 페페가 트럼프 페페에게 오줌을 갈기는 그림을 올리고, 극우 세력이 페페를 이념적 상징으로 쓰는 것을 반대하는 ‘#SavePepe’ 해시태그를 만들었다.

페페 더 프로그 원작자 맷 퓨리가 자신의 텀블러에 올린 그림./조선일보DB

또한 지난해 10월 타임지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한 때 그저 여유로운 개구리일 뿐이었던 페페가 인종차별주의자나 반유대주의자 등에 의해 혐오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분노한 심정을 전했다. 하지만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퓨리는 끝내 페페의 명예를 회복하지 못했다. 그가 할 수 있던 건 더 망가지기 전에 존엄히 퇴장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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